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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ON FAVORI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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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Jan 16. 2021

파리-의 아마트리치아나

프랑스의 네 도시 탐방기, 몽파보리 (1-2)



  






    집에서 7~8분 정도를 걸어 내려오면 몽토게이 거리 초입에 도착한다. 파리하면 떠오를 법한 소소한 낭만이 좁은 길을 따라 이어지는 골목. 비슷한 분위기를 품은 골목이야 파리에서 찾으라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만 거리 입구에 세워진 작은 돔을 씌운 정방형의 문 때문인지 유독 이 골목에 마음이 갔다. 암녹색 문을 통과하는 게 낭만의 포문을 여는 의식 같았다. 파리를 간다는 누구에게든 이 골목을 가보라고 권하곤 했다. 에펠탑, 개선문, (당시엔 불타지 않았던) 노트르담 같이 가창하고 유명하진 않지만 적어도 뻔한 곳은 아니다.


RUE MONTORGUEIL

   

    베이지색 외벽에 오층 남짓한 건물이 골목 양옆을 타고 산책자의 시선을 골목 끝으로 모은다. 줄지어 선 같은 모양, 같은 색의 건물이 지루하지 않도록 건물 사이사이에 특색 있는 가게가 들어서 있다. 입구에서 삼십여 걸음 걸으면 아침마다 바게트에 발라 먹길 좋아하던 망그 코코 초코 블랑(mangue coco choco-blanc, 망고&코코넛&화이트 초콜릿) 잼을 파는 잼 가게가 있다. 아직 집에 노랗고 달콤한 잼이 반 넘게 남아 있으니 눈짓으로 인사만 건네고 지나친다.


    대신 골목 끝자락에 닿아 있는 초콜릿 가게로 가 23유로짜리 초콜릿 상자 하나를 사기로 했다. 어림잡아 3만원 돈이라 초콜릿치곤 비싸게 느껴진다. 기념일을 챙길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도 상자 안에는 갖가지 초콜릿이 세 줄이나 꽉꽉 담겨 있어 가성비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문득 꼬르륵 하고 배에서 울리는 소리에 점심 먹으러 나왔던 참인 걸 새삼스레 깨닫는다. 잼 가게와 초콜릿 가게 사이, 오른편에 수줍게 고개를 내민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들어간다. 예전에 우연히 파스타를 먹으러 들렀다가 한국인 입맛에 딱 맞는 ‘아마트리치아나’ 파스타를 먹고 그 맛에 반해 자주 찾는 곳이다. 그때 그 맛이 벌써 떠올라 풍기지도 않는 마늘의 알싸한 냄새가 식당 안에 퍼져있는 것만 같았다. 늦은 점심 시간엔 손님이 별로 없다. 낯익은 금발의 호리호리한 남자직원에게 손짓을 하고 메뉴판은 보는 시늉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주문하다. 


   “Comme d’habitude.”(늘 먹던 거로요.) 

   직원도 별말 없이 카운터 포스기에 주문을 입력한다. 빵과 파스타에 뿌려 먹을 치즈 가루를 미리 내오는 직원은 포니테일을 한 여자직원이다. 빵과 치즈 통을 내려놓으며 오늘 저 친구 일하는 날이 아니니 필요한 게 있으면 자기한테 말하란다. 아무리 단골이라도 휴무인 직원에게 일을 부릴 순 없다. 남자직원과 눈이 마주쳐 오늘 쉬는 날이냐고, 그럼 말을 하지 왜 주문을 받았느냐며 멋쩍게 사과를 건넸다. 여직원의 말을 곱씹으니 미안한 마음이 또 부풀어 아마트리치아나에서 풍기는 마늘 향이 더 알싸하게 느껴졌다. 괜히 매상이라도 올려줘야겠단 생각에 디저트로 티라미수를 시켜 먹었다.


     한 메뉴에 빠지면 몇 날 며칠 그 메뉴만 먹는 나이기에 단골 가게 직원들과 안면을 트는 경우도 잦았다. 그렇게 쌓인 친분은 종종 ‘서비스예요’라는 말과 함께 달콤한 디저트로 돌아오곤 했다. 엉겁결에 무례 아닌 무례를 저지른 내 쪽에서 선뜻 디저트를 달라고 한 경험이었다. 


AMATRICIANA
괜히 티라미수도 하나 시켜먹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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