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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Nov 09. 2020

하늘 위의 보조 출연자

그냥 승무원도 아닌 '엑스트라' 승무원은 누구인가

말을 모으는 여행기, 말.모.여. 외전  <승무원의 비밀스런 말> #3. 엑스트라


* 항공사별로 쓰는 말이 다를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제가 일한 항공사의 말을 다룹니다.

 

 뜻이 여럿 있는 단어 extra. 영화 등에서는 보조 출연자를 일컫는다. 그럼 엑스트라 승무원은 아주 작은 비중으로 기내 서비스 때 잠깐 나타나는 사람일까. 상상해 보니 좀 웃기다. 음료 서비스 시 보일 듯 말 듯 쓱 나타나 한 승객에게만 음료를 주고 유유히 사라지는 상상. 프랑스어로 엑스트라를 뜻하는 '피귀랑(figurant)'은 대사가 전혀 없다는 구체적 정의도 포함한다. 그 단어에 따르면, 유구무언의 서비스를 해야 하는 거니 더 이상하다.

영화 속 보조 출연자의 의미와 일맥상통 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비중이 아주 적은 서비스를 담당하는 승무원을 말하는 게 아니다. 아예 서비스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 속 엑스트라의 뜻과는 맞지 않다. 혼용하는 단어 중 서비스에 전혀 가담하지 않는다는 의미에 가까운 건 '데드 헤드'(Dead head)가 있다. 직역하면 죽은 머리. 스산한, 아니 잔인하기까지 한 느낌이 든다. 그 느낌 때문인지 데드 헤드보다 엑스트라를 훨씬 많이 썼다. 어쨌건 죽은 사람 취급이니 비행기에 타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아니 할 수가 없는 승무원인 것.


 엑스트라로 타는 경우는 여럿 있다. 그 중 몇 가지만 예를 들면,

 

① 제주발 국제선에 투입될 승무원을 김포에서 보낼 때. (제주로 순간 이동할 수는 없으니까)


② 항공법상 근무 시간을 초과하나 현지 체류하지 않는 경우. 출국/귀국 편 근무 인원을 한 비행기에 태워 보낸다. 이때 서로 번갈아가며 엑스트라가 된다. (출국 편 근무조는 귀국 편 때 쉬는 식)


③ 해외/지방 체류 중이던 승무원이 부상 등의 이유로 귀국 편에서 근무할 수 없을 때. 연결되는 출국 편에 스탠바이 승무원을 태워 보내는 경우.


 세 경우 모두 실제 겪어본 일. 그 중 ③번에 해당하는 '썰'을 하나 푼다. ①,②번에 비해 급하게 인원을 조정해야 해서 벌어진 일이다. 4일간 광주에 머무르며 광주발 비행을 담당하던 승무원 한 명이 서울로 급히 와야 했다. 예정된 근무 스케줄은 오후 편수. 스탠바이었던 내가 오전 중으로 광주로 가야한다고 연락받았다. 당일 오전 KTX 매진. 직항 항공편 없음. 오래 걸리는 고속버스 제외. 총체적 난국이었다. 편조팀의 최후통첩은 이랬다. 김포-제주, 제주-광주 오전 항공편을 엑스트라로 타고 이동하는 것. 내가 탈 두 항공편 모두 만석이라 승무원용 좌석인 '점프싯'에 앉게 되었다. (다른 엑스트라 편수처럼 승객 좌석을 미리 점유해두지 않았으니까.) 어디에 앉나 크게 상관없지만, 바쁘게 일하는 승무원 사이에 걸리적거리는 존재가 된 기분에 편치만은 않았던 '웃픈' 기억이다.

ⓒ Kelly kincaid


 여기서 파생된 단어 하나. 엑스트라 복장(혹은 옷). 버젓이 유니폼을 입고 있으면 승객 입장에선 이 사람이 엑스트라인지 뭔지 알 방도가 없다. 유니폼을 가릴 카디건 등의 옷을 엑스트라 복장이라 한다. 물론 전신을 다 가리지 않으니 승무원임을 눈치 채고 서비스를 요구하는 경우도 아주 가끔 있긴 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묻는 말은 이러하다. "엑스트라 복장 챙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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