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에게>

여덟

by 목연





지난 주 금요일을 끝으로 아르바이트 계약이 만료되었다. 게으른 주말을 지나 아침이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오늘 뭐 하지?" 하는 것이었다. 예전이었다면 오랜만의 휴식을 핑계로 늦잠을 잤겠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기에 평소처럼 일어나 양치를 하고 세수를 했다. 그리고 요거트를 먹은 후 가볍게 산책을 했다.


<윤희에게>는 예전부터 보려던 영화 중 하나다(넷플릭스에 떴을 때부터 찜해뒀는데, 왜 이제야 본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편지로부터 시작되어 편지로 끝나는 이야기. 한국과 일본을 넘나들고 과거와 지금을 연결하는 그 방식이, 새롭진 않았지만 진부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영화는 잔잔했고 배우들의 연기는 과하지 않았다. 그게 참 좋았다.


십대 때엔 잔인하고 자극적인 영화나 이해하지 못할 만큼 난해한 예술 영화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런 영화를 찾아봤고 보다 더 깊고 잔인한 것들을 원했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 이르면서 잔잔한 영화가 좋아졌다. 긴박한 스토리 보단 서사를 가진 인물을 바라보게 되었고 이해하기 힘든 미장센과 연출에 집중하기 보단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에 주목하게 됐다. 물론 여전히 상업영화보단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더 좋아하는 편이긴 하다.


편지는 일기와 더불어 한 인간의 내면을 가장 솔직하고 내밀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것은 사랑 이야기에 자주 사용되고 사랑에 빠진 이가 자신의 마음을 전할 때 사용하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윤희에게>에서도 편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윤희를 향한 쥰의 마음을 전달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쥰과 윤희를 만나게도 하니까. 동시에 그 편지로 인해 윤희와 그녀의 딸인 새봄의 관계가 조금 달라지기도 한다. 우리는 흔히 엄마와 딸 사이를 아주 가깝게 여기지만 그렇지 않은 엄마와 딸도 존재하니 말이다.


한 통의 편지로 인해 윤희와 쥰은 만나게 되고 새봄과 윤희 역시 서로 간에 존재하던 거리를 좁히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에도 편지는 윤희의 마음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 영화가 좋았던 건 퀴어를 일상적인 것으로 녹여냈다는 점(첫사랑과 그것이 가지는 애틋함을 결부시킨 것)과 퀴어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극적인 장면이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본 퀴어 영화는 대체로 베드신이나 19금 마크를 동반했는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아서 좋았다. 19금 아닌 12세 관람가이기에 영화가 더 일상적으로 다가왔고 인물들의 서사가 깊게 와닿았다. 또한 윤희와 새봄의 관계가 긍정적으로 변하는 것도 보기 좋은 요소 중 하나였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딸과 엄마는 흔히 친한 친구 관계로 생각되고 그려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 사이를 속속들이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평생을 함께 산 가족이라도, 또 그 성별이 같다 할지라도 벽은 늘 존재하는 법이다. 감독은 그런 지점을 외면하지 않았고 둘 사이에 벽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마지막 장면, 윤희의 나레이션에서 녹여냈다. 새봄과 그의 남자친구도 참 귀여웠는데, 십대 커플이 가지는 풋풋함이 잘 느껴져서였다.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을 보고 '까졌다'거나 '요즘 애들'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모습에서 그 나이대만이 가질 수 있는 풋풋함이 느껴져 좋았다. 특히 새봄을 따라 담배를 배우겠다는 경수의 모습은 참으로 귀여웠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듯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것 역시 당연하게 여겨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사랑은 종을 초월해서도 가능한 것인데 단지 성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사랑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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