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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연 Feb 05. 2020

오늘의 생각 : 엄마의 청

당뇨에도 약간의 설탕은 필요하니까





내가 어릴 때부터 엄마는 잼이나 청을 자주 만들어주셨다. 시중에서 파는 것들은 너무 달다는 걱정과 함께, 설탕이 덜 들어간 잼과 청을 말이다.


엄마는 몇 해 전 당뇨 판정을 받았다. 튜브와 먹거리를 가지고 놀러 간 계곡에서, 수지침을 체험하다 우연히 당뇨 판정을 받게 된 것이다(다음 날 엄마는 병원으로 가 검사를 받았고 당뇨 판정을 받았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심심풀이로 먹던 사탕을 모두 버렸고  단 것을 먹지 않으려 노력했다. 식후 먹는 과일도 입에 대지 않았고 하루에 네다섯 잔씩 마시던 커피도 마시지 않았다. 비싸다며 사지 않았던 텀블러엔 미지근한 온도의 생수를 담아 늘 옆에 두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는 텀블러를 비우곤 했다. 엄마의 이러한 노력 덕에 혈당은 빠른 속도로 떨어졌고 엄마는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며 기뻐했다. 하지만 엄마의 당뇨는 다 나은 것이 아니었다. 관리를 잘한 덕분에 잠시 떨어진 것이었다. 엄마는 내게 병원에서 들은 말을 전해주며 "평생 친구라고 생각해야지, 뭐."라고 말했다. 엄마는 자신의 병을 친구 삼기 시작한 것이다. 그 날부터 엄마는 커피를 다시 마시기 시작했고 사탕도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다만, 엄마의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양까지의 당분만을 엄마는 섭취했다. 


온종일 당을 신경 써야 하는 엄마는 겨울에도 유자차 대신 차를 마셨다. 당뇨가 있기 전까지만 해도 유자차를 즐겨 마시던 엄마였지만, 당뇨약을 먹으면서부터 엄마는 유자차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대신 엄마는 우리가 어릴 때 청을 만들어줬듯 마트에서 과일을 사 직접 청을 담그기 시작했다. 엄마의 몸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당분이 든 청을 말이다.



한 잔 다 비우고 가득 찬 속



시중에서 파는 청이 단 맛을 내세운다면 엄마가 만든 청은 과일 본연의 맛을 살리는 청이다. 그렇기에 일상의 단맛 대신 자연의 단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무언가를 먹기엔 배가 고프고 먹지 않자니 잠이 오지 않는 새벽, 엄마의 귤청을 한 스푼 떠 뜨거운 물에 태워 마시면 그 맛이 그렇게나 좋고 달다. 


다음엔 내가 엄마에게 청을 만들어줘야지.





엄마에게 당뇨는 매일 안부를 물어야 하는 친구이고 같이 손 잡고 걸어야 할 동반자이다. 그렇기에 엄마의 머리맡엔 물이 담긴 텀블러와 조그마한 크기의 혈당 측정기가 늘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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