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는 몸으로 온다

스물아홉

by 목연





엄마는 무릎과 허리가 아픈 것으로 날씨를 예측한다. 아빠는 동상 걸렸던 발가락이 굳는 것으로 겨울을 알아차리고, 나는 멀미를 동반하는 어지러움으로 스트레스의 척도를 감지한다. 수험생 때부터 위가 아팠던 언니는 조금이라도 피곤하거나 지치면 죽 대신 양배추 즙을 먹는다.


스트레스는 몸으로 왔다. 코로나와 동시에 마스크를 끼며, 두 뺨에 여드름이 났다. 엄마를 닮아 주근깨는 많았지만 여드름은 나지 않던 내게 붉은 자극과 그것이 주는 통증은 낯설었다. 노랗게 익은 고름을 면봉으로 짠 후 연고를 바르며, 보드랍던 내 피부를 떠올렸다. 주근깨를 받아들인 것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흉터를 남기는 여드름이라니. 한동안 거울 보는 것이 무서웠다. 회사로부터 해고를 통보 받은 후 시간이 많아지며 스트레스도 많아졌다. 예전과 달리 노는 게 즐겁지 않았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일어나던 시간에 일어나 산책을 하고 밥도 잘 챙겨 먹지만, 어딘가 불편했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 노트북을 켜고 책을 읽고 글을 썼지만, 그게 전부였다. 남들처럼 공기업에 취업하고 싶다는 마음도 없어서 무얼 해야 할지 고민했다. 평일이 있기에 주말이 소중하다는 걸 여실히 깨달았다.


철학자 김진영은 <아침의 피아노>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몸은 나날이 망가졌지만 정신은 나날이 빛났다, 라는 식의 역설은 옳지 않다. 몸을 지키는 일이 정신을 지키는 일이고 정신을 지키는 일이 몸을 지키는 일이다.” 우리는 흔히 몸과 마음을 따로 둔다. 그렇기에 아침에 울리는 알람을 끄는 건 손일까, 명령하는 머리일까 고민한다. 하지만 몸이 곧 마음이고 마음이 곧 몸이다. 몸이 병들면 마음이 병들고, 마음이 병들면 몸도 병이 든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잊고 살았다. 마치 삶과 죽음을 따로 보는 것처럼 몸과 마음을 따로 보았다. 그렇기에 때론 내 몸을 혹사했고 때론 마음을 혹사시켰다. 시간이 많아지며 몸이 편해진 건 딱 일주일 정도였다. 그 시간을 넘기자 시간이 몸으로 느껴졌고 잔잔하던 이명이 조금씩 커졌다. 그럴 때마다 저 문장을 떠올렸다. 내 마음이 불편하니 몸도 불편하고 그러니 마음이 또 한 번 불편해지는 것이라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누군가 내게 ‘잘 노는 방법’ 또는 ‘잘 휴식하는 방법’을 알려줬으면 어땠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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