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보다 잠이 좋아

서른

by 목연





내가 가진 것 중 어느 것은 여전하고 어느 것은 예전과 다르다. 낮은 코와 웃을 때면 사라지는 눈, 눈길이 보다 짧은 쌍꺼풀은 어릴 때와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볼에 난 여드름과 정상 범주에 속하는 체중, 얇아진 머리카락은 과거의 나와 다른 것들이다.


어릴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을까. 외형적인 것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잘하는 것들까지.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같다고 할 수 있을까. 바게트 빵을 먹고 소화시키지 못 하는 나를 보다 문득 생각해본다.


얼마 전, 저녁 약속을 위해 점심을 바게트로 때웠다. 약간의 딸기 잼을 바른 바게트와 우유로 배를 채웠는데, 저녁 약속이 다 되어가도록 소화가 되지 않았다. 소화 되지 못한 빵은 내 위를 둥둥 떠다녔다. 약속을 취소할 순 없었기에 소화제를 먹고 약속 장소에 나갔지만 다음 날까지 속이 더부룩했다. 엄마와 점심으로 감바스를 먹으며, 구운 빵에 새우를 올려 먹었다. 며칠 전 그 날처럼 속이 좋지 않았고 결국 또 소화제를 먹어야 했다. 예전엔 빵이든 밥이든, 적게 먹든 많이 먹든 소화가 잘 됐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많이 먹으면 소화가 되지 않았고 다음 날까지 나를 괴롭혔다. 그런 경험을 몇 번 반복한 후, 나는 어떤 음식이든 내가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먹었고 되도록 빵보단 밥을 먹으려 했다.


매일 아침, 운동을 하면 돋아나는 새싹을 볼 수 있다. 겨울 동안 휑했던 나뭇가지엔 초록이 물들고 벚꽃은 어느새 떨어질 준비를 한다. 과거의 내게 봄은 달갑지 않은 계절이었다. 나는 벚꽃과 봄에 환영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벚꽃을 보러 가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교정에 핀 벚꽃을 보며 내가 봄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게 봄은 늘 새 학기, 새 친구를 동반하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봄은 불편한 것이었고 적응해야 할 또 다른 무엇이었다. 하지만 길가에 피어나는 민들레와 풀꽃, 초록이 주는 신선함을 보며 내가 그것들로부터 힘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초록과 봄이 주는 기운을 남들보다 조금 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예전과 가장 크게 달라진 게 있다면 밥보다 잠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 예전엔 잠보다 밥이 더 고팠는데, 요즘엔 먹는 것보다 잠이 더 고팠다. 학년이 올라감과 동시에 쌓여가는 과제를 하며, 취업 준비 및 보증금 모으는 데 쓰기 위한 돈을 모으고 벌며 잠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무엇보다 밥은 다음 날 먹어도 되지만 잠은 때를 놓치면 오래 뒤척여야 하기에, 잠이 올 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밀가루와 육류보단 쌀과 생선을, 어쩐지 마음이 헛헛해지는 가을보단 초록이 돋아나는 봄을, 든든한 배보다는 개운한 단잠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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