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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연 Feb 24. 2020

고양이는 오늘도

비닐봉지와 고양이





낮 기온이 17도까지 올라간 오늘, 코로나19로 인해 외출을 자제하는 사람들과 달리 고양이들은 오늘도 힘이 넘친다. 총 여덟 마리 고양이가 배출하는 배변의 양은 많아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옥상에 올라가 아가들의 배변을 치우곤 한다. 오늘 역시 마스크를 낀 채 옥상으로 향했고, 봉지를 벌리기가 무섭게 둥이가 달려왔다. 



봉지로 둥이 포장하기


큰 덩치와는 달리 순한 성격을 가진 둥이는 내가 봉지로 제 몸을 감싸도 가만히 있는다. 그럼 나는 더욱 신이 나 예쁘게 리본을 묶어 준다. 한참을 있던 둥이는 몸이 근질거리는지 나를 보며 울었고 매듭을 풀기가 무섭게 달래가 달려와 봉지 안으로 쏙, 들어간다.



달래도 봉지랑 놀고 싶었어



매사에 적극적인 둥이와 달리 제 흥미를 불러일으켜야만 움직이는 달래는 봉지가 마음에 들었는지 한동안 봉지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 사이 나는 하나 더 챙긴 봉투를 펼쳐 아가들의 감자와 맛동산을 한가득 펐다. 


내가 아가들의 배변을 치우는 동안 봉지는 어느새 쩨째의 것이 되어 있었다. 쩨째는 밤톨이와 함께 봉지 안에 숨어 무언가를 염탐하듯, 건너편 집을 쳐다보았다.



또랑이도 봉지가 궁금하다, 근데 쩨째가 안 비켜준다
또랑이, 용기를 내본다. 고개를 들이민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주먹부터 나가는 쩨째는, 그게 누구든 주먹 쓰는 것을 가리지 않는다. 그것을 아는 또랑이는 쩨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봉지에 접근한다. 봉지에 관심 없는 척, 괜히 시선을 돌리며. 하지만 쩨째만큼이나 주먹을 잘 쓰는 또랑이는 쩨째 옆의 아가를 보더니 이내 고개를 들이민다. 다행히 쩨째의 주먹은 또랑이를 향하지 않았고 봉지는 또랑이의 것이 되었다. 아가들은 오늘도 힘이 넘친다.




대한민국 길 어딘가, 그중에서도 대구 어딘가에 사는 호구 집사와 여덟 마리 고양이들. 

우리 같이 코로나 잘 이겨내 보자는 말과 함께 아가들에게 간식을 주며 마무리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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