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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ON FAVORI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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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Jan 18. 2021

몽펠리에 음악회장에서 잠을 청하다

프랑스의 네 도시 탐방기, 몽파보리(2-1)






   여름이면 프랑스 지방 도시에서는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7월, 여름의 한가운데를 지나던 몽펠리에에도 ‘여름 페스티벌’에 걸맞는 여러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예정된 공연 중엔 이름부터가 국영 방송사임을 쉽게 알 수 있는 ‘라디오 프랑스’에서 주관하는 무료 클래식 콘서트가 있었다. 기간 내에 다양한 레퍼토리의 클래식 공연이 여러 차례 기획되어 있었다. 안내 데스크를 찾아가 출입 카드를 발급받아야만 관람이 가능했지만, 발급 받은 후에 그 카드로 다른 공연을 무엇이든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게 해 두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일정에 맞는 공연을 자주 봐야지, 허세 아닌 허세를 부렸다.



   처음 본 공연은 피아노, 첼로, 비올라 구성의 실내악 3중주였다. 공연 시작 전, 홀로 앉은 동양인 청년이 쓸쓸해 보였는지 옆자리의 두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 왔다. 여행왔다가 우연히 공연 소식을 접하고 보러 왔다, 클래식은 모르지만 무료라서 일단 왔다 등 뻔한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사이, ‘잠시 후 라디오 방송이 시작됩니다’, 회장에 안내방송이 퍼졌다. ‘라디오 방송?’이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니 바로 옆에 앉은 아주머니는 ‘얘 정말 뭘 모르고 왔네’라는 표정으로 무대 왼쪽 끝의 부스를 가리킨다. 부스에는 라디오 프랑스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가 실제로 라디오 방송을 준비 중이었다. 라디오 프랑스에서 단순히 주관만 하는 공연이 아니라 보이는 라디오처럼 클래식 공연을 라이브로 진행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가본 적 없는 라디오 공개방송을 프랑스에서 본다며 으쓱하는 표정을 아주머니에게 보이니, ‘자네, 정말 운이 좋군’이라고 말하는 듯 그윽한 미소를 보인다. 금세 회장 조명이 어두워졌고 무대 중앙의 연주석에 스포트라이트가 내렸다. 이윽고 비올라와 첼로, 피아노의 선율이 회장을 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눈꺼풀은 아래로 깔렸다.     


   현악 3중주는 오른쪽 고막을 타고 왼쪽 고막으로 흘러나오는 동안 자장가가 되었다. 어머니가 날 품었을 때 태교로 현악 3중주를 들었던 건가, 뱃속에서 포근히 잠자던 태아처럼 달콤한 잠을 청했다. 연주가 끝나고 관객이 박수로 화답할 때가 되어서야 눈을 떴다. 순간 옆자리 아주머니가 나로 하여금 한국인은 관람 매너가 안 좋다는 선입견을 품는 건 아닐까하여 재빨리 박수를 따라치며 교양 있는 관객 흉내를 냈다. 소심하게 옆을 살짝 쳐다봤는데, 아주머니는 조금 전 머금었던 그윽한 미소를 그대로 머금은 채 여전히 졸고 있었다. 그 미소는 동행한 아주머니가 툭툭 치며 깨우니 머쓱한 웃음이 되었다.  

   

   이날 공연이 몽펠리에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게 되었다. 카드도 만들었으니 다른 공연도 볼까 말까 여러 번 고민했지만, 또 꾸벅꾸벅 졸 것만 같아 포기했다. 공연을 자주 보겠다는 결심은 결국 허세였다. 아주머니의 머쓱한 웃음처럼 카드를 받아들었을 때의 내 허세가 머쓱해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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