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어 느낌표, 물음표, 마침표의 말
베트남어를 전공한 예전 룸메이트에게 속성 과외를 받은 적이 있다. 성조가 여섯 개라는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올렸다 내리거나 그 반대인, 배워보진 않았지만 중국어의 4성조는 대충 감이 왔지만 6성이라니. 올리고 내리는 방식으로는 성조를 또 만들어 내긴 어려워 보였다. 실제로 묵어 봐서 생생히 떠오르는 4성급 호텔과 달리 들어보기만 한 (두바이 어딘가에 있다는) 6성급 호텔처럼 상상만으로는 그 디테일을 구현하기 힘들었다.
쉬운 성조(→,↗,↘)도 있었다. 배우기 까다로운 건 나머지 성조. 단순히 올리고 내리는 방식으로만 성조를 만든다 생각했으니 어려울 수밖에. 처음 듣는 성조에 눈이 휘둥그레진 날 위해 친구는 최대한 쉽게 설명했다. 물음표, 느낌표, 마침표를 떠올리라고.
친구 말마따나 글자 위나 아래에 찍힌 성조의 모양은 물음표, 느낌표 마침표와 흡사했다. (ả, ã, ạ) 소리를 따라 하다 보니 머리 위로 세 구두점이 얼핏 떠오른다.
ả
물음표 모양대로 음을 올리고 내렸다 다시 올린다. 이해가 안 될 때 '응~?'하는 모습처럼 물음표가 연상된다.
ã
스타카토로 중간 음에서 높음 음으로 올린다. 생각 안 나던 노래 제목이 딱 떠올랐을 때의 느낌표가 떠오른다.
ạ
가장 낮은 음으로 콕 찍는 소리. 살 빼는 중에 훅 들어온 야식 제안에 '안 돼', 단호히 거절하는 마침표가 찍힌다.
단번에 어려운 성조를 재현하진 못했지만, 베트남 여행에서 얼추 흉내는 내보았다. 각각의 성조가 담긴 세 가지 기초 표현을 할 때마다 물음표, 느낌표, 마침표, 세 구두점을 닮은 상황이 연출된다.
깜~ 언(cảm ơn), 감사합니다
마트 가는 길을 묻거나 택시를 요청한 후 호텔 로비 직원에게 겸언쩍게 감사를 표했다. 2년 전에 배운 성조를 이제 와 써보려니 자신이 없던 탓이었다. 이런 성조가 맞는지 물으니 직원이 웃으며 정확한 성조를 들려준다. 그야말로 물음표다. 이 소리나 그 소리나 내 귀엔 똑같으니까. 직원을 따라 해봤지만 직원은 한 번 더 ‘깜~’의 성조를 천천히 짚어 준다. 그 친절에 감사해야 하니 '깜~ 언'을 또 해야 하는 상황. 익숙지 않은 성조 탓에 대충 얼버무리며 로비를 서둘러 빠져나온 갸우뚱한 상황이 되었다.
씬 로이(xin lỗi), 실례합니다
실례한다는 말은 위에 비해 거부 반응이 덜했다. 식당, 카페에서 주문할 때 쓰는 표현이다 보니 '씬 로!이!'하고 스타카토로 뒤 두 글자에 힘을 주자마자 직원 머리 위로 느낌표가 생기고 우리에게 집중한다. 내 캐릭터를 발견한 몬스터가 느낌표를 단 채 후다닥 다가오는 게임 속 장면이 떠올라 피식한다. 용케 성조를 제대로 냈는지는 모르지만 직원 호출이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명쾌하게 풀린 상황이 느낌표를 닮았다.
땀 비엣(tạm biệt), 안녕히 계세요
헤어지는 인사인 만큼 말 속에 이미 마침표가 느껴진다. 또 보자는 인사도 있겠지만 여행자로선 잘 있으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마음에 드는 장소야 얼마든지 또 온다는 인사를 건넬 수 있다. 일정상 그러지 못하더라도. 호치민 전쟁 박물관에선 그럴 수 없었다. 전쟁으로 철저히 파괴된 베트남의 민낯을 여과 없이 전시했기 때문. 단순히 베트남 전쟁이 어떤 전사(戰史)인지 보러 간 건데, 잔혹하게 짓밟힌 '피해자'의 얼굴을 마주했다. 비극에 압도당한 상태에선 차마 또 온다고 말할 수 없어 안녕히 계시라는 마침표를 남기며 나왔다. 이럴 때 마침표 아닌 쉼표로 여지를 주면 큰 후유증이 따른다. (아우슈비츠나 안네 프랑크의 집을 다녀온 날처럼)
그러고 보니 베트남 여행은 구두점을 닮았다. 끝없이 교차하는 오토바이를 어떻게 뚫고 지나가야 하는지 물음표가 생겼다. 직원 추천으로 시킨 껌승(베트남식 돼지고기 덮밥)을 한 입 먹었을 땐 느낌표가 생겼다.(美!味!) 다낭 바나 힐에서 새치기하려는 사람을 막을 땐 마침표도 생겼다.("Line up. Please.") 소리 없는 구두점이 스칠 때마다 '깜~언', '씬 로이', '땀 비엣'을 한 번씩 해봤다면 정확한 성조가 나왔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