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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ON FAVORI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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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Jan 19. 2021

보르도 근교에서 헛물을 켜다

프랑스의 네 도시 탐방기, 몽파보리(2-3)






   와인에 관해 글을 써보려 하지만, 아는 지식을 다 꺼내 봐도 ‘와알못’ 수준이라 전문 지식을 담아낼 순 없다. 와인 여행이랍시고 제 나름의 허세도 부리고 싶지만, 주량이 와인 한 잔인 알쓰라 부릴 수도 없다. 그나마 쓸 수 있는 거라곤 입맛에 맞는 와인이 무엇인가 하는 정도. 말 나온 김에 내 취향을 저격한 와인이 뭔지 먼저 밝히자면, 레드와인은 생테밀리옹(St.Emilion), 화이트와인은 알자스(Alsace) 지역의 와인이다.

  

   ‘몽파보리’ 네 도시엔 알자스 지역의 도시가 없어 화이트와인 이야기는 제쳐두자. 일단 생테밀리옹의 레드와인부터 만나러 가는 길, 아니 글이 되겠다.     


   생테밀리옹 와인 맛에 빠진 건, 와이너리 이름이 L로 시작하는 생테밀리옹 와인 한 병을 마신 뒤부터였다. 나만 알고 싶은 단골 맛집을 선뜻 소문내지 못하는 마음으로 ‘L 와이너리’라고 쓴 게 아니다. 야속하게도 여전히 L 뒤에 붙은 이름을 정확히 모른다. 마드리드 여행 때 면세점 직원 추천으로 덜컥 산 와인. 자정이 넘어서 도착하고서도 마드리드에 온 기념이라며 따버린 와인. 여흥에 취하고 술에 취해 그 흔한 인증샷도 남기지 않은 와인이었다. 다음 날, 예약해 둔 투어 픽업 시간에 늦지 않으려 서두르느라 전날 밤의 술상을 쓰레기통으로 한번에 밀어 넣었고, 와인병과 함께 쓰레기통으로 빠진 와인 이름은 그렇게 미궁으로 빠져 버렸다.


   ‘L’ 와인의 정체는 끝끝내 못 찾았지만, 그날 이후 레드와인, 하면 생테밀리옹 와인부터 찾았다. 자주 마시진 못 했지만 생테밀리옹 와인은 늘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러니 보르도 여행 중 기차로 1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는 생테밀리옹에 안 갈 이유가 없었다. 마드리드에서 마신 ‘L’ 와인을 찾아볼까도 했으나 L로 시작하는 와이너리는 너무 많았다. 포기할 즈음 ‘메종 뒤 뱅’(Maison du vin) 와인 테이스팅 코스를 보게 되었다.


   이미 보르도에서 와이너리 투어를 두 번이나 했으니 여기서도 와이너리 투어를 할 필요는 없다. 메종 뒤 뱅은 관광안내소 바로 옆에 붙어 있어 접근성도 좋고, 8유로만 추가하면 최상위등급(GCC: Grand Cru Classé) 와인을 3잔이나 테이스팅 할 수 있는 데다가 따로 발품 팔아 와이너리에 투어 예약을 해야 하는 수고도 덜 수 있어 그야말로 일석삼조의 계획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메종 뒤 뱅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헛물켰음을 깨달은 건 꼼꼼히 알아보지 않은 내 탓이었다. 코스의 종류, 가격, 영업시간만 확인하고선 기차역에서 내려 곧장 메종 뒤 뱅으로 향했다. 그런데 테이스팅실 문이 굳건히 닫혀있었다. 테이스팅 코스는 현장 예매만 받는다더니, 뭔가 싶었는데 문짝에 더 대문짝만하게 붙어 있는 연간 운영 계획표를 보고서야 문이 닫힌 이유를 알아차렸다. 7월엔 목, 금, 토, 일만 운영한다고... 내가 생테밀리옹을 찾은 날은 화요일이었다.


날 막아 선 테이스팅 코스 연간 운영 계획표. 7월 2-3주차는 jeu/ven/sam/dim(목/금/토/일)만 운영.
애꿎은 와인 샵만 구경

   

그나마 관광안내소가 바로 옆에 붙어 있던 게 다행이었다. 직원에게 받아 든 와이너리 리스트를 안내소 구석에 앉아 하나하나 살펴 보고 가장 적당해 보이는 와이너리에 전화를 걸어 오후 투어를 예약했다. 이런 수고를 피하려고 메종 뒤 뱅에 간 건데, 잠시 피했던 수고는 보란 듯이 U턴해 내게 돌아왔다. 코스 정보를 좀 더 꼼꼼히 살피지 않은 대가다.


그래도 생테밀리옹 와이너리 투어는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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