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친구로부터

서른아홉

by 목연





하루를 기록하기 위해 다이어리를 사고 심이 얇은 펜을 샀다. 약속이나 일정이 있는 날엔 스티커를 붙였고 누군가의 생일엔 대문짝만하게 ‘생일’이라 적었다. 글 혹은 책과 관련된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후, 독서 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마음에 드는 노트와 펜을 찾았고, 책 내용을 필사한 후 내 생각을 적었다. 무언가를 기록하고 적는 일은 즐거웠다. 나의 생각이 생각으로만 남지 않았기에 좋았고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그것을 펼쳐봤을 때, 내가 어떤 책을 읽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어 좋았다. 그냥 지나갈 수도 있는 것을 활자로 남길 수 있다는 것, 그게 나를 설레게 했다.


인스타그램에 ‘#글’ ‘#글스타그램’을 검색하면 많은 이들의 글이 떴다. 사람들은 일기의 형식으로 글을 쓰기도 했고 짧은 소설을 연재하기도 했다. 때론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을 내비치기도 했고 그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글을 썼고 사진과 함께 그것들을 올렸다. 피드를 올리며 내리길 반복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왜, 글을 쓸까.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를 만났다. 늘 반에서 1등을 하던 친구는 쉬는 시간이면 공부를 하는 대신 책을 꺼내어 읽었다. 친구의 가방과 서랍, 사물함엔 여러 권이 책이 있었고 장르 역시 다양했다. 나는 친구가 읽는 책이 궁금했고, 소설을 자주 읽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엄마는 나와 언니에게 책을 많이 읽어주었다. 엄마는 주로 위인전과 동화책을 읽어줬고 나와 언니는 그 시간을 좋아했다. 엄마는 책을 정말 잘 읽었다. 마치 그 인물이 된 것처럼 목소리를 내었고, 인물이 여럿이거나 사람이 아닐 때에도 엄마는 그에 맞는 목소리를 내어 우리에게 이야기를 전달해주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엄마는 동화책을 읽어주지 않았고, 나와 언니는 자연스레 책을 멀리하게 되었다. 친구가 읽는 책을 들여다보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에 도서관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가 다니던 학교는 도서실이 아닌 도서관이 있는 학교였기에 많은 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많은 책이 눈앞에 펼쳐지자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친구가 읽는 책을 따라 읽고 싶었지만 친구가 기분 나쁘게 생각할까봐 같은 책을 고를 수도 없었다. 한참 동안 책장 앞을 서성이는데 눈앞에 친구가 예전에 읽었던 책이 보였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그 책을 골랐고(지금은 그 책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부터 나는 책을, 특히 소설을 좋아하게 되었다. 방과 후면 학원에 가는 대신 도서관으로 향했고 많을 때는 일주일에 서너 권의 책을 읽었다. 그 당시 아이들이 많이 읽던 ‘리버보이’와 ‘유진과 유진’ 등. 정말이지 나는 소설만을 찾아 읽었다. 도서관을 매일 같이 드나들던 어느 날, 나와 친구는 친구의 집 근처에 있는 마트에 갔다. 그날 우리가 왜 그곳에 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마트 안에 있는 서점에서 책을 샀다는 건 기억난다. 엄마와도 자주 가는 곳이었기에 내게 그곳은 익숙했다. 친구는 곧장 소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청소년을 위한 책이 있는 곳으로 향하려던 나는 친구를 따라 소설이 진열된 책장 앞에 섰다. 거기엔 낯선 작가의 이름과 책이 놓여있었다. 친구는 그 중에서 ‘1Q84’를 골랐고 나는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와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을 골랐다. 엄마의 카드가 아닌 용돈으로 책을 산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처음이 다 그렇듯 두 권의 책은 한동안 내가 가장 아끼는 책이 되었다. 그 후로 나는 도서관만큼이나 서점을 가까이 했다.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며, 그 작가의 신작을 기다리는 일. 그건 꽤 설레는 일이었다.


친구 덕분에 책과 서점에 가까워졌지만, 친구와는 멀어졌다. 특별한 일이나 싸움이 있었던 건 아니다. 우리는 그저 졸업과 동시에 자연스레 멀어졌다. 책을 읽을 때면, 그 친구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 나올 때면 걔가 떠올랐다. 중학교에 가서도 쉬는 시간에 책을 읽을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다. 그럴 때마다 걔에게 연락하고 싶었지만 먼저 안부를 묻진 않았다. 혹여 친구가 나를 잊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안은 채 글을 썼고 계속해서 책을 읽었다.


('붙잡고 있던 순간들'로 내용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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