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섯
사람의 손은 꽤 많은 정보를 알려준다. 손톱 길이를 통해 직업을 유추할 수도 있고 그의 성격을 예측할 수도 있다. 손가락에 낀 반지는 그 사람의 액세서리 취향을 알려주고 때론 연인 혹은 배우자의 유무를 알려주기도 한다. 연인은 있으나 반지는 없는 나의 손엔 살이 빠지며 드러난 혈관이 보이고 짧게 깎은 손톱이 있다.
네일아트 계정은 봄이면 더 자주 보였다. 태어나서 네일숍에 한 번도 가지 않은 나는 늘 인스타그램을 통해 타인의 손톱을 보았다. 사람들의 손톱은 다양했다. 누군가의 손톱은 길었고 누군가의 손톱을 짧았다. 네모난 모양의 손톱도 있었고 끝이 둥근 손톱도 있었다. 손톱은 짧으나 손톱 채가 길어 짧아 보이지 않는 손톱과 손톱이 길어도 손톱 채가 짧아 그리 길어 보이지 않는 손톱도 있었다. 우리 집 여자 셋 중 손톱에 관심이 가장 많은 사람은 엄마다. 손톱이 두꺼워 잘 부러지지 않는 나와 달리 엄마와 언니는 손톱이 잘 부러졌다. 엄마는 약한 손톱이 신경 쓰여 영양제를 듬뿍 발랐지만, 효과는 없었다. 엄마는 손톱이 부러지기 전 손톱을 짧게 깎았고, 그 위에 매니큐어를 두껍게 발랐다. 언니의 손톱은 엄마의 손톱보다 더 얇았다. 예전에 아기의 손톱을 가까이서 본 적 있는데, 언니의 손톱은 아기의 손톱처럼 얇고 날카로웠다. 손톱이 잘 부러지는 탓에 손톱을 짧게 깎는 엄마와 달리 언니는 손톱을 적당히 길렀다. 그러다 손톱이 부러지면 손톱깎이로 그 부분을 잘라냈다. 언니는 부러진 손톱을 정리할 때마다 두꺼운 내 손톱을 부러워했다.
엄마의 긴 손톱 채와 아빠의 두꺼운 손톱을 반반씩 닮은 나는, 짧은 손톱을 선호했다. 미에 대한 강박이 심했던 예전엔 손톱을 길게 길러 매니큐어를 발랐었다. 나는 손톱을 깎는 대신 부드러운 버퍼를 이용해 길이를 조절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매니큐어를 바르고 지우던 어느 날, 손톱이 노래진 걸 발견했다. 선홍빛과 흰색 위로 드리운 노란빛은 호기심과 불안을 자아냈다. 엄마는 내 손톱을 보며 당분간 매니큐어 바르는 걸 그만두라고 했고, 나는 오랜만에 손톱깎이로 손톱을 하나하나 깎았다. 그 후 나는 매니큐어 바르는 걸 멀리 했고, 글 쓰는 데 재미를 붙이며 손톱을 짧게 유지했다. 손톱이 길 때엔 예쁜 것만큼이나 불편한 게 많았다. 두꺼우면서도 날카로웠던 내 손톱은 두피와 얼굴을 자주 긁었고, 때론 옷에 걸려 불쾌함을 자아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손톱을 짧게 깎으니 그럴 일이 없어졌다. 세수를 할 때에도 손톱이 얼굴을 긁지 않았고 머리를 감을 때도 두피를 긁지 않았다. 짧은 손톱은 타자를 칠 때도 편리했다. 손톱이 아닌 손끝으로 타자를 치니 오타가 줄었고 손끝이 덜 아팠다. 이런 삶에 익숙해지자, 손톱이 조금만 길어도 불편했다.
손톱과 마찬가지로 머리카락 역시 그러했다. 이상하게도 여자 애들은 어릴 때부터 긴 머리를 선호했고 나 역시 그랬다. 어릴 때 엄마를 따라 간 미용실에서 미용사가 내 머리를 짧게 자른 날이면, 나는 그 자리에서 울며 입을 삐죽거렸다. 엄마는 그런 내게 짧은 머리도 예쁜데 뭐가 문제냐며 물었지만, 나는 그냥 내 머리가 잘려나가는 게 슬펐고 머리가 아주 조금이라도 짧아지는 게 슬펐다. 중학교에 입학해선 내 머리에 대한 자유조차 빼앗겼는데, 그때만 해도 두발에 대한 자유가 없을 때라 우리는 귀 밑 10cm를 유지해야 했다. 중학교에 입학하던 날, 여자애들은 모두 귀 밑 10cm 단발을 하고 서로를 향해 인사했다. 이러한 생활이 계속 되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두발의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나의 머리는 등 중반까지 자랐다. 그해 여름에 나는 허리디스크 수술을 했는데, 의사는 내게 입원 기간 동안은 샤워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여름, 열흘간의 샤워 금지는 내게 극한의 찝찝함을 선사했다. 옆에서 나를 지켜보던 언니는 근처 슈퍼로 가 샴푸를 사왔고 머리만을 감겨주었다. 열흘이 지나 퇴원하던 날, 나는 곧장 미용실로 가 머리를 잘랐다. 자의에 의한 생애 첫 단발이었다. 무거웠던 머리를 잘라내자 개운한 마음이 들었다. 머리를 자른 내게 언니는 단발이 훨씬 더 예쁘다고 했고, 처음으로 긴 머리에 대한 회의를 느꼈다. 그때부터 나는 당연하다 여겼던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단발보다 긴 머리를 예쁘게 여겼던 나와 머리카락은 꼭 길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 맨 손톱보다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이 더 예쁘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때를.
오늘 역시 손톱을 깎았다. 단발로 잘랐던 머리는 어느 새 쇄골까지 길었고, 이 머리를 어떻게 자를까, 고민한다. 긴 머리를 좋아하고 매니큐어 바른 손톱을 더 좋아하는 게 사치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겐 그것들보단 맨 손톱과 짧은 머리가 잘 맞다. 하지만 가끔 네일숍에 가 ‘이 달의 네일’을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