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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ON FAVORI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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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Sep 23. 2021

몽파보리 제2장

MON FAVORIS 2. 선호에의 강요

 <몽파보리> 프롤로그 먼저 읽기

https://brunch.co.kr/@ksh4545/73










    취향을 발견하려면 여러 선택지를 경험해봐야 한다. 이게 자신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 가장 빨리 알아낼 수 있는 건 그걸 겪어 보는 것이다. 커피를 안 마셔보고 커피 취향이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고,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맛보고 싶은 자가 집구석에서 마라톤 중계를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물론 ‘몽파보리’한 무언가를 찾기 위한 경험 전에 거쳐야 할 관문이 하나 있다. 호기심의 발동이다. 


    ‘최애’ 커피를 알아내고자 한다면, 아침 출근길에 카페 밖까지 은은하게 퍼진 갓 볶은 원두의 향에 이끌려야 한다. 이번 지하철을 놓치면 지각이라며 커피 향의 향긋함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취향의 발견은커녕 마침표부터 찍힌다.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그저 각성제 용도로 쓰리 샷을 때려 부은 아메리카노를 대충 흡입하는 건 커피를 즐긴다고 할 수 없다. 자고로 맛난 커피를 마셔보고 싶단 생각이 들어야 커피라는 취향의 싹을 틔울 수 있는 것이다. 카페인을 몸에서 받아들이지 못해 커피를 마시면 심장이 벌렁거려 최애 음료 후보에서 제외되더라도 일단은 마셔봐야 한다. 


    시발점이자 촉매가 될 호기심이 내겐 늘 극단에 존재한다. 어떤 메뉴에 한 번 빠지면 그 메뉴만 연거푸 먹는다. 그러는 동안 다른 메뉴엔 눈을 흘기지조차 않는다. 극단으로 치달은 취향은 특히 남성성과 관련된 카테고리에 속했다. 남자 형제만 있고, 남중, 남고를 나왔고 군대도 다녀온 내가 ‘남자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것에 알맞은 상성을 이뤘다면 좋았을 텐데, 상성은커녕 상극이었다. N극이 S극을 밀어내듯, 내 취향의 극은 운동, 게임, 자동차 따위의 남성적인 선택지를 끊임없이 밀어냈다. 물론 극단적 성향 때문에 무리에 어울려보겠답시고 이런 선택지에 관심을 보이는 척조차 시도하지 않았다. 


    땀 흘리는 걸 유독 싫어한다. 운동해서 몸이 지치는 게 싫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운동할 때 몸 밖으로 찔끔찔끔 새어 나오는 땀을 혐오했다. 안 그래도 땀이 많아서 여름철엔 조금만 걸어도 땀샘이 폭파하는데 더 격하게 움직이라니, 어불성설이다. 물론 운동을 좋아하는 여자가 없는 건 아니지만 학창 시절, 운동은 남아의 영역이었다. 초등학교 때도 축구하러 남자아이들이 우르르 나가도 덩그러니 교실에 남아 있는 유일한 남학생은 나였다. 


    학급의 나머지 절반마저 남자로 채워진 남중·남고의 풍경은 더 놀라웠다. 어쩜 이렇게 모두가 운동, 특히 구기 종목에 환장하는 건지. 같이 다니던 여섯 친구도 딱 나만 빼고 모두 축구를 좋아했다. 밥 먹기 전에 축구하고 밥 먹고 나서 축구하고 집에 가기 전에도 축구를 해댔다. 게임할 때마저 ‘피파’, ‘위닝일레븐’을 했다. (한숨) 뭐, 소외감을 느낀 건 아니다. 애초에 관심이 털끝만치도 없으니 날 빼고 축구한다 한들 섭섭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급식 전후나 방과 후에 축구해봐야 10분 남짓. 스탠드에 앉아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구경하는 건 고역이라 할 만한 인내심을 요구하진 않았다. 그들이 피시방에서 최애 선수에 빙의해 슛을 날릴 때 난 싸이월드 일촌 순회를 하며 일촌평을 날리면 됐다. 섭섭했던 일이 한 번 있긴 했다. 제발 축구 안 하고 집에 갔으면 했던 날이지만, 1:6의 상황이라 고집을 꺾는 건 내가 먼저였다. 한 친구가 기다려주면 치킨을 사준다기에 미끼를 덥석 물어버렸다. 생각보다 축구가 길어진 탓에 학원 갈 시간이라는 핑계로 오매불망 기다리던 치킨이 없던 일이 됐다. 화가 잔뜩 난 나머지 학교 근처 KFC에 들어가 치킨을 사내라고 있는 소리 없는 소리를 다 지르던 기억이 난다. (그때 일하시던 직원에게 소소한 사과를...)


