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랑하는 일(1)

마흔다섯

by 목연




어떤 사랑은 깊다. 어떤 사랑은 아프고, 어떤 사랑은 슬프다. 어떤 사랑은 기쁘고 즐겁다. 어떤 사랑은 숨이 막힌다. 어떤 사랑은 자다가도 깰 만큼 강렬하고 어떤 사랑은 평생에 걸쳐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44.PNG '사랑'의 사전적 정의


‘사랑’의 사전적 정의는 위와 같다.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러한 상태. 사랑은 선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나 혹은 상대로부터 시작된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떤 것을, 왜, 사랑하는 걸까. 그것은 왜 내게 다가와 몹시 귀한 존재가 되는 걸까. 사랑은 어떨 때 피어나는 마음이며 그건 왜 괴로움이 될까. 사랑이라는 게 실은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닐까? 종이는 종이 아닌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틱낫한의 말처럼 사랑 역시 사랑 아닌 것으로 이루어져 우리를 괴롭힌다.


1. 순수했던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우리 집엔 인형이 많았다. 가방에 걸고 다닐 수 있을 만큼 작은 것부터 내 상체만한 것까지, 집에 있는 인형들은 크기도 생김새도 저마다 달랐다. 언니와 나는 텔레토비와 콩순이를 좋아했다. 한 달에 한 번 대형 마트에 가 장을 볼 때마다 엄마는 나와 언니에게 콩순이를 사주었고 언니와 나는 콩순이를 아기 대하듯 다뤘다. 콩순이의 머리카락은 금빛이었으나 그 결은 참으로 부드럽지 않았다. 언니와 나는 콩순이의 머리를 빗고 묶다가 헝클어뜨리기 일쑤였다. 콩순이의 머리를 헝클어뜨린 건 우리인데, 우는 것 역시 우리였다. 나와 언니는 헝클어진 머리를 이리저리 풀다가 이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엄마는 살며시 다가와 콩순이 머리를 감아주자고 했다. 나와 언니는 그새 신이 나 바가지에 물을 퍼 콩순이의 머리를 적시고 샴푸를 듬뿍 발라주었다. 샴푸를 헹군 후 린스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엄마 덕에 콩순이의 머리는 다시 부드러워졌지만 사람의 머리와는 달라서, 엉킨 곳이 완전히 풀어지지는 않았다. 엄마는 주방에서 가위를 가져와 엉킨 부분만 조금 잘라내자고 했고, 나와 언니는 울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우리는 콩순이에게 진심이었다. 온 마음으로 콩순이를 사랑했고 아꼈다. 그랬기에 콩순이가 예쁜 머리를 했으면 싶었고 얼굴에 뭐라도 묻으면 닦아주고 싶었다. 엄마가 수건에 물을 적셔 우리 얼굴을 닦아주듯 콩순이의 얼굴도 닦아주고 싶었다. 밥을 먹고 난 후엔 콩순이에게 밥을 주고 싶었고, 그 후엔 토닥이며 재워주고 싶었다. 콩순이가 악몽을 꾸지 않도록, 잠에서 깼을 때 울지 않도록 아주 오래 토닥여주었다. 그때 나에게 콩순이는 사랑 그 자체였다.


2. 추억이 된

일곱 살 무렵, 한 남자애를 좋아했었다. 그때 나는 언니와 함께 학원에 다녔는데, 나와 함께 수업을 듣던 동갑 남자애였다. 또래에 비해 키도 크고 공부도 잘했던 걔는 나와 달리 낯가림이 없었다. 지금이었다면 말이라도 걸어보았을 텐데, 지금보다 수줍음이 심할 때라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좋아하기만 할 뿐 말을 걸지 않았다. 이따금씩 앨범을 뒤지면 그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앞니가 빠진 채 웃고 있는 나와 그 옆에서 수줍게 웃고 있는 걔.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걔도 실은 수줍음이 많은 친구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한 아이를 좋아했다. 그 애는 나처럼 책 읽는 걸 좋아했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어느 날, 걔는 내가 읽고 있는 책을 보며 빌려달라고 했고 나는 선뜻 책을 빌려주었다. 며칠이 지났을 때, 내가 빌려준 책은 어느새 반 아이들 모두의 책이 되어 있었다. 그 애는 내게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고 나 역시 그 애에게 따져 묻지 않았다. 소심했던 탓도 있지만 그 애를 보면 울어버릴 것 같았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애에게 상처를 받았다. 그건 꽤 가슴 아픈 일이었고 잊을만 하면 생각나는 기억이었다. 그 애 외에도 나는 많은 ‘걔’들을 좋아했다. 하지만 ‘걔’들과 내 마음이 통한 건 0에 가까웠고 나의 사랑은 대개 짝사랑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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