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행복 실천기
올해 삼 월, 회사 사정으로 인해 강제 백수가 되었다. 회사에서 유일한 아르바이트생이었던 나는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유니폼을 반납했고, 휴학생이자 취업준비생, 그러나 백수가 되었다. 아홉 시부터 여섯 시까지 일하는 풀타임 알바였기에 돈을 벌기에도, 시간을 보내기에도 적절했다. 누군가는 졸업을 앞둔 나를 두고 “알바 할 시간에 취업 준비를 하나 더 하지, 무슨 풀타임 알바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내겐 돈을 모아야 할 사정이 있었기에 알바는 꽤 소중했다.
알바를 가지 않게 된 첫 월요일, 걱정이 밀려왔다. 사실 잠자리에 드는 순간부터 걱정은 밀려왔다. ‘내일 뭐 하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하루를 채우지.’ 그런 걱정을 하다 잠이 들었다. 아침, 평소처럼 알람이 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했다. 그런 뒤 집 근처 산책로를 한 시간 걸었다. 걸은 후엔 벤치에 앉아 음악을 들었고 다녀와선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마침 모 매거진에서 시행하는 100일 글쓰기 프로그램도 있었기에 그것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일주일은 그럭저럭 보냈으나 두 번째 주부턴 막막함이 밀려왔다. 세상은 빠르게 변했고 친구들의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거울 속 내가 보였다. 하는 거라곤 독서와 글쓰기, 약간의 운동 밖에 없는 나. 생산적인 활동 없이 느리게 걷기만 하는 나. 나를 보고 있으면 어쩐지 시대와 동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다수가 취업 준비를 하고 자기계발에 힘들 때, 독서가 웬 말인가 싶었다. 글쓰기는 또 웬 말인가 싶었고 그런 와중에 100일 동안의 글쓰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 머리 쓰는 나를 보며 애쓴다 싶기도 했다. 부정적인 생각은 끝이 없었고 이러다 내가 나를 죽이겠다 싶어 생각을 멈췄다. 그리고 적었다. 현재 나를 가장 괴롭히는 것들을.
취업, 알바, 남는 시간, 돈 모으기
어릴 적 내 꿈은 다양했다. 무대 연출가, 도예가, 배우, 독립영화 감독, 소설가, 드라마 작가. 성공하면 큰돈을 벌고 그렇지 못하면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직업이 나의 꿈이었다. 하지만 스물이 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이른 타협이었으나 스물이었던 내게 현실의 벽은, 돈이 없음의 슬픔은 커다랗게 다가왔다. 그때부터 진로에 대한 고민이 짙어졌다. 하지만 알고 있는 직업 중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없었고, 무언가를 진득하게 밀고 갈 재능도 내겐 없었다. 출판 편집 수업을 들으며 편집자를 꿈꾸게 되었지만, 불안함에 못 이겨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 같아 한동안 그 마음을 의심하기도 했었다(지금은 오랜 고민 끝에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진심으로 느끼고 있다). 꿈을 가지게 되니 방향이 생겨 좋았지만 동시에 취업을 떠올려야 했다. 취업을 하려면 경기도나 서울로 가야 하고, 그러려면 돈을 모아야 하고, 그 전에 능력을 쌓아야 할 테고 북스타그램도 꾸준히 해야 하고…(결국 나는 돈과 시간을 벌기 위해 휴학을 선택했다). 이런 생각은 나를 괴롭혔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렇기에 백수가 되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건, 반복되는 일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루를 온통 내 마음대로 보낸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평일에 일하고 주말에 맘껏 쉬는 것은 즐겁지만 매일이 주말이라고 생각하면, 또 그게 현실이 되면 꽤 막막한 일이었다. 삼월 한 달을 방황하는 데 시간을 쓴 나는 사월이 되어서야 계획을 세워 루틴을 만들었다. 그동안 게을리 했던 북스타그램도 다시 시작했고 예전부터 배우고자 했던 인디자인도 공부해 자격증을 땄다. 아르바이트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실업급여를 받고 있던 상황이어서, 8월은 되어야 알바를 할 수 있었다) 필요한 물건이 아닌 이상 사지 않았고, 소중한 이와 함께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렇게 사월을 보내고 나니 다가오는 오월도 두렵지 않았다.
구월이 된 지금 나는 복학을 했고 알바도 하고 있다. 북스타그램도 꾸준히 올리고 있으며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서포터즈 모집에도 수시로 지원서를 넣는다. 열 곳에 넣으면 한두 군데 될까 말까지만,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므로 그저 묵묵히 내가 여기 있음을 알린다.
요즘도 나는 하루를 잘 보내기 위해, 반복되는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하여 후회 없는 하루 끝이 되기 위해 몸을 움직인다. 틈틈이 찾아드는 걱정과 고민을 달래기도 하고 그것들을 돌려보내기도 하며, 또 게을러지려는 몸에게 하루 정도 휴식을 주기도 하며 말이다. 반복되는 일상의 기쁨, 갈 곳이 있다는 것과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주는 안정과 무거움. 그 묵직한 기쁨이 나의 하루를 만들고 나를 잘 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