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하나
속이 좋지 않은 날이면 엄마는 숭늉을 끓여줬다. 누른 밥에 물을 붓고 뜨겁게 끓이면 구수함이 코끝을 자극했다. 죽을 싫어하는 언니를 위해, 텅 빈 속을 따뜻하게 채우기 위해 엄마는 숭늉을 만든다.
아침을 먹기 시작한 건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다. 이른 등교 시간을 지켜야 했던 고등학생 시절엔 아침은커녕 물 한 모금 마시는 것도 사치였다. 가끔씩 학교 앞에서 파는 김밥을 사먹기도 했지만 2교시가 되면 배가 꺼졌다. 시간표를 마음대로 짤 수 있게 되며 아침을 먹는 날이 많아졌다. 어떤 날엔 아홉 시에 아침을 먹었고 어떤 날엔 일곱 시에 먹었다. 시간이 넉넉한 날엔 엄마 대신 내가 요리를 했고 늦잠을 잔 날엔 두유를 챙겨 집을 나섰다.
아침밥의 소중함은 여름보다 겨울에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열대야가 이어지는 한여름엔 밥 한 술 뜨는 것조차 버거워 시리얼로 배를 채웠지만, 추운 날엔 밥을 먹지 않으면 몸이 허한 게 느껴졌다. 그렇기에 겨울엔 외출하기 전 아주 조금이라도 밥을 먹었다. 함께 밥을 먹자 엄마와 이야기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엄마는 새로 한 반찬이 어떻냐고 물었고 나와 언니는 맛있다고, 독립하기 전 엄마에게 음식을 배워야겠다고 말했다. 매 끼니를 챙기는 게 번거로울 텐데도 엄마는 늘 우리의 시간에 맞춰 끼니를 걱정했다. 밥을 먹지 않겠다고 하면 어디 아픈 것이냐 걱정했고, 밥을 조금 먹는 날이면 적게 먹는다고 걱정했다. 이러한 엄마의 걱정이 때론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엄마가 밥을 먹지 않는다고 할 때에 우리 역시 엄마를 걱정하므로 고맙게, 또 미안하게 느껴졌다.
자기 전이면 세 모녀는 내일 아침에 뭘 먹을지 고민한다. 언니는 주로 요거트를, 나는 시리얼을, 엄마는 밥을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