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어로 써 보는 앙코르와트, អង្គរវត្ត
* 본문의 ‘시엠립’은 외국어표기법 상 ‘시엠레아프’지만 더 많이 쓰이는 말로 표기했습니다.
한 친구의 휴가 신청이 반려 처리되었단다. 그러거나 말거나 매정하게 그 친구만 빼놓고 갈 수 없으니 계획하던 여행을 미뤘다. 여행을 덜어낸 5일의 시간이 덩그러니 남았다. 마침 우기에 속한 9월 시엠립의 항공&숙박 가격은 혼자 어디라도 가려던 나를 유혹하기에 알맞은 수준이었다. 결제 완료. 캄보디아로 가기 고작 한 달 전의 일이다.
간단히 하는 여행 준비에 한 달은 충분하다. 하지만 외국어 ‘처돌이’ 모드로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러시아의 키릴 문자도 태국의 타이 문자도 굳이 따지자면 최소 6개월 전부터 익히기 시작했었다. (키릴 문자 이야기는 말.모.여. 19편, 타이 문자 이야기는 말.모.여. 6편 참조) 캄보디아어는 둘째 치고 앙코르와트에 대해 알아보고 루트를 짜는 것만으로도 벅찬 시간이었다.
거창하게 현지인과 소통할 목적이 아니니 시간이 나는 대로라도 크메르 문자를 익혀보기로 했다. 제목은 캄보디아어 기초문법이지만 마지막 페이지까지 글자 익히기로 구성된 얇은 책을 샀다. 첫 장을 펴는 순간 짬을 내서 익힐 수 있는 게 아님을, 여행지에서 낯선 글자를 읽어보는 소소한 재미를 느낄만한 문자가 아님을 직감했다. 자음의 첫 줄은 이랬다.
꺼-커-꼬-코-응오
‘ㅓ’ 자음(꺼/커)과 ‘ㅗ’ 자음(꼬/코/응오)이 교차하는 신박한 구성. 그림에 가까운 문자를 익히기도 쉽지 않은데, 자음을 두 계통으로 분류해 기억해야 하니 그야말로 벅찼다.
바로 까먹긴 했어도 어찌어찌 서른세 번째 마지막 자음까지 도달했다. (그렇다. 자음만 33자다) 모음으로 넘어간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자음의 계통이 나뉜 이유가 있었다. 모음이 ㅓ / ㅗ 자음을 만날 때 다른 발음을 낸다. 23자의 모음을 46가지 소리로 외워야 한다. 그러니까, ខ (커)가 모음 ‘ㅏ(ា )’를 만났을 땐 ‘카’지만, ឃ (코)를 만나면 ‘키어’가 된다. 자·모음의 개수만으로 이미 기네스북에 등재된 언어인데, 소리마저 따로 기억하라고 하면 책을 덮는 수밖에. 그 시간에 한 줄이라도 더 읽고 간 앙코르와트 역사가 여행에 더 도움이 된 건 차라리 다행이었다.
지난 글에서 쭘립쑤어(안녕하세요)와 쑤어쓰다이(안녕)를 써 보려 짧게나마 배워 본 내용을 복기했지만, 여전히 크메르어는 미지의 세계다. 꼬부랑 글씨를 해독하는 여행 속 나만의 재미가 사라진 아쉬움을 달래려 써 보는(그려 보는) 시엠립 명소 몇 군데. (내가 기억하는 문자만 포함된 장소를 추렸다) 앙코르와트, 스라 스랑(옛 왕의 목욕탕 터), 프놈 바켕(바켕 산(山), 일몰 명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