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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연 Feb 20. 2020

쩨째는 사고뭉치(2)

3일간의 가출 혹은 여행





강아지에게 산책은 필수이지만 고양이에게 있어 산책은 지양해야 할 무엇이다. 다섯 형제의 엄마인 쁘니는 길고양이기에 집과 밖을 자주 드나들었지만, 다섯 형제의 경우엔 4개월이 될 때까지 집에서만 생활했다. 쁘니는 나와 엄마에게 아가들을 맡겨두고는 외출을 나갔고 아직 바깥세상을 맛보지 못한 아가들은 집이 세상의 전부인 듯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외출을 하는 쁘니가 부러운 듯 아가들은 현관문 앞에 앉아 문을 열어달라며 시위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입양 계획이 있던 터라 나와 엄마는 외출을 금지시켰지만, 또랑이의 입양이 무산되고 입양 간 달래가 파양 되면서 나와 엄마는 차라리 쁘니를 따라다니게 하자는 결정을 내렸다(사실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일단은 아가들의 안전 문제가 가장 큰 걱정거리였고 두 번째는 고양이와 함께 살 수 없다는 아빠의 반대 때문이었다. 사실 쁘니가 우리 집에서 새끼를 낳을 수 있었던 것도 아빠의 부재 때문이었다. 타지에서 일하던 아빠는 사정 상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고양이를 키우는 건 괜찮지만 집에서 키우는 건 안 된다고 했기에 나와 엄마는 차라리 빨리 동네 지리를 익히게 하자는 결정을 내렸었다). 



아가들에게 현관문을 열어준 첫날, 엄마는 쁘니 혼자 다섯 마리 새끼를 돌보는 것은 무리라는 말과 함께 한 마리씩 돌아가며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처음 일주일은 마당과 계단까지만 산책을 나갔고 우리 역시 함께 외출했다. 그로부터 며칠, 몇 주가 지나자 아가들은 길을 익힌 듯 쁘니를 따라 꽤 멀리까지 산책을 다녀왔다. 그런 모습을 보며 우리는 아주 조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와 엄마가 마음을 놓았을 때, 쩨째가 집을 나갔다.



쁘니와 함께 집을 나선 쩨째는 밤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불안해하는 내게 엄마는 하루만 기다려보자고 했지만 다음 날이 되어서도 쩨째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던 밤, 나는 골목뿐만 아니라 동네 전체를 다니며 쩨째를 불렀다. 그렇게 3일이 지난 아침, 방에서 나온 엄마는 "쩨째!"하며 크게 쩨째를 불렀다. 방학을 핑계로 늦잠을 자고 있던 나는 엄마의 목소리에 곧장 거실로 나왔고 냉장고 위에 누워 곤히 자는 쩨째를 발견했다. 엄마는 내게 쩨째를 가리키며 '네가 찾아온 것이냐'며 물었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언니 역시 자신이 찾아온 것이 아니라 했고 그 순간 엄마의 등 뒤로 찢어진 방충망이 보였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던 쩨째는 혼자만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평소 자주 앉아 쉬던 창 틈 사이의 방충망을 타고, 그것을 찢고서 말이다.




쩨째가 좋아하던 창문 사이, 쩨째가 찢고 들어온 방충망



그 날을 계기로 우리는 쁘니와 다섯 형제들에게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목걸이를 걸어주었다(물론 일주일도 가지 않아 그것을 모두 잃어버린 아가들이지만). 다행히 쩨째의 가출 이후로 집을 찾아오지 못한 아가들은 없지만 이따금씩 아가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면 혹시 하는 마음과 함께 미안함 마음이 들곤 한다. 집이 아닌 바깥세상에 적응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아빠를 설득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언제나 그렇듯 사고뭉치는 나,

고양이는 예뻐도 털 날리는 건 싫다는 아빠,

이렇게 부족하고 모자란 우리 가족을 사랑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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