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101)
지정 메뉴. 일부 시간대에 특정하여 할인해 주는 메뉴라거나 키즈밀 같이 소비자층을 지정해서 판매하는 메뉴를 지정 메뉴라고 칭할 수 있을 텐데,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지정 메뉴는 이런 카테고리가 아니다. 그냥 '나만의' 지정 메뉴에 대한 이야기며, 이 때문에 벌어진 소소한 해프닝에 대한 기록이다.
맛에 있어서라면 새로운 시도를 꺼리는 편이다. 새로운 메뉴에 도전하는 시도는 여행 갔을 때로 충분하다는 고집이 있어 평소에는 입맛에 길든 메뉴를 고른다. 식단의 변화에도 민감하지 않다. 어제 이걸 먹었으니 오늘은 이거 말고 저걸 먹어야지 따위의 변화 말이다. 한 번 꽂힌 메뉴는 일주일에 일곱 번을 먹는, 그러니까 하루에 한 끼를 같은 메뉴로 먹을 때도 빈번하다.
이런 고집은 어느새 어느 카페에 가냐, 어느 식당에 가냐에 따라 선택하는 메뉴의 폭을 확 좁혀버렸다. 메뉴를 하나로 일갈했으니 '확'이라는 말에 극단성을 부여해도 좋다.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나 식당이라면 취향 저격당한 메뉴를 자주 먹으려면 집 혹은 직장이 근처에 있다거나 어떤 이유로든 근처를 자주 오가야 할 것이다. 프랜차이즈의 장점이 여기서 드러난다. 프랜차이즈 매장이야 전국 방방곳곳 웬만한 도시에는 다 있기 때문에 어느 동네를 가든 어느 도시를 가든 손쉬운 선택을 돕는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그 동네나 그 도시에 프랜차이즈 매장이 있을 때만)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의 지정 메뉴는 이렇다. 맥도날드는 상하이스파이스치킨버거, 롯데리아는 클래식 치즈버거. 각 프랜차이즈 매장을 가면 신메뉴가 나왔든 할인하든 아무 고민 없이 곧장 저 메뉴로 주문한다.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커피를 두고 지정 메뉴 운운하자면 굳이 브랜드별로 구분할 필요가 없다. 커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어느 브랜드를 가든 어느 카페를 가든 지정되어 있기 때문. 다만 카페 디저트라면 말이 달라진다. 스타벅스는 클라우드 치즈케이크(사실 예전에는 블루베리쿠키치즈케이크였는데, 칼로리가 너무 높아 갈아탔다. 365일 입으로만 다이어트한다고 하는 아가리 다이어터지만... 제 나름 신경은 쓴다). 쓰려고 보니 다른 프랜차이즈에선 딱히 디저트를 곁들이지 않았는지 잘 생각이 안 나는...
아무튼 얼마 전 스타벅스를 갔을 때의 일이다. 여기까지 긴 도입과 제목으로 이미 무슨 얘기를 할지 유추하신 분이 계시겠지만... 모른 척 하고 읽어주시길 바란다. 커피는 불변의 '아아', 오늘은 케이크도 같이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케이크를 주문하려고 했는데 쇼케이스에 클라우드 치즈케이크가 보이지 않았다. 직원에게 클라우드 치즈케이크가 다 팔려서 지금 없는 건지 물어보려고 커피를 주문하고서는 운을 뗐다.
혹시 클래식 치즈버거 지금 없나요?
"네?", 직원의 목소리에 당황스러움이 그대로 느껴졌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었으면 좋으련만... 버거 메뉴는 없고 샌드위치 종류는 있다고 이어진 설명을 듣다 롯데리아에서나 먹힐 메뉴를 애먼 스타벅스에서 찾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차라리 직전에 롯데리아에서 클래식 치즈버거를 먹고 왔으면 그나마 그럴듯한 변명이라도 지어낼 수 있을 텐데, 그것도 아니어서 나조차도 민망했다. '아, 클라우드 치즈케이크요.'라고 멋쩍게 웃으며 어물쩍, 민망한 상황을 넘어가긴 했는데 낯 뜨거워지는 기색은 감출 수가 없었다. 하필 두 메뉴가 '클'로 시작할 건 뭐람.
이날 클라우드 치즈케이크가 없어서 커피만 마셨는데 다른 날보다 유독 커피가 씁쓸하게 느껴진 건 기분 탓이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