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랑하는 일(2)

마흔여섯

by 목연





3. 스물, 스물하나

어른들은 말했다. 대학에 가면 살이 빠지고 남자친구가 생긴다고. 스무 살, 나의 몸무게는 64kg이었고 남자친구는 없었다. 남자친구는 없어도 좋아하는 사람은 있었다. 물론 그 애는 내가 아닌 다른 여자애를 좋아했다. 약 일 년의 짝사랑은 내 마음을 접는 쪽으로 끝이 났고, 스물하나가 되었을 때 연애를 시작했다. 스물하나라는 나이는 어른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으면서 모든 걸 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했다. 중학생 때 이후 연애는 처음이었기에, 많은 것이 서툴렀다. 작은 것에도 쉽게 감정이 상했고 기뻐했다. 그와 나 사이에 시간이 쌓이고 갈등을 겪으며, 그와 나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몸으로 느꼈다. 나고 자란 환경이 다른 우리는 심지어 다른 개체이기에, 좋아한다는 마음만으로 모든 걸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나는 나대로 그를 위해 참았고 그 역시 그랬다. 시간에 비례하여 한 인간을 알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불가능했다. 나와 그는 여전히 서로를 알아가는 중이고 이미 아는 것에도 한 번 더 속상해한다. 대체로 좋은 날들에 속상한 일이 찾아올 때면, 사랑도 곧 수련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4. 못된 마음

까칠한 때수건 같은 나와 달리 언니는 작은 것에도 잘 울었다. 사춘기가 극에 달했던 중학생 시절, 나와 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싸웠다. 별 것 아닌 일은 늘 갈등을 일으켰고 우리는 서로를 향해 악을 썼다. 치열한 다툼은 대개 언니의 눈물로 끝이 났다. 언니가 방에서 울 때, 나는 홀로 모진 말을 뱉었다. 나의 말은 저주에 가까울 만큼 모질고 독했다. 각자의 시간을 보낸 후 언니는 먼저 손을 내밀었고 나는 마지못해 그 손을 잡았다. 언니와는 고등학생이 되며 싸우지 않게 되었다. 나는 내게서 아빠의 모습을 봤고 그걸 떨쳐내고 싶었다. 시작은 어려웠으나 여러 번 노력하니 먼저 다가가는 것도, 모진 말을 하지 않는 것도 익숙해졌다. 언성 대신 고민을 나누며 언니와 나는 다시 가까워졌다. 언니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많이 밝아졌는데, 동시에 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나는 언니가 나 아닌 친구와 연인에게 시간을 쏟는 게 어색하고 불편했다. 나는 언니에게 왜 요즘 나와 놀지 않는 것이냐고 농담처럼 말했고, 언니는 “그런가?” 하며 넘겼다. 많이 싸우긴 했으나 어릴 때부터 둘도 없는 친구였기에, 언니의 말은 나를 서운하게 했다. 언니는 자주 내게 연애 상담을 했다. 그럼 나는 그 사람을 안 좋게 평가하고 헤어지라 했다. 몰아붙이는 내게 언니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 했지만 나는 그것도 보기 싫었다. 나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언니의 연인들을 질투했고 미워했다.


5. 진지하게, 이야기 해봅시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라 적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아빠였다. 아빠가 쉬는 날이면 신경이 곤두섰다. 선명하게 들리는 아빠의 목소리는 내 안의 예민함을 툭툭, 건드렸다. 아빠와 함께 있으면 현재보단 과거를 생각하게 됐다. 서로를 향해 증오의 눈빛을 던졌던 때가 떠올랐고 이유 없이 쏟아졌던 아빠의 폭언이 생각났다. 과거를 곱씹는 만큼 상황이 해결되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나는 여전히 아빠가 불편했다. 아빠를 생각하면 두 가지의 감정이 떠올랐다. 애(愛)와 증(憎). 나는 아빠를 애증한다. 폭력의 기저엔 할아버지가 있었다. 스무 살이 되기 전 할머니와 결혼한 할아버지는 아들을 둘 이상 보고 군대에 갔다. 할아버지는 그곳에서 술을 배웠고 폭력을 배웠다. 할아버지의 폭력은 아빠에게까지 이어졌고, 그건 곧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언젠가 아빠가 죽겠다며 집을 나서던 날, 새벽 내내 울다 겨우 잠이 들었다. 엄마는 아빠가 우리를 겁주는 것이라며 걱정하지 말라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빠를 사랑했기에 아빠가 정말 죽진 않을까 걱정했다. 다음 날 아빠는 술과 번개탄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고, 아빠의 옷엔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내게 그 새벽은 여전히 생생한 기억이고 아빠를 떠나보낸 날이다. 아침이 되자마자 찾아온 아빠의 모습은 내게 더 이상 사랑을 남기지 않았고 증오만을 남겼다. 그 날을 계기로 아빠와 우리는 서먹해졌다. 엄마는 살이 10kg 가까이 빠졌고 언니는 아빠를 더욱 증오했다. 그나마 아빠의 편이었던 나도 더 이상 아빠를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아빠는 자신의 과거를 방패삼아 우리에게 폭력을 가했다. 아빠가 미울 때마다 아빠의 과거를 떠올리며 그 행동을 이해하려 했다. 그랬기에 언니에게 “미련한 년, 정신 못 차린 년.” 소릴 들어도 참았다. 하지만 아빠는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고 나 역시 더 이상 미련한 년이 되고 싶지 않았다. 아빠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언니와 내가 왜 그리 쌀쌀맞고 차가운지. 아빠의 손가락은 매번 엄마를 향했다. 아빠는 “네 엄마가 살림을 못 살아 그런 거”라고 했다.


사람을 사랑하기란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사랑은 그리 무겁지 않은 것이라 시작은 쉬우나 끝은 질기다. 헬륨 가스가 든 풍선이 손을 떠나 하늘 멀리 나는 것처럼, 그것들은 한때 있었으나 없는 것이 되고 하늘로 올라간 뒤 터지게 되더라도 풍선 속 공기는 대기와 섞여 존재한다. 그렇기에 사랑했던 기억은 잊을 만하면 찾아온다.


사랑 아닌 것들로 이루어진 사랑. 종이의 원료가 나무라면 사랑의 원료는 무엇일까. 내 사랑엔 미움도 있고 증오도 있고 미안함도 있고 미련도 있다. 더 주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밤이 있는가 하면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다 잠드는 밤도 있다. 당장이라도 만나고 싶을 만큼 보고 싶은 밤도 있고 평생을 보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밤이 있다. 별 거 아닌 감정으로 사람을 기쁘게도, 슬프게도, 행복하게도, 우울하게도 만드는 사랑의 원료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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