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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Oct 23. 2020

서울 야상곡 Op.117, 경복궁

트래비(Travie) 아카데미 7기 출사 이야기

쇼팽이 밤의 분위기를 녹턴(nocturne)으로 담아냈으니,
밤의 경복궁은 서울 녹턴 Op.117이라 이름 지으며 시작하는 야간 출사 이야기.
(경복궁은 사적 제117호이다.)



처음이라 낯선 밤의 경복궁을

처음도 아닌데 낯설던 삼각대로 담아 왔다.

저들이 낯가림을 부려서 아이폰 야간 모드로 찍은 사진이 

더 잘 나온 건지도 모르겠지만...


 야경 출사에 꼬리표처럼 붙는 아이템, 삼각대. 불현듯 예전 유럽 여행 때 들고 간 삼각대가 떠올랐다. 멋도 모르고 야경 사진에 필요하다 해서 들고는 갔으나 제대로 쓰지 못한 삼각대. 핑계를 대자면 7월의 유럽은 해가 너무 늦게 져서 오전 일정부터 들고 다니기엔 짐이었고, 다시 숙소에 와서 들고 나오려니 애매하고... (핑계를 대려니 주절주절 말이 길어진다.)


 사실상 안 써 본 것과 다름없는 문제의 삼각대를 들고 경복궁 야경을 만나러 갔다. 예전에 경복궁 야간개장에 대한 기사에 실린 인파로 가득 찬(실제로 궁내가 사람으로 가득 찬) 사진을 보고 엄두를 못 낸 곳인데, 지금은 코로나 영향도 있고 해서 사전 예매를 통해 제한된 인원만 입장이 가능하다.

  

 광화문에 들어서며 불을 밝힌 근정전을 보자마자 왜 야간개장에 사람이 몰리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이만큼이나 멋진 곳이었다니. 낮에 보던 경복궁과는 사뭇 다른, 사진으로 미리 봤음에도 저녁의 경복궁은 참 낯설었다. 그 모습을 흔들림 없이 담아보고자 삼각대를 꺼냈는데 경복궁의 낯섦만큼 낯선 모양이었다. (집에서 한 번이라도 꺼내서 조작해보고 나왔으면 좀 나앗으려나.)

ⓒ Fernweh


 

 우리가 전문가도 아니니만큼 야경 출사는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었다. 한껏 낮춘 셔터스피드 때문에 촬영 자체가 오래 걸리기도 했지만 삼각대 조작이 서툴러 삼각대 위의 카메라를 원하는 구도로 맞추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던 탓이다. 야간개장 시간의 1/6을 입구에서 써 버릴 정도였으니. (B 씨 曰 근정전 촬영에 시간을 너무 허비해버려서 경회루로 부랴부랴 뛰어간 거 실화냐.)


낯가리는 삼각대를 가지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


 


 다행히 눈높이가 높아 좋은 촬영 스폿을 척척 찾아낸 K 씨와 이제는 ‘슨생님’이란 별명에 손색이 없는 B 씨의 사진 감각 덕분에 낯선 삼각대와 고물 카메라를 가지고 대충은 그럴싸한 결과물을 만들었다. 우리가 고군분투했던 두 개의 스폿은 1) 삼각을 이루는 처마 아래에 근정전이 쏙 들어오는 곳과 2) 근정전을 반바퀴 돌아 들어온 곳에서 처마 위 서유기 일행이 달에 걸리게끔 찍을 수 있는 스폿. 

    

K 씨가 알려 준 (1)번 스폿. 이 구도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양옆 기둥이 안 나오게 하려니 구도를 정확히 맞추지는 못했지만 ㅜ
달과 처마를 묘하게 겹쳐 찍을 수 있는 (2)번 스폿. 망원렌즈가 절실하다...
처마 끝 삼장법사를 달 속에 쏘옥- 넣을 수 있는 곳인데, 내 똥 손으론 무리였다. (이 사진은 심지어 초점도 안 맞음.)


  1) 번 스폿에선 살짝만 움직여도 건물 기둥이 프레임 안에 들어와 버려서 원하는 구도를 100% 구현하기가 쉽지 않았고(꾸역꾸역 기둥만 안 나오게 찍기는 했다만...) 2) 번 스폿에선 망원렌즈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거기에 달은 또 왜 이렇게 빨리 떨어지는지... 처마 끝에 달이 걸리게 찍으려는데 달이 움직여버리면 다시 삼각대 세팅부터 해야 하니 이 역시 쉽지 않았다. 과학시간에나 배웠던 지구의 자전, 공전을 경복궁에서 체감할 줄이야. 이러다 보니 시간이 모자라 경회루 촬영도 후다닥 마쳐야 했고, 느긋하게 경내를 보지 못해 궁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글이 되어 버렸다. (인터넷 검색으로 보는 정보가 훨씬 더 정확하기도 할 테니 이 글에선 과감히 생략!)



(1)번 스폿에서, 근정전을 담아내는 카메라를 찍는 카메라 
(1)번 스폿에서, 근정전을 담아내는 카메라를 찍는 카메라
핸드폰으로 찍는 게 훨씬 편하고 훨씬 잘 나오는 불편한 진실...(카메라 바꾸자...)
달은 생각보다 금방 떨어진다. 처마 끝 용(?)과 키스하는 구도가 되어버림.
아쉬운대로 처마라도 찍어본다.
시간이 없어 부랴부랴 달려가 부랴부랴 찍은 경회루.
경회루를 찍는 카메라를 담는 카메라. (이런 컨셉에 맛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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