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책과 가까워지니 글쓰기도 가까워졌다. 나는 일기 아닌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시작은 모방이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따라 쓰고 바꿔 썼다. 그러다보니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졌다. 때로는 아주 우울한 이야기가 떠올랐고 때로는 몽상에 가까운 공상이 떠올랐다. 그땐 ‘글을 잘 써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기에 글 쓰는 행위 자체에 몰입했었다. 그렇기에 다소 유치한 이야기도 마음껏 썼고 자기연민이 가득 묻은, 사춘기 때의 우울한 정서도 그대로 썼다. 그때 나는 내 생각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한 번 든 생각은 잠들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열세 살 무렵, 아빠의 행동이 폭력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 여러 감정이 밀려왔다. 아빠에 대한 의문과 엄마에 대한 원망,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면 글을 썼다. 하지만 생각이 깊은 날이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나는 중학생이 되어 예전처럼 열심히 글을 쓰지 않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다시 글을 썼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에선 1학년들에게 공통 과제를 줬다. 1년에 걸친 과제는 바로 ‘한 권의 책 만들기’였다. 입학과 동시에 선생님으로부터 과제를 받은 아이들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대학교의 과에 맞춰 기획하고 목차를 구성했다. 그때 나는 연영과에 가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늘 그랬던 것처럼 소설을 썼다. 나와 같은 반이었던 한 아이 역시 소설을 쓰고 싶어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고 글쓰기 시간에만 이야기했다. 11월이 되었을 때, 선생님은 제출 기간이 다 되어가니 원고를 마감하라고 하셨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기한에 맞춰 책을 제출했지만 그러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건 고백이자 사실인데, 나의 경우엔 공부보다 책 쓰기 활동에 더 몰두했었기에 그 무렵 이미 책을 인쇄했었다. ISBN도, 출판사도 없는 학교 앞 인쇄소에서 인쇄한 떡 제본의 책이었지만, 그건 나의 책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것을 미리 보여주지 않았고(자랑이라기 보단 부끄러움이 컸었다) 제출 기간에 맞춰 선생님께 나의 책을 제출했다. A5 크기의 작은 책. 약 200쪽 분량의 소설. 학기 말이 되었을 때, 학교에선 잘 쓴 책을 골라 시상을 했고 나는 거기에서 은상을 받았다. 그때 나는 기뻤고, 착각에 빠지게 됐다. 내가 글을 ‘잘’ 쓴다는 착각에 말이다. 하지만 그 착각은 치열한 입시 기간을 거치며, 또 대학에 입학함과 동시에 무너져 내렸다.
다른 아이들이 논술이나 수능 공부를 할 때, 나는 소설을 썼다. 잠시 고백하자면, 그 당시 나는 가고 싶은 과가 있었지만 없었다. 앞서 말했듯 그때의 나는 연영과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준비된 것이 하나도 없었기에 마음에 품고만 있었다.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S라는 친구가 내게 다가왔다. 공부를 꽤 잘했던 S는 내게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고 여름 방학 동안 서울에 있는 문창과 입시 학원에 다닐 것이라 말했다.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S와 나는 소설과 대학 입시를 계기로 가까워졌고 S와 나의 가정환경이 비슷하다는 것도 그 무렵 알게 되었다. 우리는 만나면 불행한 가정사와 소설에 대한 고민을 나눴다. 공부를 잘했던 S가 갑자기 문창과에 진학하겠다고 하자 담임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은 S를 다그쳤다. 충분히 서울에 갈 수 있는 성적인데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느냐며 말이다. 하지만 S는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방학 동안 시행되는 보충 수업 대신 서울에 가 소설을 썼다. 소설을 향한 S의 열정은 나를 불안하게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 성적으로도 갈 수 있는 곳이 없진 않았는데, 그때는 그런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게다가 모두들 나를 보고 문창과에 가야지? 하고 물었기에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인터넷을 뒤져 과외를 알아봤고, 한 달 20만 원의 수업을 찾아냈다. 서울예대를 졸업한 선생님은 나와 열 살도 차이가 나지 않았다. 나는 매주 토요일마다 컴퓨터를 켰고 우리는 채팅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선생님은 각종 자료와 합격작을 내게 공유해주었고, 나는 평일 동안 쓴 글을 선생님께 보여드렸다. 수시 접수 기간이 되었을 때, 나는 여섯 개의 원서를 꽉꽉 채워 냈다. 하지만 그 중 다섯 곳은 떨어졌고 보험으로 낸 한 곳에 붙었다. 불합격 소식을 전할 때, 선생님은 정시도 있으니 너무 떨지 말라고 하셨다. 내게 보험으로 낸 곳에 가지 말라고 하셨다. 그때 나는 불안했고 자신이 없었다. 더 이상 입시에 맞춰 글을 쓰고 싶지도 않았고, 지방이라도 좋으니 그곳에 가서 무엇이든 배우고 싶었다. 선생님과의 통화에서 나는 그곳에 가겠다고 말했고, 선생님은 알겠다고 말했다.
입시가 모두 끝난 겨울에 나는 지금 다니는 곳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다시 한 번 좌절을 경험했다. ‘나름 글을 잘’ 쓴다는 내 생각은 보란 듯 사라졌다.
(자기연민과 글쓰기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