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덟
여름방학이 되면 학교에선 꼭 숙제를 내주었다. 초등학생 땐 ‘EBS 여름 방학 생활’을, 중학생이 되었을 땐 현대 소설 n권 읽기 혹은 수학 문제 풀기와 같은 과목 별 숙제를 받았다. 방학은 앞둔 아이들은 소란스러웠고 선생님은 그런 우리에게 종이를 나눠주셨다. 선생님은 종이에 생활계획표를 만들라고 하셨다. 하얀 종이를 받으면 예나 지금이나 머리가 하얘졌다. 아이들은 가방과 서랍에서 컴퍼스를 꺼내 커다란 원을 그렸고, 나 역시 친구들을 따라 원을 그렸다.
원을 그렸으면 숫자를 표시해야 했다. 나는 자를 대고 동서남북 위치에 12, 3, 6, 9를 적었다. 시간을 표시했으면 원을 여러 칸으로 나눠야 했다. 고민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학교를 가지 않는 시간에 내가 무얼 해야 할지, 또 무얼 할지는 나도 모르는 일이었다. 고민하는 나와 달리 옆에 앉은 친구는 빠른 속도로 생활계획표를 채워 넣기 시작했다. 나는 내 것을 채우는 척하며 친구의 것을 힐끔거렸다. 학교를 마치고 집이 아닌 학원으로 향했던 친구는 취침과 아침 먹기 이후, 거의 모든 칸을 학원 가는 것에 사용했다. 나 역시 학교를 마치고 학원에 갔었지만 그 친구만큼은 아니었기에, 친구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20분쯤이 지나자 아이들은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선생님께 생활계획표를 검사 받았다. 무언가로 꽉 찬 아이들의 계획표와 달리 나의 계획표는 여전히 휑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취침에 많은 칸을 주고 학원 가기와 공부하기, 운동하기와 같은 내가 하지 않을 것 같은 일과로 계획표를 채웠다. 선생님은 내 것을 보고 방학 잘 보내고 건강하게 보자는 말을 했다. 며칠 지나 방학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내 생활계획표를 잊었고 거기에 적힌 시간과는 다른 시간에 밥을 먹고 숙제를 했다. 내게 생활 계획표는 별로 의미가 없었다.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까지 그만둔 후, 시간이 많아졌다. 아르바이트를 할 땐 주말이 소중했는데, 일을 그만두니 주말과 평일의 경계가 흐려졌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일어나던 시각에 일어나 아침 산책을 하고 스트레칭을 했지만, 그것도 며칠 지나니 시큰둥해졌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일이 없다는 것, 쉴 때에 할 일이 없다는 것. 그것은 곧 스트레스가 되었다. 여느 때처럼 책상에 앉아 오늘은 뭐 하지, 고민하다 문득 초등학생 때 그렸던 생활계획표가 떠올랐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흘러가기만 한 것 같은 내 하루를, 눈에 보이는 것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검색창에 ‘생활계획표’를 치니 많은 예시가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따라 표를 그릴까 하다가 앱 스토어에 생활계획표 앱을 검색했다. 유료 앱인 그것은 꽤 깔끔했고 정돈되어 있었다.
초등학생 때와 달리 칸을 채우는 데에 많은 시간이 들지 않았다. 취침과 기상 시간, 아침 산책을 채우고 오후엔 독서 및 글 쓰는 시간으로 채웠다. 목록 별로 색깔을 달리 하자 하루가 잘 분리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오후 2시부터 5시까진 무엇을 채워야 할까 고민했는데, 비워두자니 허전하고 채우자니 억지스러운 기분이 들어 ‘기타 할 일’로 칸을 채웠다. 완성된 생활계획표를 보자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해야 할 일로 칸을 채우다보니 내가 마냥 놀고 있지만은 않았구나, 하는 생각과 안도가 들었다. 물론 매일을 그것과 같이 보내진 않지만 적어도 내 하루 중 이 항목들은 늘 유지되는 것이기에 하루를 보내는 데에 너무 많은 죄책감을 쏟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며 쉼과 휴식이 들어설 자리가 없는 때에, 노는 것에도 계획이 필요함을 다시 한 번 느낀다. 남들처럼 정해진 직업이 있고 직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만의 계획이 있고 내 몸이 편안해하는 시간을 찾는 것. 거기에 맞춰 계획을 세우고 그 시간에 그 일을 하는 것. 획일화된 세상에서 나란 사람은 어쩌면 ‘취업 준비 안 하는 게으른 휴학생’으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나만의 속도로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기에 이제는 조금 죄책감을 덜려고 한다. 모두가 잘 놀고 잘 쉬고 잘 자고 잘 먹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