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병원

마흔셋

by 목연





행복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 무엇일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어릴 적부터 아빠는 우리 가족에게 “건강이 최고.”라고 말했다. 혼자 걷는 것보단 엄마 손을 잡고 걷는 게 더 익숙했던 때엔 아빠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건강이라는 건 나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어릴 적 나는 잔병치레가 잦았다. 소변을 참아 방광염을 앓기도 했고 일 년에 한 번은 꼭 크게 아팠다. 특별히 잘못 먹은 것이 없음에도 장염에 걸리기 일쑤였고 참치 캔 뚜껑을 손으로 따다 엄지를 깊게 베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병원에 갔다. 병원에 도착하면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났다. 엄마를 따라 운동화를 벗고 얇은 밑창의 실내화로 갈아 신을 때면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엄마와 함께 순서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다른 아이의 울음소리에 저도 함께 울었고, 병원은 금세 울음바다가 되었다. 아이들이 엄마 품에 안겨 서럽게 울 때, 나는 엄마 옆에 앉아 가만히 순서를 기다렸다. 어릴 적 나는 병원에 가도, 주사를 맞아도 울지 않는 아이였다. 엄마 말에 의하면 나와 언니는 아주 어릴 때부터 주사를 맞아도 울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주사를 맞을 때에도 나와 언니는 조금 찡그리기만 할 뿐, 울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나와 언니를 보며 의사와 간호사는 “세상 모든 아이들이 두 아이 같았으면.” 하고 말하기도 했다고, 엄마는 내게 말했다. 엄마는 우리에게 그 말을 자주 했고 그 말을 듣고 자란 탓인지 병원에 가는 게 두렵거나 싫지 않았다. 주사를 맞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예방접종을 하거나 피 검사를 할 때, 긴장되기는 했지만 두렵진 않았다. 나는 속으로 엄마의 말을 되뇌며 스스로 씩씩한 아이라 믿었다. 그렇기에 눈물도 나지 않았고 조금의 찡그림 없이 주사를 맞고 나왔다. 병원 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던 내가 병원을 멀리한 건 어느 날부터였다.


그 무렵 티브이에선 과잉진료 및 약의 오남용을 비판하는 프로그램이 자주 방영되었다. 엄마와 아빠 역시 아주 많이 아프지 않은 이상 약국에서 약을 사먹는 것으로 병원 가는 걸 대신했다. 하지만 내게 영향을 준 건 티브이 프로그램도, 엄마와 아빠의 모습도 아니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재야하는 키와 몸무게, 그게 싫었다. 그즈음 사춘기도 왔기에 모든 게 귀찮게 느껴졌다. 나는 열이 날 만큼 아프지 않은 이상 병원에 가지 않았고, 약국에서 약을 사먹지도 않았다. 특히 감기에 걸렸을 땐 ‘자연치유’를 주장하며(이때의 나를 두고 언니는 ‘안아키’라고 이따금씩 놀린다.) 어떤 약도 먹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허세가 잔뜩 묻은 쓸데없는 똥고집인데, 그때의 나는 꽤나 진지하게 똥고집을 이어갔다. 이러한 나의 똥고집은 꽤 오래 이어졌고 열여덟 여름이 되어서야 무너졌다.


그해 여름은 땅의 열기가 온종일 이어질 만큼 덥고 뜨거웠다. 나의 허리는 열일곱 겨울 방학 때부터 망가지기 시작했다. 첫 통증은 의자에 앉을 때였다. 평소처럼 의자에 앉는데 엉치뼈에 바늘을 꽂은 것처럼 무언가 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의자에 앉았고 통증은 계속 됐다. 그런 생활을 한 달쯤 하다 동네 정형외과를 찾았다. 아무래도 통증이 이어지는 게 찝찝했다. 의사는 엑스레이 결과를 보더니 이상이 없다고 했다. 의사의 말처럼 허리는 깨끗했다. 그 날 의사는 삼일 치 진통제를 처방해주었지만 효과는 없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시간이 흘렀다. 그러는 사이 엉치뼈의 통증은 더욱 심해졌고 다리가 저리기 시작했다. 통증 역시 다리를 지나 발목으로 이어졌다. 진통제 없이 잠들 수 없는 밤이 이어지자 자다가도 눈물이 났다. 똑바로 누워 잔 게 언제인지 생각나지 않았다. 여름방학과 동시에 엄마와 나는 다른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엑스레이 결과를 보더니 허리디스크가 꽤 진행된 것 같다며, 큰 병원에 가볼 것을 권유했다. 의사는 엄마에게 CT와 MRI를 전문으로 찍는 곳을 알려주었고 그곳의 의사 역시 수술이 불가피할 것 같다는 말을 전했다. 두 곳의 병원을 다녀온 후 집으로 돌아왔을 때, 눈물이 났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 주사를 맞을 때에도 나지 않던 눈물이 마치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흘렀다. 미련했던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그런 와중에 엉덩이와 다리는 아프고, 다리에 힘도 잘 들어가지 않아 더욱 서러웠다. 다음 날 나와 엄마는 척추 전문 병원으로 향했고 당일 입원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그 해 여름은 참 더웠다’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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