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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연 Feb 05. 2020

층이 난 꼬리를 가진 고양이

언제나 고맙고 미안한 마음





다섯 형제 중 첫째이자 애교가 넘치는 고양이, 은비. 함께 어울려 노는 다른 형제들과 달리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은비는 언제나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다. 그렇기에 우연히 은비를 마주치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혹여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에. 이런 나의 걱정과 달리 은비는 언제나 씩씩하게 집을 나섰고 예상치 못한 때에 집에 돌아와 편히 쉬고 있었다. 이런 은비에게 약 한 달 전 시련이 찾아왔다. 그건 바로 누군가 놓은 끈끈이를 은비가 실수로 밟아버린 것이다. 하루종일 보이지 않던 은비는 밤이 되자 옥상으로 돌아왔고 제 몸만한 크기의 끈끈이를 다리와 꼬리에 붙인 채 옥상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쥐를 잡기 위해 만들어진 그것은 생각보다 컸다. 나와 엄마는 당황한 얼굴로 뛰어다니는 은비를 잡아 집으로 데려왔고 가위로 끈끈이를 조금씩 잘라내었다. 끈끈이는 떼었어도 풀은 여전히 은비 몸에 붙어 있어서 동물용 이발기를 사 털을 밀 수밖에 없었다(덕분에 은비는 계단식 논 대신 계단식 털의 꼬리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끈끈이는 말 그대로 끈끈해서, 이발을 마친 내 손 곳곳에 진득하게 달라 붙어 있었다. 그 날 나는 은비 몸에 붙은 끈끈이를 떼며 인간만큼 잔인한 존재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쩨째와 둥이가 쥐를 물어다 놓은 날, 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소리를 질렀었다. 아이들이 물어다 놓은 쥐는 누가봐도 방금 죽은 쥐여서, '쥐'라고 발음하기도 싫을만큼 징그럽고 무서웠다. 하지만 은비의 몸에 붙은 끈끈이를 떼며 나는 그때의 쥐를 떠올리게 되었다. 내가 징그럽고 무섭게 여기는 한 생명이 이토록 끈질긴 풀에 붙어 죽어가는 모습을 생각하니 그 자체만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생김새가 어떻든 생명은 모두 살아있는 것이고 존재만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것인데 말이다. 




둥근 몸을 더 둥글게 굴려 그루밍하는 중 / 애교는 서비스 / 꼬리 털은 여전히 자라는 중!




그 날 이후 은비는 한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털 역시 더딘 속도로 자랐다. 위축돼 있던 은비가 다시 걸음을 뗀 건, 일이 있고부터 약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을 무렵이었다. 은비는 천천히 용기와 자신감을 찾았고 나는 그런 은비를 쓰다듬는 것으로 은비를 응원했다. 




화분과 햇빛을 좋아하는 은비 / 하루 세 시간 일광욕은 필수



그 날로부터 약 한 달이 지난 지금, 은비는 자신감을 완전히 되찾았다. 누구보다 당당한 모습으로 골목을 뛰어다니고 둥그런 몸을 굴려 그루밍도 한다. 그런 은비를 볼 때면 나는 여전히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든다. 위험한 것 천지인 세상에서 건강하게 돌아와줘서 고맙고 그런 세상에서 살게 해서 미안한 마음이, 언제나 함께 든다.




끈끈이는 끈적해도 아픈 기억은 쉽게 떨어져 나가길,

언제나 기도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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