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내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1일 1행복 실천기

by 목연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믿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이걸 정말 믿어도 될까, 하는 마음만큼이나 그것이 진실이길 바라는 마음이 상충하는 순간이. 믿고 싶은 것을 믿고 듣고 싶지 않은 걸 듣지 않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것에 대한 결과는 언제나 나의 몫이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판단할 땐 신중해야 한다. 진실인 것과 진실이 아닌(아닐 수도 있는) 것 사이에서, 나는 진실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을 믿기로 했다. 내가 사랑하는 ‘은비’의 말을 말이다.


은비는 쁘니의 딸이자 고양이다. 지난해까진 우리 집 마당에서 살았고 지금은 골목 끝에 있는 집에 사는 고양이. 다섯 남매 중 첫째이자 여전히 나와 엄마, 언니를 기억하는 아주 똑똑한 고양이. 또 내게 사랑한다고 말한 고양이.

은비의 엄마, 쁘니를 만난 건 삼 년 전이다. 여느 때와 같이 마당 한 곳에 길고양이 밥을 놓던 엄마는 담벼락 위에서 배를 뒤집은 채 애교부리는 쁘니를 발견했다. 쁘니는 사람의 손을 탄 듯 깨끗하고 뽀얬으며, 멀찍이서 애교를 부렸다. 엄마는 “고놈 참 신기하네.” 하며 간식을 줬고, 어느새 쁘니는 우리 집을 드나들었다. 사실 우리 집엔 많은 고양이가 스쳐갔는데, 처음으로 임시보호 했던 ‘애기’와 길고양이 ‘깅깅이’, 온 몸에 끈끈이를 붙인 채 누런 침을 흘리던 ‘상배’가 그렇다. 이 외에도 많은 고양이들이 우리 집에 와 밥을 먹고 갔고, 그때마다 엄마는 아가들을 내치지 않았다. 쁘니는 빠른 속도로 우리와 친해졌고, 두세 달 쯤 지났을 때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깅깅이가 그랬던 것처럼 더 이상 우리 집을 찾지 않나보다 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현관문을 열고 쁘니를 불렀다. 일주일이 지났을 때, 쁘니는 힘찬 목소리로 야옹 하고 울었다. 엄마와 나는 쁘니가 혹시 다친 건 아닌지 걱정했지만 쁘니는 너무나도 멀쩡했다. 다만 한 달이 지났을 즈음부터 쁘니의 배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래도 쁘니 임신한 것 같아.” 했지만 엄마는 “살찐 거 아니야?” 했다. 두 달이 지나고 세 달이 됐을 때, 쁘니의 배는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엄마와 나는 인터넷으로 이동장을 주문해 쁘니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수의사는 쁘니가 두 살 쯤 된 것 같다고 했고, 출산 경험 역시 없어 보이진 않는다고 했다. 초음파 상으론 네 마리가 보이는데, 실제론 다섯 마리를 낳을 수도 있다는 말도 전했다. 병원에 다녀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쁘니는 출산을 했고, 아가들은 쑥쑥 자랐다. 쑥쑥 자라는 아가들을 보며 인스타그램과 네이버 카페, 애브리타임에까지 입양 홍보 글을 올렸지만 아가들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어쩌다 가끔 오픈 채팅으로 카톡이 올 때가 있었는데, 그들 중 대부분은 고양이의 종을 따졌다. 그들은 내게 아가들의 종을 물었고, “코숏이에요.” 라고 답장하면 더 이상 대답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아가들은 자랐고 우리는 차례대로 중성화를 시켰다(물론 쩨째만 빼고. 다섯 남매 중 개성이 강했던 쩨째는 삼일 간 보이지 않았는데, 쁘니가 그랬던 것처럼 혼자가 아닌 뱃속의 새끼와 함께 돌아왔다. 그즈음 아빠는 집으로 돌아왔고 쩨째는 하는 수 없이 우리 집 옥상에 놓인 창고에서 새끼를 낳았다. 다섯 남매 중 막내인 둥이는 누구보다 열심히 조카들을 돌봤고, 쩨째의 아가들은 쑥쑥 자라 우리 집 마당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 그즈음 우리에겐 고민이 생겼는데, 아가들을 어디서, 어떻게 돌볼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쁘니와 아가들은 집 안에서 돌볼 수 있었던 건, 아빠가 타지에서 일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 있으면 아빠가 돌아올 터였다. 엄마는 고민 끝에 일단 버티기로 했고, 집으로 돌아온 아빠는 크게 분노했다. 아빠는 우리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걸,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랬기에 더 크게 화를 냈고 싫은 내색을 숨기지 않았다. 당장 아가들을 보낼 곳이 없었던 우리는 옥상에 있는 창고를 정리해 아가들의 집을 만들었다. 인터넷으로 길고양이 집을 주문했고 밥그릇과 물그릇을 한 곳에 두었다. 화장실은 창고 밖, 비 맞지 않는 공간에 두었고 장난감 역시 준비했다. 다행히 아가들은 그곳에서 잘 지내줬고,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옥상에서 보냈다. 아가들은 자라며 성묘가 되었고, 쩨째의 아가들 역시 점점 크기 시작했다. 그 무렵 쩨째는 유독 은비를 싫어했다. 은비는 결국 현재 살고 있는 곳으로 터를 옮겼다. 쁘니 역시 이틀에 한 번 꼴로 집을 찾았는데, 아무래도 아가들이 너무 자란 게 부담스러운 것 같았다. 쁘니는 가을의 어느 날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집을 찾지 않았다.


현재 우리 집 마당엔 쩨째의 아가 세 마리와 쁘니가 남기고 간 달래가 있다. 은비와 쩨째, 둥이는 골목 끝에 있는 집으로 터를 옮겼고, 또랑이는 보이지 않는다. 터를 옮긴 곳에서 은비와 쩨째, 둥이는 그곳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가끔 엄마와 함께 간식을 들고 그 집을 찾을 때면, 아가들 밥을 챙기는 주인 아주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아주머니는 나와 엄마에게 자주 놀러 오라 하시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아주머니가 없을 때, 몰래 간식을 준다. 그럼 아가들은 골골대며 애교를 부리고 알은 체를 한다. 특히 은비는 멀리서도 우리 목소리가 들리면 야옹하고 우는데, 그럼 은비에게 묻고 싶어졌다. 너희는 우리가 밉지도, 싫지도, 원망스럽지도 않느냐고 말이다. “은비야, 언니 안 미워?” 라고 물으면 은비는 야옹, 했다. 그러면서 나와 엄마에게 제 몸을 비볐다. 언젠가 고양이의 말이 궁금해 앱을 설치했다. 나를 보며 야옹야옹 우는 은비의 입에 휴대폰을 대니, “사랑해요.” “사랑해요.” “안녕.”이 떴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나인데 사랑한다고 말하는 은비에게 고맙고 미안해서 눈물이 났다.



33..jpg 사실이라 믿고 싶은 말


소원이 있다면 고양이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인간의 언어여도 좋고 고양이의 언어여도 좋으니, 우리 사이에 의사소통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듯하다. 그럼 더 이상 앱을 통해 아가들의 말을 해석하지 않아도 되고, 해석된 말을 의심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만약 은비, 또랑, 쩨째, 달래, 둥이와 말할 수 있다면, 더불어 쩨째의 세 아가들과도 말할 수 있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주 많이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이전 16화동글동글, 털 공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