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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ON FAVORI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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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Sep 23. 2021

몽파보리 제1장

MON FAVORI 1. 먹고 마시는 취향

 * <몽파보리> 프롤로그 먼저 읽기

https://brunch.co.kr/@ksh4545/73







    가장 좋아하는 것. 그러니까 ‘최애’를 화두로 대화의 물꼬를 틀 때 예외 없이 누구나 한 마디씩 거들 수 있는 주제는 먹고 마시는 일이리라. 다른 예를 떠올려보자. 최애라는 단어를 붙이니 이상형 월드컵 하듯이 최애 배우라거나 최애 아이돌 멤버를 뽑아야 할 것도 같은데, 연예인에 관심 없는 사람에겐 당최 뭘 뽑으라는 건지, 대화가 될 리 만무하다. 


    먹고 마시는 일은 어떤가. 먹고 마시지 않고 살 수 없는(물론 며칠, 길게는 몇 주 ‘버틸’ 수야 있겠지만) 우리는 반복되는 밥상 속에 각자의 ‘최애’ 음식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아무리 식욕이 없는 자도 허기의 한계치에 다다르면 밥 한 톨이라도 씹어 넘겨야 한다. 어느 방송에서 배두나 씨가 자기는 굶어 죽겠다 싶을 때가 되어서야 뭘 먹는데, 그마저도 김치에 밥이 전부라고 밝혔다. 최애라는 말을 붙이기에 초라하기 그지없는 상차림이지만 그녀에게 최애 음식은 밥과 김치인 것이다. ‘음’과 ‘식’의 선택지가 밥과 김치뿐일지라도 한 사람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네 도시를 여행하며 만난 음식에 관한, 구체적으로는 음식을 향한 취향에 관한 이야기로 첫 번째 챕터를 시작할까 한다. 


    입이 짧은 편이다. ‘짧다’라고 단정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말한 이유는 뭐든 가리지 않고 다 먹는 건 아니니 입이 짧은 건 맞는데, 그렇다고 편식왕이라고 불릴 만큼 짧은 입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함할 만한 대식을 펼치는 한 유튜버가 채소는 죽었다 깨도 안 먹는다고 밝히는 장면을 보며 ‘이거야말로 편식이지’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물론 나도 굴이라던가 번데기라던가 억만금을 줘도 절대 안 먹을 음식이 있긴 있다. (돈은 챙기고 튈 거니까 함부로 먹어 보라 하지 말길) 그런 메뉴가 아니고서야 극단적으로 편식하진 않기에 입 짧은 걸 인정은 한다만, 입이 짧다고 잔소리 듣는 걸 썩 유쾌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 섭식 패턴은 편식보다는 편애에 가깝다. 가장 가까이서 내 식습관을 평생 지켜본 가족과 친지들이 편식으로는 깜냥도 되지 않는 날 편식 대장쯤으로 여기는 이유는 어떤 음식에 대한 편애를 편식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리라.

  

    초밥을 먹었다는 소식은 생선을 먹지 않는 아들을 둔 어머니께 꽤 충격적이었다. 생선보다는 고기를 좋아하던 초등학교 3학년의 나는 성장기 자녀에게 오메가 쓰리를 비롯한 양질의 풍부한 영양소를 공급하고자 했던 어머니에게 자주 반기를 들었다. 종류를 바꿔 가며 생선을 밥상에 올려도 소용없었다. 흰살생선이냐 붉은 살 생선이냐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날, 그 순간 내가 원한 건 고기였다. 그 고기가 식욕을 떨어뜨린다는 파란색이었어도 흰 살, 붉은 살을 다 제치고 푸른 살을 향해 젓가락을 날렸을 것이다. 어떤 시어머니도 타박하기 힘들 고기와 생선이 번갈아 오르는 밥상을 매일 차리신 어머니의 노고에 감사할 줄 아는 철든 꼬마 아이였다면 투정 한 번 부리지 않았을 텐데, 난 그렇게 빨리 철이 들지 못했다.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정확히 짚고 넘어가기 위해 그날의 식사 장면을 클로즈업해 보겠다. 먹기 싫다고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어도 그 입술 안으로 파고드는 생선 살을 뱉지는 않았다. 즉, 먹긴 먹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내가 생선을 아예 먹지 않던 아이라고 기억하고 계셨다. 그런 아이가 용케 초밥을 먹었다고 하니 놀라실 수밖에.      