    문제는 이런 취향을 강요할 때다. 군대에서 딱 세 번, 축구를 했다. 애초에 내 취향은 고려되지 않는 집단 아닌가. ‘전 축구 안 합니다’라고 항변해도 나와서 머릿수라도 채우라는 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축구를 해 본 적이 없는 걸요.’라는 소심한 핑계가 통할 리 만무하다. 남자라면 자고로 축구를 해 봤다고 가정하는 게 상식인 상황이었다. 이쯤 되면 무리에 어울리기 위해서라도 내 취향을 극단에서 살짝 비껴 옮길 수도 있을 텐데, 그러지 않았으니 나도 참 별종이다. 구석에 처박혀 빈둥거리고만 있으니 선배가 차라리 상대편 골대에 어슬렁거리다 공 날아오면 골대 안으로 툭 밀어 넣기라도 해보란다. 하라는 대로 했더니 이번엔 오프사이드라면서 냅다 성을 낸다. 여기에 한 대답은 이후 축구 선수 목록에서 날 영구 제명하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오프사이드가 뭡니까?



    운동 관련 ‘썰’이 많아 주로 운동 얘길 썼지만, 운동이든 게임이든 자동차든, 남자끼리 모이면 무한 증식하는 주제가 여전히 내겐 낯설다. 많은 이들이 생각보다 많은 부문에 관심을 가지고, 자기 취향을 찾으려고 뭔가에 호기심을 갖는 모습이 신기했다. 어렸을 땐 관심도 없는 걸 궁금해하는 척하도록 강요 받는 게 싫어 저런 남의 노력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족구가 그토록 하고 싶으면 자기들끼리 하면 될 걸, 싫다는 사람보고 왜 억지로 하라는 건지, 족구하고 있네, 투덜거렸다. (욕한 거 아님) 지금은 관점이 좀 유연해졌다. 누구와 어울리던 그들의 취향에, 관심사에 공감을 표하지 못해 진득하게 어울리지 못했던 뒷맛이 씁쓸하게 남았나 보다. 내 고집을 잠시 꺾고 남의 취향을 공유해보려 했다면, 시간이 지난 지금 그들과 추억할 에피소드가 하나쯤은 남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B×W건, 페×리건, 로고 모양도 몰랐거니와 왜 외제 차를 보고 ‘우와’ 감탄하는지 공감조차 못 한 내가 지금은 그나마 운전할 때 외제차는 박으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으니, 얕게나마 관심을 가지면 상식 비슷한 게 남기도 한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취향에 관한 나의 극단은 여전하다. 자칭 3대 금기 사항인 ‘축구, 등산, 달리기’를 같이 하자고 누군가 제안해 오면 0.001초도 고민하지 않고 칼 같이 거절한다. 친한 지인들로부턴 가끔, 아니 자주 섭섭하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선뜻 제안의 손을 내밀면 한 번쯤은 덥석 받아줄 법도 한데 그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니 섭섭해 할만하다. 취미를 누릴 수 있는지, 어떤 취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것과는 별개로 뭔가를 같이 한다는 점에 의미를 두기에 그렇게 반응한다는 걸 알지만, 철옹성 같은 내 확고함은 꺾일 틈조차 내어주지 않는다. 


    그런 틈이 간혹 한 번씩 생기는 때가 있다면, 그렇다, 역시 여행 때다. 무려 리옹에선 프랑스 월드컵 결승 경기를 TV로 시청했다. 2002년 월드컵 이래로 처음이었다. 산은 보라고 있는 거지만, 거길 올라야만 보이는 엄청난 풍경(특히 야경)이 있다면 서슴없이 산을 타기도 한다. ‘등린이’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어 서울 야경 명소로 손꼽히는 인왕산은 가볼 생각도 안 하던 주제에 여행만 가면 야경을 보겠답시고 온갖 언덕과 동산을 올랐다. (헥헥) 달리기는 아직 여행 중에 해 본 적이 없지만, 그럴싸한 이유를 갖다 붙일 수 있다면 한 번쯤 할 것 같기도 하다. 소매치기를 뒤쫓느라 전력 질주를 한다거나 하는 이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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