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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ON FAVORI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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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Jan 16. 2021

몽펠리에-의 맥주

프랑스의 네 도시 탐방기, 몽파보리 (1-1)






   




    몽펠리에행 기차의 좌석은 유독 좁게 느껴졌다. 옆 좌석을 차지한 육중한 누군가의 몸뚱이 때문이려나. 토라진 짝꿍이 책상 위에 그어 놓은 선을 넘지 않으려 애쓰는 듯이 가만히 웅크려 앉은 채로 몽펠리에에 도착했다. 체크인도 요란했다. 버젓이 결제된 예약인데 결제가 안 됐다고 고집부리는 프런트 직원 때문에 신호가 약한 와이파이를 겨우 붙잡고 결제 완료가 적힌 확약 메일을 보여줘야 했다. 속 좁은 직원 때문인지 안 그래도 좁은 호텔 방이 더 좁아 보인다. 좁아’터진’ 방이네, 나직하게 불평을 뱉었다. 


    한여름 남프랑스 여행은 고단하다. 애초에 몽펠리에는 계획에 없었다. 툴루즈에선 날씨 때문에 딱히 뭘 한 게 없는데도 유달리 피곤했다. 그 상태로 아비뇽으로 바로 가려니 여정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아비뇽으로 가기 전, 몽펠리에에서 2박 3일간 여독을 풀 심산이었다. 유레일패스가 있어서 기차는 아무 때나 타면 됐고, 아비뇽 숙소도 무료 취소가 가능해서 일정 변경은 어렵지 않았다. 일정 변경은 쉬웠지만 여독 풀기는 쉽지 않았다. 기차에서 웅크렸던 몸을 잔뜩 웅크려진 방에 또 욱여넣고 있자니 갑갑했다. ‘어휴 뭘 쉬냐, 나가자.’ 


    마음을 다잡고 겨우 밖으로 나왔는데 하다 하다 골목도 좁아 보인다. 골목을 둘러싼 황토색 외벽의 건물이 골목 끝자락에 드리운 한여름의 무더위처럼 황톳빛 음영을 내리깔아 골목이 한층 더 좁게 느껴졌다. 광장으로 이어지는 골목을 따라 잠자코 걸었다. 골목 끝에 다다르고 나서야 황톳빛 음영이 박명에 씻겨 나간다. 아니다. 단단하게 가라앉았던 음영을 씻겨 낸 건 박명이 아니라 광명이었다. 


    넓을 광. 마당 장. 이래서 넓게 탁 트인 장소를 가리켜 광장이라고 하는 건가. 잔뜩 움츠렸던 여행의 기세가 펴진다. 다만 한 가지, 몸 안에 케케묵은 질척임은 아직 찐득하다. 이 질척이는 기분을 어떻게 떨쳐낼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며 광장 주변을 살피는데 나란히 자리한 노천카페 몇 군데가 보인다. 맥주구나. 틀림없이 맥주가 당겼다. 여기 오기 전, 몽펠리에가 속한 랑그독-루시옹 지역의 와인이 각광받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 고로 와인을 마셔야 할 것 같았지만 와인은 이 찐득한 기분을 말끔히 씻어낼 수 없을 테니 나중에 마시기로 했다. 지금은 맥주다. 뭐, 맥주로 갈증부터 해소한 뒤 향긋한 와인을 즐기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서글프게도 난 알쓰라 불가능하다. (치사량=주종불문 한 잔)


    테라스 석에 앉아 골목에서 들어올 때와는 반대 방향으로 시선을 던지며 코미디 광장을 지긋이 바라본다. 시신경에 담긴 탁 트인 광장이 한 모금 머금은 맥주에 섞이고, 그 청량한 목 넘김이 질척거리는 무언가를 쓸어내렸다. 그 개운한 뒷맛을 어찌 잊으랴. 5년 뒤, 몽펠리에를 다시 찾았을 때 가장 먼저 한 일도 코미디 광장이 보이는 노천카페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신 일이었다.



몽펠리에 코미디 광장, 노천카페 테라스에서 광장을 바라보며 마시던 맥주


MONTPELLIER, PLACE DE LA COMEDIE

  


    여담: 트래비(travie) 여행 작가 아카데미 에세이 과제로 몽펠리에에 관한 에세이를 썼었다. 단락마다 몽펠리에가 좋다고, 몽펠리에를 쏘다니던 추억이 아름답기 그지없다고 했는데, 정작 그 이유가 드러나지 않아 ‘고구마 백 개’라는 피드백을 받았다.(한동안 내 별명은 ‘몽펠리에’가 되었다) 몽펠리에가 왜 좋았는지 곱씹으며 에세이를 고쳐보려 했지만 당시엔 답이 나지 않아 다른 도시에 관한 에세이를 새로 써야 했다. 그때 찾지 못했던 이유가 이 글에는 담겨있길 바랄 뿐이다.(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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