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하나
입시를 하며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내가 쓰는 소설과 등단한 작가가 쓴 소설이 아주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과외 당시 선생님이 건넨 소설을 읽으며 자주 ‘재미없다’고 생각했었다. 이제껏 내가 읽어왔던 소설에 단편선은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등단작은 내게 어렵게 느껴졌고 다가갈 수 없는 무엇으로 느껴졌다. 그런 와중에 나는 지방의 한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교 1학년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때 나는 타인의 글을 흉내 내기 바빴다. 마치 태권도 학원에 처음 간 아이가 단장님의 자세를 2초 늦게 따라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늘 긴장했고 보이지 않는 틀에 맞춰 글을 썼다. 이 작가의 소설은 이렇던데, 저 작가는 이런 기법을 사용하던데 하며. 대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새 교수님이 부임하셨다. 소설가로도 활동하는 선생님은 첫 수업에서 우리에게 콤플렉스를 물었다. 약간의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고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콤플렉스를 물었다. 누군가는 얼굴의 주근깨가 콤플렉스라 했고 누군가는 과거의 어떤 일이 콤플렉스라고 했다. 선생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셨고 내 옆에 앉은 친구에게 콤플렉스를 물었다. 친구는 선생님의 말에 머뭇거리며 말했다. “말할 수 없어요.” 친구의 말에 선생님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지, 그거야. 콤플렉스는 말할 수 없는 거야.”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내게 친구의 답과 선생님의 말은 생각을 환기하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선생님은 콤플렉스에 대해 설명하며 자기연민을 언급했다. 자기연민은 스스로를 연민하는 마음이고, 소설을 쓸 때 이와 같은 실수를 범하는 일이 잦다고 했다. 약 75분의 수업에서 자기연민에 대한 설명이 내 마음에 꽂혔다. 대학에 들어와 소설을 쓰며, 타인의 작품을 읽고 흉내 내며, 나는 아빠에 대한 내 마음을 해결하고자 했었다. 그러다보니 소설엔 늘 폭력적인 가정환경이 등장했고 주인공은 우울했다. 선생님과의 첫 합평 날, 선생님은 내 소설을 읽고 나를 걱정했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내게 “너 괜찮니?” 물으셨고 괜찮다는 내 말에 “다행이다. 걱정했잖아.” 하셨다. 짧은 대화 속에서 나는 내 치부를 들킨 것만 같았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끌어다 장황하게 쓴 게 들킨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내가 나를 불쌍하게 여겼던 그 마음을 모두가 알아챈 것만 같아 부끄러웠다. 그때부터 나는 소설을 쓸 때 나를 최대한 배제하려 했다. 누군가의 소설을 읽을 때도 인물과 작가를 동일시하지 않으려 했고, 슬픔 역시 동일시하지 않으려 했다. 소설에서 아빠를 빼고 자기연민 가득한 나를 빼니 이야기는 저절로 늘어났다. 더 이상 불우한 가정환경과 죽음이라는 소재와 배경에 갇히지 않았다. 소설을 쓸 때마다 느꼈던 어떤 답답함 역시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커서만이 깜빡이는 화면이 주는 막막함은 있을지라도 말이다.
선생님의 말씀 덕에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었다. 물론 나의 소설이 더 좋아지거나 뛰어나게 발전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아주 오랫동안 나를 짓누른 무거운 마음을 덜어낼 수 있었다. 요즘은 소설을 쓰지 않는다. 잘 쓰는 놈이 성공하는 게 아니라 오래 버티는 놈이 성공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도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다. 내게 창작에 대한 재능이 없다는 걸, 뛰어난 상상력 없이 없다는 걸, 대학을 다니며 알게 되었다. 하지만 슬프지 않았다. 누군가 시를 잘 쓰지만 소설 쓰기엔 서툰 것처럼 나도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나에 대한 동정을 여태껏 소설로 써왔으니, 그 마음이 비워졌을 때 소설에 대한 마음 역시 조금 가벼워지는 게 아닐까 했다.
내가 쓰고 싶은 글과 잘 쓰는 글은 같을 수 없다. 하지만 그 두 개가 점점 가까워질 수는 있다. 사람들이 글을 쓰는 이유도 그렇지 않을까. 그 두 개가 점점 가까워질 때의 기쁨과 희열, 재미. 또 반복되는 일상 속 나를 찾고자 하는 마음. 내 안의 슬픔을 들여다보고 활자로써 적어내리는 행위. 나 역시 그것이 좋았다. 그렇기에 글을 썼고 지금도 글을 쓴다.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그것이 나의 글쓰기 첫 번째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