    초밥을 먹은 날은 (웬일로) 고기보다 생선이 당긴 날이었고 그저 먹고 싶은 메뉴를 먹었을 뿐이다. 가족이나 친한 지인들이 자주 ‘너 ×× 안 먹지 않아?’라고 물어오는 걸 보면 음식에 대한 내 순간의 편애가 꽤 심한 모양이다. 게다가 변칙적이기까지 해서 ‘××’에 들어갈 메뉴는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결혼식 뷔페에서 과일을 가득 담아왔더니 대학 동기가 과일 안 먹지 않냐고 물었다. 곱창 먹자는 제안을 들은 친구는 곱창 못 먹는 애가 왜 곱창 타령하냐고 놀란 눈을 하고 물었다 이러다간 아무것도 못 먹는 사람이 될 지경이다. 과일도 곱창도 그 동기, 그 친구와 있던 순간에 마침 먹기 싫었던 메뉴일 뿐, 구미가 동하면 하염없이 먹어 재끼는 게 바로 나다. 이런 편애가 오래 지속되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한 음식에 꽂히면 이상하리만치 다른 음식에 군침을 흘리지 않는다. 평소 잘 먹던 음식이라도 말이다. 곱창이 없어서 못 먹는 나인데도 삼겹살을 편애하는 동안엔 한 끼라도 더 삼겹살을 먹으려 한다. 하필 그 기간에 날 만난 친구는 날 곱창 못 먹는 사람쯤으로 여기게 할 만큼 내 편애는 길고도 질기다.


    파리에 살 때의 음식 편애도 길고 질겼다. 편애의 대상은 집에서 도보 8분 거리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펜네 아마트리치아나(Penne amatriciana)’였다. 얼마나 사랑에 빠졌는지 식당이 있는 골목 끝에 다다를 때부터 아마트리치아나의 알싸한 마늘 향이 코끝에 느껴지곤 했다. 참 질기디 질긴 음식 편애는 여행 덕에 간헐적으로 유연해진다. 유연한 마음가짐으로 리옹 여행 때 남의 취향을 믿고 ‘Cervelle de canut’라는 낯선 메뉴에 도전해보기도 했다. 함부로 남의 취향을 따른 말로는 리옹 편에서 확인하시길...     


    먹거리가 아닌 ‘몽파보리’한 마실 거리를 떠올리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부터 생각난다. 그렇다, 난 ‘얼죽아’다. 우리나라처럼 얼음 동동 띄운 찬 커피를 쉽게 찾기 힘든 유럽에서도, 38도에 육박하는 날씨에도 테라스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셔야 한다는 악명 높은 유럽에서도 어떻게든 생명수를 찾아내겠다며 고군분투하기도 했다. (이 에피소드는 <말을 모으는 여행기>에 자세하게 담겨 있다. 깨알 같은 전작 홍보.) 


    그나마 취향을 덜 타는 마실 거리라면 단연 술이다. 그런데 난 좋아하는 술이 없다. 이 술이 괜찮다, 저 술이 입맛에 맞다, 취향 운운하기 전에 이미 취해버리는 가련한 '알쓰'라서 그렇다. 주종 불문 치사량이 한 잔이니 술맛을 가늠해 보는 허세를 부릴 수조차 없다. 그런데도 술을 넘기는 식도와 이를 해독할 간에 억지로 용기를 불어넣는 때가 있다면 역시나 여행이다. 아일랜드에선 주제를 모르고 감히 위스키를 마셨고, 프랑스 지방 도시를 여행하는 콘셉트는 나완 너무 어울리지 않는 와인 여행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잘 살아 있으니 걱정은 접어두자.)

    

    보르도와 몽펠리에도 와인 여행 루트에 속해 있었다. 와인 여행 중이었고, 와인의 본고장 보르도에 왔고, 질 좋은 지역 와인으로 입소문이 퍼지던 랑그독-루시옹(Languedoc-Rousillion, 몽펠리에가 속한 지방)에 왔으니 편애의 대상은 오로지 와인이었다. 어차피 한 잔이면 얼굴은 시뻘게지겠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술은 와인입니다’라고 떵떵거려 보려는 수작으로 와인을 내 편애 주류로 등극시켰다. 물론 그 편애는 몽펠리에와 보르도에서 손바닥 뒤집듯 뒤집혀 버렸다. 역시 여행은, 이래서 참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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