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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Nov 11. 2024

로컬도 놓치는 버스를 잡으러

단상 (102) 

무려(?) 통영에 있을 때의 일. 

'배양장'이라는 시내 외곽에 위치한 카페를 간 날이었다. 이름이 왠지 생소하지만, 멍게 배양장을 카페로 리모델링한 곳이란다. 이 설명 하나로 상호가 왜 배양장이 되었는지 바로 이해가 갔다. 


이미 많이 바이럴이 된 카페였는데, 문제라면 접근성에 있었다. 통영버스터미널이 위치한 죽림부터 신시가지로 조성된 무전동, 그 아래로 더 내려오면 관광지로 유명한 동피랑과 강구안이 있는 원도심이 나온다. 숙소는 강구안 바로 앞에 있었는데, 배양장은 다리 건너 왼편 아래로 더 내려가야 했다. 행정구역도 산양'읍'으로 바뀌는, 그러니까 도심의 외곽 지역에 위치한 카페다.


다행이라면 통영 시내 버스가 잘 되어 있어 버스편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심지어 숙소 바로 앞 정류장에서 타고 배양장 바로 앞 정류장에서 내리는, 도어 투 도어로 이어주는 택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불행이라면 타려는 541번 버스는 1시간에 1대만 운행한다는 점. 갈 때야 택시타도 되지만 외곽에 있는 지라 돌아올 때 택시가 안 잡힌다는 후기가 더러 있어 올 때를 생각해 버스편을 이용해보기로 했다.


불행은 모바일 지도에서 교통편 검색을 하는 순간, 다행으로 바뀌었다. 몇 분 후 도착한다는 교통 정보에 맞춰 후다닥 정류장으로 나가기만 하면 되니까. 그렇게 541번 버스를 잡아 탔다. 교통 정보로는 사십삼 분이 걸린다고 되어 있는데 삼십 몇 분 정도만에 배양장 앞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의외로 간단히 도착해 들떴는데, 문을 열자마자 이곳에 잘 왔다고 들뜨게 만든 녀석들이 있었다. 카페에서 키우는 강아지 한 마리와 고양이 두 마리였다. 


문 열자마자 쪼르르 달려오면... 주문을 하겠니 못 하겠니...
길고양이처럼 생겨가지고 궁디팡팡해 달라고, 놀아달라고 애교 부리면 커피를 마실 수 있겠니 없겠니...
오픈시간에 맞춰 가서 손님이 아직 많이 없었다.


겨우 멍냥이 애교 공세를 뿌리치고 주문을 하고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와 함께 통영 오션뷰를 즐겼다. 화창할 땐 창 너머로 보이는 낚시터 자리에 파라솔도 펴시는 것 같은데, 날이 흐리고 비도 가끔 추적추적 내려서 파라솔은 접힌 채였다. 기존 멍게 배양장의 외관을 그대로 살린 옥상도 올라가 볼 수 있어 한 바퀴 쓱 둘러봤다. 가만히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구석 창가 자리로 아까 고양이 두 마리가 제집 마냥 아무렇지 않게 쓱 올라와 잠을 청한다. 




배양장 앞, 하차했던 정류장이 거의 기점이라 여기 올 때와 달리 나가는 버스는 도착 정보가 실시간으로 뜨지 않았다. 카페 직원 분께 여쭤보니 마침 그날 일을 도와주러 오신 사장님의 어머님께 물어 버스 도착 정보를 알려주셨다. 나가는 버스 시간까지 빠삭하게 알고 계신 현지 어르신이 계시니 슬금슬금 생기던 불안이 금세 사그라들었다. 여기에 15분 정도 후에 도착하니 슬슬 나갈 준비를 하라고 알려주시는 직원 분의 친절한 배려까지 더해져 이곳에 오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또 한 차례 들었다. 


너흰 좀 데면데면 하구나 ㅎㅎ


 그때까진 몰랐다. 버스를 놓칠 거라는 걸. 15분이라는 시간은, 화장실을 들렀다가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다 마신 커피잔을 반납하고 나오다가 잠깐 멍냥이의 데면데면한 모습을 귀여워하며 사진찍으며 줄어들었다곤 하나 그래봐야 5분 안팎이다. 정류장까지는 5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 내릴 때는 작게나마 들어설 수 있는 정류장이 있었는데, 반대편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은 표지판이 전부였다. 짧은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찰나, 버스 한 대가 빠르게 지나갔다. 


 순간 바로 뒤에서 "아이고, 저 버스 탔어야 하는데!"하며 빠른 발걸음 소리가 내 쪽으로 가까워졌다. 아까 직원이 버스 시간을 물어봤던 가게 주인의 어머니셨다. 카페에 들어설 때 낯가림이라곤 하나도 없이 날 반겨준 강아지(이름을 까먹었다)를 쏙 넣은 펫 케이지 가방을 앞으로 맨 채 겅중겅중 걸어오셨다. 당황한 기색도 잠시, 버스 기사가 어느 아저씨인지 알 것 같다며 다음 정거장이 기점이라서 빨리 가서 거기서 간단히 체조도 하고 담배도 피고 하는 아저씨가 한 명 있단다. 어머니의 귀여운 하소연이 귀를 스치는 동안 다음 버스는 1시간 뒤에나 있을 텐데, 택시를 잡아야 할 지 고민이 들었다. 


 어머니는 폴더폰을 꺼내시더니(요즘의 폴더블 스마트폰이 아니라 정말 예전 '폴더폰' 모델이었다!) 열심히 장사하고 있었을 아드님(카페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귀여운 하소연을 한 번 더 하더니 다음 정거장까지 데려다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응? 그러니까 아드님이 차를 끌고 나와서 한 정거장을 따라 잡으면 버스를 탈 수 있다는 계산인데... 생각할 시간도 사치라는 듯 방금 지나온 오르막길 너머로 차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렸고 스르륵 차 한 대가 나와 어머님 앞에 멈췄다. 


 무슨 첩보 작전을 펼치는 것처럼 후다닥 탔고 아드님은 저 너머로 버스가 아직 보인다고, 어머님은 그 말을 놓치지 않고 인상착의를 설명하며 꼭 기점에서 수다 떨든 운동하든 뭘 하려고 빨리 가려는 성격 급한 아저씨가 운전했을 거라고 덧붙였다. 신기하게도 예상했던 상황과 정확했다. 청색 통영 버스 기사 유니폼을 입은 기사님은 버스를 세워두고 건너편 공터로 가 동네 아저씨와 수다 떨고 있었다. 아드님께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놓쳤지만 따라 잡은(!) 버스에 오르는 나를 뒤로 하고 길 건너로 가 기사 아저씨게 어머님은 쭐래쭐래 말을 붙였다. 왜 이렇게 빨리 갔냐는 잔소리였겠지...ㅎㅎ


 버스 시간 까지 외우고 있을 통영 토박이마저 대중교통을 놓치는 해프닝이 생기는 게 기억에 남아 글로 옮겨보았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외지 여행객에게 친절과 배려가 짙게 벤 추억을 남겨 주신 어머님과 카페 사장님께 고맙다는 인사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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