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찐 기분은 나를 두렵게 한다.

서른넷

by 목연





새 학년, 새 학기가 되면 학교는 분주했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제 또래와 친해져야 했고 그러면서도 자신과 비슷한 성격의 아이들을 알아봐야 했다. 정신없는 3월이 지나면 꼭 해야 하는 게 있었다. 모든 학생이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그것. 바로 신체검사다. 신체검사에선 키와 몸무게, 앉은 키, 유연성, 체력 등을 테스트했다.

어려서부터 통통했던 나는 체력검사를 싫어했다. 유연성이나 체력 테스트와 같은 것들은 그럭저럭 넘길 만했지만 몸무게를 재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몸무게 재는 것을 거부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그랬겠지만, 아쉽게도 키와 몸무게를 재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어서 피할 수 없었다. 기역으로 시작하는 성을 가진 나는 누구보다 먼저 몸무게를 쟀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체력검사를 마친 어느 날, 선생님은 나와 남자애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비만 학생을 위한 운동 프로그램 설문조사 종이를 내미셨다. 선생님께 종이를 받는 순간, 나는 당장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내 옆에 선 남자애와 선생님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황급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 와 종이를 다시 펼쳤을 때, 눈물이 났다. 나는 손에 쥔 무언가를 빼앗긴 아이마냥 펑펑 울었다. 내겐 내 몸이 콤플렉스였다. 굵은 다리가 콤플렉스였고 앉으면 접히는 뱃살이 콤플렉스였다. 그랬기에 옷으로 몸을 숨겼고 옷을 살 때에도 ‘살이 덜 쪄보이는 옷’을 샀다. 하지만 그 종이를 받는 순간, 나의 콤플렉스를 들킨 것만 같았다. 부끄러웠다. 내가 살이 쪘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기분이었다. 그 날 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곳에 동그라미를 쳤고 다음 날 선생님께 제출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날, 나의 강박은 시작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로 넘어가는 겨울에 나와 언니는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이전에도 우리는 산책로를 자주 걷곤 했었다. 하지만 먹는 것을 그대로 유지하니 살이 더디게 빠졌고 우리는 좀 더 많은 살을 빼고 싶었다. 나와 언니는 인터넷에 올라온 운동 영상과 각종 식단을 조합해 우리만의 계획을 세웠다. 방학이 시작된 날부터 언니는 오전 여덟 시에 나를 깨웠다. 그런 뒤 놀이터로 가 열 바퀴를 뛰고 천 개의 줄넘기를 했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에서 달리기를 하고 줄넘기를 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나와 언니는 매일 같이 놀이터에 갔고 오후엔 근력 운동을 했다. 먹지 않고 움직이기만 하니 살이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해 겨울에 언니와 나는 약 15kg의 체중을 감량했고 동시에 건강을 잃었다. 살을 10kg 넘게 뺀 어느 날, 언니는 내게 단식을 제안했다. 나보다 조금 더 통통했던 언니는 살이 빠지지 않는 것 같다며, 일주일 동안 단식을 하자고 했다. 그때 나는 자신이 없었지만 해야 할 것만 같아 언니와 함께 단식에 들어갔다. 언니는 정말 일주일 간 단식을 했고 나는 이틀 차에 포기했다. 눈을 뜨면 머리가 어지러워 앞이 보이지 않았다. 온통 별과 시커먼 배경만이 보였고 샤워를 하다가 죽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식이 끝난 후에도 언니는 음식을 멀리 했다. 극한의 다이어트는 우리 자매에게 병을 남겼다. 언니는 거식증과 탈모를 앓았고 나는 폭식증과 생리불순을 겪었다. 언니는 머리가 빠지는 걸 눈으로 보고서야 음식을 가까이 했고, 나는 생리가 몇 달 째 끊겼음에도 폭식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음식을 먹고 토하길 반복했다. 그리고 죽을 힘을 다해 그것으로부터 멀어졌다.


요즘 나와 언니는 정상 체중의 몸으로 살아간다. 언니와 나는 그때를 회상하며, 그때 미쳤던 것 같다며, 다시는 그런 다이어트를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끔씩 살이 찌는 기분이 들 때면 그때와 같은 두려움이 찾아왔다. 그렇지만 나와 언니는 그때의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한 번 망가진 몸은 평생 가므로 마른 몸에 집착하지 않는 내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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