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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Dec 22. 2020

일인칭 단수/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

feat.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

  열성 팬이라고 자처할 정도는 아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도 꽤 많이 읽었다. 굳이 열성 팬이 아님을 밝힌 건, '방지턱' 같은 작품이 있었기 때문. [열성] 단계에 가까워진 팬심이 앞서 말한 '방지턱' 작품에 덜-컹, 하고 덜미를 잡혀 [실망] 단계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스커레이드 시리즈는 분량만 따지면 둘 다 3권이나 되는데도, 뭔가에 홀린 듯 순식간에 마지막 장까지 읽어 버렸다. 한 번 빨려 들어간 작품 세계에서 빠져나오기 전에 또 다른 소설을 읽어야겠단 생각에 바로 짚어든 소설이 아니나 다를까, 팬심 방지턱의 역할을 하고 말았다. (기사단장 죽이기와 천공의 벌)

  그 이후에도 종종 두 작가의 소설을 읽긴 했지만, 1Q84와 매스커레이드 시리즈만큼의 흡입력을 느끼진 못했다. 하루키 작품은 오히려 소설보다 에세이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를 더 재밌게 읽었고, 게이고의 작품은 재밌게 읽히긴 하나 어느 순간 다 거기서 거기, 비슷비슷한 작품을 읽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두 작가의 소설을 잊고 지내다가 단편 소설집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오랜만에 두 작가의 소설을 읽어 보고 싶어졌고, 단편 소설이라 읽기에도 부담이 덜 느껴져 주문을 클릭-했다. 배송 온 책의 목차를 훑었는데 묘하게도 두 소설집 모두 수록된 작품이 8가지였다. 갑자기 두 대가의 작품을 교차로 읽어도 재밌겠다 싶어, 그 방식대로 읽었다.

  그러니까


  < 돌베개에 - 세금 대책 살인사건 - 크림 - 이과계 살인사건 -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 - 범인 맞추기 소설 살인사건(문제편/해결편) - 위드 더 비틀스(With the Beatles) - 고령화 사회 살인사건 -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 - 예고소설 살인사건 - 사육제(Carnval) - 장편소설 살인사건 -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 마카제관 살인사건(최종회: 마지막 다섯 장) - 일인칭 단수 - 독서 기계 살인사건 > 순으로 책 두 권을 번갈아 읽어 보았다.

(파란색 -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초록색 -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playlist♪Gary peacock - A northern tale

 좀 김빠지는 소리지만 이렇다 할 신박한 우연이 나타나진 않았다. 장르가 아예 다르다 보니 "하루키의 작품이 게이고의 작품으로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상상은 실현되지 않았다. 하루키의 책은 뒤로 갈수록 에세이처럼 느껴졌고, 게이고의 책은 끝까지 더도 말고 덜도 마는 '추리소설' 그 자체였다. 그나마 찾아낸 코딱지만 한 접점 - 등장인물이 작가와 편집자이다 - 를 억지로 끼워 맞추자면,







 <독자의 해답을 바라고 자기도 모르는 범인 찾기 소설을 발표하는 작가라니, 세상 어디에도 없을 일이었다.> 

 <편집장은 자신을 깜빡 속인 것을 두고 잠깐 쓴소리를 하긴 했지만, 비록 대부분 비판적일지언정 게재 기사에 대해 나름대로 반응을 얻은 것이 내심 기쁜 모양이었다.>  랄까.



  

playlist♪ David guetta - Night of your life

 자기도 모르는 범인을 독자가 찾아달라는 작가가 어딨냐며, 게이고 소설 속의 편집장이 쓴소리를 했다가 하루키 소설 속에선 그럼에도 그 소설이 세간의 반응을 얻었다고 기뻐하는 모양새가 얼추 만들어졌다. 

  아이러니한 점. 오랜만에 단편집을 재밌게 읽어 최민석 작가의 소설집 '시티투어 버스를 탈취하라'를 읽게 됐다. 주인공이 '원숭이 인간'인 <"괜찮아, 니 털쯤은">이 일인칭 단수의 <시나가와 원숭이>랑 아주 착착 맞아 떨어진다. 하루키 작품의 제목에 대놓고 '원숭이'가 등장하지 않는가(!). 



   심지어 "괜찮아, 니 털쯤은"에 하루키가 같은 원숭이 인간으로 묘사된다(!). 하루키 - 게이고 소설을 번갈아 읽으면 뭔가 신박한 줄거리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공상으로 끝났지만, "괜찮아, 니 털쯤은"과 시나가와 원숭이는 기회가 되면 번갈아 읽어 보길 권한다. 


   꼭 저 작품이 아니어도 '유리스탄 스타코프스키 아르바이잔 스타노크라스카 제인바라이샤 코탄스 초이아노프스키'가 나오는 소설집 동명 소설(첫 번째 작품)도 낄낄거리며 읽을만큼 재밌다. 아직 "괜찮아, 니 털쯤은"까지 밖에 못 읽었는데 빨리 더 읽어야겠다.

  어쩌다보니 무라카미 하루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집 이야기로 시작해 최민석 소설집 이야기로 마무리 지은 요상한 리뷰가 되었......(머쓱하니 빠른 퇴장)

playlist♪ Bjork - Declare indepen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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