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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ON FAVORI 04화

파리-의 아마트리치아나

프랑스의 네 도시 탐방기, 몽파보리 (1-2)

by Fernweh









집에서 7~8분 정도를 걸어 내려오면 몽토게이 거리 초입에 도착한다. 파리하면 떠오를 법한 소소한 낭만이 좁은 길을 따라 이어지는 골목. 비슷한 분위기를 품은 골목이야 파리에서 찾으라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만 거리 입구에 세워진 작은 돔을 씌운 정방형의 문 때문인지 유독 이 골목에 마음이 갔다. 암녹색 문을 통과하는 게 낭만의 포문을 여는 의식 같았다. 파리를 간다는 누구에게든 이 골목을 가보라고 권하곤 했다. 에펠탑, 개선문, (당시엔 불타지 않았던) 노트르담 같이 가창하고 유명하진 않지만 적어도 뻔한 곳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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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10114_202945587.jpg RUE MONTORGUEIL


베이지색 외벽에 오층 남짓한 건물이 골목 양옆을 타고 산책자의 시선을 골목 끝으로 모은다. 줄지어 선 같은 모양, 같은 색의 건물이 지루하지 않도록 건물 사이사이에 특색 있는 가게가 들어서 있다. 입구에서 삼십여 걸음 걸으면 아침마다 바게트에 발라 먹길 좋아하던 망그 코코 초코 블랑(mangue coco choco-blanc, 망고&코코넛&화이트 초콜릿) 잼을 파는 잼 가게가 있다. 아직 집에 노랗고 달콤한 잼이 반 넘게 남아 있으니 눈짓으로 인사만 건네고 지나친다.


대신 골목 끝자락에 닿아 있는 초콜릿 가게로 가 23유로짜리 초콜릿 상자 하나를 사기로 했다. 어림잡아 3만원 돈이라 초콜릿치곤 비싸게 느껴진다. 기념일을 챙길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도 상자 안에는 갖가지 초콜릿이 세 줄이나 꽉꽉 담겨 있어 가성비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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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꼬르륵 하고 배에서 울리는 소리에 점심 먹으러 나왔던 참인 걸 새삼스레 깨닫는다. 잼 가게와 초콜릿 가게 사이, 오른편에 수줍게 고개를 내민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들어간다. 예전에 우연히 파스타를 먹으러 들렀다가 한국인 입맛에 딱 맞는 ‘아마트리치아나’ 파스타를 먹고 그 맛에 반해 자주 찾는 곳이다. 그때 그 맛이 벌써 떠올라 풍기지도 않는 마늘의 알싸한 냄새가 식당 안에 퍼져있는 것만 같았다. 늦은 점심 시간엔 손님이 별로 없다. 낯익은 금발의 호리호리한 남자직원에게 손짓을 하고 메뉴판은 보는 시늉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주문하다.


“Comme d’habitude.”(늘 먹던 거로요.)

직원도 별말 없이 카운터 포스기에 주문을 입력한다. 빵과 파스타에 뿌려 먹을 치즈 가루를 미리 내오는 직원은 포니테일을 한 여자직원이다. 빵과 치즈 통을 내려놓으며 오늘 저 친구 일하는 날이 아니니 필요한 게 있으면 자기한테 말하란다. 아무리 단골이라도 휴무인 직원에게 일을 부릴 순 없다. 남자직원과 눈이 마주쳐 오늘 쉬는 날이냐고, 그럼 말을 하지 왜 주문을 받았느냐며 멋쩍게 사과를 건넸다. 여직원의 말을 곱씹으니 미안한 마음이 또 부풀어 아마트리치아나에서 풍기는 마늘 향이 더 알싸하게 느껴졌다. 괜히 매상이라도 올려줘야겠단 생각에 디저트로 티라미수를 시켜 먹었다.


한 메뉴에 빠지면 몇 날 며칠 그 메뉴만 먹는 나이기에 단골 가게 직원들과 안면을 트는 경우도 잦았다. 그렇게 쌓인 친분은 종종 ‘서비스예요’라는 말과 함께 달콤한 디저트로 돌아오곤 했다. 엉겁결에 무례 아닌 무례를 저지른 내 쪽에서 선뜻 디저트를 달라고 한 경험이었다.


IMG_3226.jpg AMATRICIANA
IMG_3453.jpg 괜히 티라미수도 하나 시켜먹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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