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가 알려주는 고수 주문하기

베트남어 rau ngổ / rau thơm

by Fernweh

말을 모으는 여행기, 말.모.여. 30)


베트남어 rau ngổ /rau thơm [라우 응오/ 라우 텀] n. 향채 / 고수


쌀국수 고수(高手)에게 길들여진 내 입맛에 고수 없는 쌀국수라니,

호치민에서 먹은 쌀국수는 아쉬움만 남겼다.

베트남어 고수 친구에게 고수를 뭐라고 하는지 정확히 배운 후

다낭에 가서야 진국의 쌀국수를 먹을 수 있었다.


처음 먹어 본 쌀국수는 좀 슴슴했다. 고기 육수보다는 라면 같은 매운 국물의 면 요리가 입맛에 맞았다. 그런 내게 친구는 고수를 권했다. 고수의 악명 높은 아우라에 겁이 나 덥석 넣지 못해 대신 고수를 ‘팍팍’ 넣은 친구의 쌀국수를 한 입 먹어 보았다.

경악


이제 막 락스로 청소한 화장실을 들어갔을 때의 잔향이 혓바닥에 남은 느낌이었다. 쌀국수 하수가 감당하기엔 너무 과감한 쌀국수 고수의 비법이었다.


데이트 코스를 빙자한 그녀의 혹독한 훈련 덕에 고수에 대한 트라우마는 점점 옅어졌다. (그렇다. ‘데이트 코스’였기에 안 갈 수 없었다) 한 줄기가 두 줄기, 두 줄기가 네 줄기. 내 쌀국수 그릇에 들어가는 고수의 양은 곱절로 늘었다. 베트남 여행을 앞둔 시점에선 이미 고수가 듬뿍 들어간 쌀국수에 한껏 들떠 있었다.


쌀국수야 동남아 어느 국가든 있는 음식이지만, 서울에 유행처럼 포진했던 ‘포××’ 등의 체인점 때문인지 ‘베트남 쌀국수’가 먼저 떠올랐다. 마치 고유명사처럼 여겼다. 베트남에서 유학했거나 살다 온 주변 지인이 현지 쌀국수에 대해 보낸 찬사 때문에도 먹어보지도 않은 베트남 쌀국수가 으뜸이라 여겼다. 호치민에 도착하자마자 기대를 한 아름 품고 쌀국수를 먹으러 갔다. 누가 보면 ‘누들로드’ 같은 다큐멘터리라도 찍으러 온 것처럼.

반전


한국에서의 첫 쌀국수는 고수 때문에 ‘경악’이었지만, 호찌민에서의 첫 쌀국수는 고수가 없어 ‘반전’이었다. 육수는 한국보다 진하지 않고 깔끔했다. 여기에 여러 가지 향채와 어슷하게 썰린 고추가 따로 나왔다. 숙주와 함께 고추를 넣으니 칼칼한 맛은 더했지만 뭔가 아쉬웠다. 향채 더미를 뒤적여도 고수가 없었다. 베트남 고수는 모양이 다를 수 있단 생각에 향채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고수는 없었다. 다른 일행이 모두 ‘고수 극혐러’라 일단 그날은 고수를 포기했다. 다음날 혼자 시내를 나갔다. 유학했던 친구가 추천해 준 체인점 ‘PHO24’를 우연히 발견해 이번엔 고수를 넣으리라 다짐하며 들어갔다. 나오기 전 호텔 로비 직원에게 베트남어로 고수가 뭔지도 묻고 나왔던 터.


PHO24에서도 향채만 나오고 고수가 없었다. 직원이 알려준 말은 ‘라오 응오(Rau ngổ)’를 입 밖으로 뱉었는데, 향채 접시를 가리킨다.

충격


오리지널 베트남 쌀국수는 원래 고수를 넣지 않는 거구나. 이게 다른 동남아 국가로 전파되었을 때 고수가 들어간 건가. (태국에선 고수를 넣은 요리가 많아 그렇게 추측했다) 식당에선 왜인지 와이파이가 안 잡혀 나중에 카페에 가서야 친구에게 톡을 했다. ‘라오 응오’라고까지 했는데 고수를 안 줬다고.

0192a322a1bb8051a5efd4ef2ab65d03509e8a38ca.jpg
0162d599c5b1bb9ded6b167e91231e2a117cfdd9e4.jpg
호치민에서 첫날, 이튿날에 먹은 쌀국수. 오른쪽 사진 왼쪽에 (고수는 없는) 향채 그릇이 조금 보인다.


친구의 답은 명쾌했다.

"라오 응오는 향채를 통칭하는 말로 받아들일 수 있어서 ‘라우 텀(rau thơm)’이라고 해 봐."


직원에게 영어(coriander)로 묻긴 했는데 고수가 아닌 향채로 알아들었나 보다. 호치민에서 두 끼를 연속으로 쌀국수를 먹어 ‘라우 텀’이란 말은 나중에 다낭에 가서야 써먹을 수 있었다. 친구한테 미리 물어볼 걸 그랬나. 그래도 베트남어 고수인 친구가 알려준 팁 덕분에 다낭에선 고수를 넣어 쌀국수를 제대로 즐겼으니 그걸로 됐다.

다낭에선 쌀국수에 고수 넣기 성공!



DSC_0268-tile.jpg
059.jpg
103.jpg
분짜, 반쎄오, 짜조, 껌승, 반미샌드위치와 카페 쓰어다... 쌀국수만 먹기엔 아까우니 다른 메뉴도 투척:)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