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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Dec 07. 2020

쿠션에도 등급이 있다면

서비스업계에 통용되는 쿠션 언어에 관한 단상

말을 모으는 여행기, 말.모.여. 외전  <승무원의 비밀스런 말> #4. 쿠션 언어


* 항공사별로 쓰는 말이 다를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제가 일한 항공사의 말을 다룹니다.



 쿠션 언어란 말은 승무원만이 쓰는 은어는 아니다. 서비스 업계에서 두루 쓰이는 말이기도 하고, 간혹 처세술을 주제로 한 글 같은 데에서도 팁처럼 제시되는 화법이다. 그럼에도 글로 적어 내려가 보는 건 입사 교육 때부터 ‘강박’적으로 쓰게끔 ‘강압’하는 것이 바로 이 쿠션 언어이기 때문이다.      

 

 쉬운 예로는 말 앞에 덧대는 죄송합니다만~, 실례합니다만~ 따위의 말도 있고,

 승객의 요구를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하기 위해 말씀하신 게 될지 확인해 보고 말씀드리겠다는 식으로 덧붙이는 말도 쿠션언어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후자의 경우, 보통 답은 정해져 있는데 말만 저렇게 하는 거니까. (만석인 날, 한 승객이 자리를 바꿔 달라고 할 때, "오늘 빈자리 없어요" 라고 바로 말하지 않고 확인해 보고 오겠다고 하는 식)     


 일한 지 2년 정도 됐을 때인가, 친구들에게 서비스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하소연한 적이 있다. 하필 자리를 잘못 골랐다. 적당히 친한 사이거나 여자 사람 친구를(아무래도 남자보다 여자가 공감을 잘해줄 테니) 만나는 자리였어야 되는데, '찐친'들을 만난 것이다. '힘들었겠구나...' 같은 어느 심리 상담 서적에서나 나올법한 멘트도, 공감도 없었다.   


 승무원에게 서비스 강박은 당연한 거 아니냐는 잔소리로 시작한 대화는 자신들의 업계도 서비스업계와 다를 바 없다는 신경전으로 끝났다. 고객 비위를 맞추기 위해 했던 행동이 참 주옥같았다거나, 참 20세기에 걸맞은 팀장 때문에 행동거지 하나까지 조심해야 한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욕한 거 아님) 그보다 3년 전에는 '내 군 생활이 더 힘듦'을 주제로 비슷한 입씨름을 했었는데, 사람은 역시 쉽게 변하지 않나 보다.     

 

 뭐 아무튼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각각 금융업과 유통업에 종사하는 그들도 쿠션 언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고객이, 상사가, 거래처 직원이 청자가 될 테니까. 하여간 사람이 둘 이상, 특히 비즈니스 관계로 꼬이면 골치 아픈 법이다. 

     

 그럼 쿠션 언어도 좀 급을 나눠 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유통업에서는 40×40cm 면으로 지은 쿠션 언어를, 금융업에서는 45×45cm 실크로 지은 쿠션 언어를 쓰는 식으로 말이다. 50×50cm로 제일 크고, 원단도 최고급 벨벳이 씌워진 쿠션 언어가 쓰일 곳은 내 기준에선 단연 항공업계다. (잊으셨을지 모르지만, 전직 승무원입니다) 누가 최고급 벨벳 쿠션 언어를 쓰느냐에 관해서는 친구들과의 대화 때처럼 또 옥신각신하겠지만...      


 다른 글에서처럼 이 단어의 실제 용례를 달며 마무리 짓겠다.     

한 승객이 사무장을 붙잡고 남자 승무원이 이랬데요~ 저랬데요~ 컴플레인한 경우 사무장은 우선 이렇게 묻는다. 


 “○○씨, 쿠션 언어 사용해서 말씀하셨나요?”



모든 서비스업 종사자에게 피-쓰 와 스마~일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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