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일곱
길을 걷는데, 새빨간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온통 초록인 풀 사이에서 홀로 발갛게 핀 꽃. 어떤 꽃인가 싶어 가까이 다가갔지만 꽃의 이름을 알려주는 팻말은 없었다. 꽃의 주변을 돌다 휴대폰을 켰다. 카메라를 켜 꽃을 찍으려는데, 눈에 보이는 것만큼 예쁘게 찍히지 않았다. 초점을 잡고 밝기를 낮췄다 높였다 해도 그대로였다. 눈이 부실 만큼 밝은 햇살이 휴대폰을 비췄다. 꽃을 비추고 내 눈을 비췄다. 눈에 보이는 빨간색을 담고 싶은데,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아름다운 것이 보일 때면 휴대폰을 들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담기 위해 빠르게 카메라를 켰고 대상에 초점을 맞췄다. 눈에 보이는 것과 같은 색감을 찾기 위해 밝기를 낮출 때도 있었고, 높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상은 눈에 보이는 것과 달랐다. 나는 각도를 틀고 밝기를 이리저리 조절하다, 적당히 비슷한 어느 지점에서 사진을 찍었다. 열 장을 찍으면 한 장 정도 마음에 들었고 스무 장을 찍으면 두 장 정도 마음에 들었다.
글을 쓰는 일도 그랬다. 문장과 장면은 뜻하지 않은 순간에 찾아왔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잠들기 전과 같은.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과 장면, 문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메모장을 켜 그것들을 적으면 놓치지 않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어 장면을 다시 떠올리고 문장을 다시 쓸 때면, 남의 것 마냥 어색하곤 했다. 어색한 문장을 앞에 두고 할 수 있는 건, 한참을 고민하는 일이었다. 나는 내가 쓴 문장과 낯가리다 그것을 덮어버리기 일쑤였고 그것이 과제일 땐 억지로 결말을 내어 제출했다. 내가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글은 내 눈에 담긴 대상과 카메라 렌즈에 담긴 대상만큼이나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한 뿌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달랐고 내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쓴다. 누군가는 소설을, 누군가는 시를, 누군가는 사회 현상을 비판하는 글을 쓰고 누군가는 에세이를 쓴다. 나의 글은 그 중 어디에 속할까. 장황한 일기라는 목록을 새로 만들어야겠지. 타인의 글을 읽으며 그는 그의 의도를 모두 반영하여 글을 썼을까, 생각해본다.
온통 초록인 사이에 핀 빨간 꽃. 저건 나의 최선이었을까, 빠른 포기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