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넷
다른 병원에서 찍은 CT 사진을 가지고 갔지만, CT와 MRI를 다시 찍어야 했다. 통증이 심한 탓에 똑바로 누울 수 없었기에 혈관을 통해 진통제를 맞은 후에야 CT와 MRI를 찍을 수 있었다. 의사는 디스크가 심해 수술을 해야 하고, 심할 경우 수술을 했음에도 걷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의사는 무엇보다 다리 힘이 빠진지 2주 정도 되었다는 것을 걱정했다. 진료실에서 입원실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수술을 걱정하는 내게 엄마는 괜찮을 거라 했지만 두려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날 저녁 언니는 짐을 챙겨 왔고, 아빠 역시 퇴근과 동시에 병원으로 왔다.
다음 날 오전 열한 시, 수술이 이루어졌다. 나는 맨 몸에 수술복만 걸친 채 수술실로 향했다. 병원 침대는 조금 딱딱했고 차가웠다. 하얗던 천장을 지나자 드라마에서만 보던 수술실 문이 보였다. 어깨가 움츠러들 만큼 차가운 공기와 함께 문이 열렸다. 수술실은 환했다. 밝은 조명이 보였고 의사는 내게 체중을 물어봤다. 나는 1kg의 가감 없이 몸무게를 말했다. 그토록 숨기고 싶고 알리고 싶지 않았던 몸무게지만 수술 앞에선 솔직해야 할 것 같았다. 마취로 인한 사고는 원치 않는 일 중 하나였다. 수술은 약 한 시간 만에 끝이 났다. 수술실은 여전히 추웠고 내 팔엔 혈압계가 달려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병실이었다. 천장을 보고 눕는 건 반 년 만의 일이었다. 나는 뛸 듯이 기뻤고 또 감사했다.
열흘간의 입원 동안 엄마와 언니는 교대로 나를 돌봤다. 엄마는 아빠의 퇴근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갔고 언니는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내 곁을 지켰다. 그 동안 나는 병원 복도를 걸었고 물리치료를 받았다. 그러는 사이 열흘이 지났고 입원할 때보다 더욱 뜨거운 열기가 나를 맞이했다. 38도를 웃도는 날씨에 복대를 차고 생활하자니 죽을 맛이었다. 외출하지 않고 집에만 있었을 뿐인데도 배와 허리가 땀이 가득 찼다. 그 후로도 나는 두 달 동안 복대를 차고 생활했다. 친구들은 내게 수술 후기를 물었고 나는 조금 머쓱하게 무서웠다고 대답했다. 수술이 잘 끝났음에도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했다. 다행히 허리는 별 탈 없이 무사했다.
덥다 못해 뜨거웠던 여름날은 내게 건강에 대한 소중함을 가르쳤다. 나는 그때가 되어서야 “건강이 최고.”라던 아빠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고, 미련하게 행동했던 지난날을 반성했다. 그 후 나는 조금이라도 아프면 병원으로 향했다. 이제 더는 미련하게 굴고 싶지 않았다. 동시에 나는 가족 중 하나라도 아프면 온 가족이 시간을 내야하고 희생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엄마와 언니는 열대야와 폭염이 지속 되는 날에 매일 같이 병원을 방문 했고, 아빠 역시 퇴근 후 집이 아닌 병원으로 향했다. 만약 내 곁에 아무도 없었더라면 화장실에 갈 때마다 밥을 먹어야 할 때마다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았어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나뿐만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라도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내 몸은 내가 안다는 말이 있지만 때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 하루에도 몇 번 씩 바뀌는 마음을 알 수 없듯 몸도 마찬가지이다. 내 몸 어딘가가 조금이라도 아프다면 가까운 병원에 가길 추천한다. 미련은 더 큰 통증을 부르고 더 큰 돈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