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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ON FAVORI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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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Jan 17. 2021

보르도-의 로제와인

프랑스의 네 도시 탐방기, 몽파보리(1-3)






   아침에 한 잔, 점심에 한 잔, 저녁에 한 잔씩 와인을 마신다. 와인의 도시 보르도를 여행하며 하나의 로망처럼 그려진 루틴을 따르고 싶었으나... (보르도 주민도 저렇게 삼씨 세 잔 와인을 마시진 않겠지...) 와인의 도시를 최대한 만끽하고 싶었던 알쓰 여행자는 촘촘히 쪼갠 일정의 전체 테마를 ‘와인’으로 삼는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 머무는 내내 삼씨 세 잔 루틴을 따르진 못할지언정 단 하루만큼은 술도 못하는 주제라는 걸 잊고 하루를 와인으로 시작해 와인으로 끝내보기로 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그 정도 용기는 내도 좋지 않냐는 마음으로.


    이 호기를 처음 자극한 건 보르도 패스였다. 여러모로 쏠쏠한 시티패스라 덜컥 샀는데, 구입과 동시에 패스에 딸린 몇몇 조건이 일정에 족쇄를 채운다.


1) 와인 박물관 ‘시테뒤뱅’(Cité du vin)은 오전에만 입장 가능

그냥 오후에 돈 내고 들어가자니 입장료가 20유로로 만만치 않다. (보르도 패스 1일권은 29유로) 패스값이랑 맞먹으니 패스를 쏠쏠히 활용하려면 오전에 가는 수밖에...


2) 오후 반나절동안 다녀오는 와이너리 2군데 투어(오메독/메독 지역 한 군데씩) 30% 할인

렌트를 하지 않는 이상 와이너리를 혼자 찾아가긴 쉽지 않다. 할인도 받고 특색이 다른 두 지역의 와이너리를 한 번에 둘러볼 수 있으니 이 역시 못 본 척할 수 없는 혜택이었다.


   딱히 미리 짜 둔 일정이 없었기에 채워진 족쇄를 풀지 않고 오전은 시테뒤뱅, 오후는 와이너리 투어를 가기로 했다. 시테뒤뱅 입장료가 20유로나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와인 한 잔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 꼭대기 층에 있는, 외벽을 통유리로 마감해 전망을 볼 수 있(지만 내가 갔을 때 전망의 반은 공사판이었다)는 바에서 원하는 와인 한 잔을 골라 맛볼 수 있다. 꼴딱꼴딱, 아침부터 보르도 레드 와인 한 잔을 마셨다.

시테뒤뱅 꼭대기 층 와인 바에서 보르도 레드와인 한 잔


   13시 30분, 관광안내소에서 투어 신청자를 태운 버스가 메독의 한 와이너리로 출발했다. 가는 내내 창밖에 펼쳐진 포도밭이 지겨워질 즈음 와이너리에 도착했다. 사실 투어 중에 와인을 무작정 마시진 않는다. 자기 취향에 맞는 와인을 찾는 게 목적이라서 한두 모금 정도 맛보는 게 전부다. 직원이 와인을 너무 많이 따라줬을 땐 와인을 입에 머금었다가도 맛과 향만 확인하고서 빈 통에 뱉게 한다. 메독 와이너리에서 3잔, 오메독 와이너리에서 2잔을 테이스팅했다. 까딱 잘못 마셔버리면 금세 취할 테니, 말 잘 듣는 어린이마냥 한 모금만 마시고 남은 와인은 통에 양보했다. 왠걸, 오메독 와이너리의 와인은 입맛에 맞아 꿀떡꿀떡 두 잔을 싹 비웠다.


두 군데를 들렀던 와이너리 투어


   아침 댓바람부터 혈관에 알코올을 흘려보내며 북돋은 여흥을 깨고 싶지않아 저녁을 먹자마자 검색해 둔 와인 바로 향했다. 보르도 와인에 애정이 넘치는 직원이 추천해 준 와인을 두 잔 마셨다. 추천을 부탁했더니 보르도 와인 지도까지 가져와 펼쳐 들며 내 취향에 맞는 와인을 찾아 주려던 열정 넘치던 직원이었다. 그 열정을 거절할 순 없으니 이미 주량의 한계치를 넘겼지만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한 잔만 더 마시기로 했다. ‘ROSES(로제와인)', 그러고 보니 보르도 로제 와인은 시테뒤뱅에서도, 투어에서도 마셔 보지 못했다. 두 번째 와인의 묵직한 탄닌이 입 안에 남아있어 로제와인으로 입가심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로제와인을 주문했는데, 직원은 당황한 채 되묻는다.



로제와인이요?


   주문을 제대로 듣지 못해 되묻는 어조가 아니었다. 정말 이 메뉴를 고를거냐는 말투였다. ‘보르도=레드와인’이 공식처럼 여겨진다지만, 와인 선택의 9할은 개인 취향이다. 보르도에서 로제와인을 못 마실 이유는 없다. 다만, 보르도 와인에 끓어 넘치는 애정을 보여주던 직원마저 만류하는 이유는 로제가 레드만큼 맛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취향을 탐하는 여행에서 나만큼이나 취향이 확고한 사람을 만난 게 반갑기도 했고 그의 솔직함을 믿고 로제 대신 새로운 레드 와인을 한 잔 시켰다.

 

  결국 보르도에서 끝끝내 로제와인은 마시지 못했다. 다음에 와인을 마실 기회가 있다면, 보르도 로제와인을 마시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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