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셋
우리 집 마당엔 엄마의 손길이 가득 묻어 있다. 입구부터 현관까지 늘어 선 화분들엔 저마다 다른 식물이 자라고 있다. 조그마한 화분부터 분홍빛과 푸른빛의 수국, 풍성하게 자란 허브까지. 엄마는 겨울 동안 식물을 애지중지 키웠고, 풍성하게 자란 그것들을 며칠 전 마당에 내놓았다. 엄마의 사랑을 먹고 자란 식물들은 제 매력을 뽐내기라도 하듯 반들반들 빛났다.
지금 사는 집에 이사 오기 전, 우리 가족은 마당이 넓은 집에 살았다. 드라마에 나오는 집처럼 푸른 잔디가 깔린 마당은 아니었지만 시멘트 바른 바닥 위로 약간의 흙이 있는 곳이었다. 엄마는 그곳에 고추와 방울토마토를 심었고 옥상에까지 그것들을 심었다. 엄마는 내게 곧 있으면 토마토가 자랄 거라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내게 토마토는 마트 진열대에 포장되어 예쁘게 누워 있는 것이었기에, 아무것도 없는 흙에서 그것이 자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매일 토마토와 고추를 돌봤고 시간이 지나자 엄마의 말처럼 흙에서 싹이 트기 시작했다. 싹은 우리가 자라는 것만큼이나 빠르게 자랐다. 엄마는 내 키만큼이나 자란 싹이 꺾이지 않도록 지지대를 만들어줬다. 토마토가 자라지 않을 거라 믿었던 나는 어느새 토마토가 자라길 기다리는 아이가 되었다. 나는 엄마에게 언제 토마토가 열리는 것이냐 물었고 엄마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로 나를 다독였다. 그토록 기다리던 토마토를 수확하던 날, 엄마는 갓 딴 토마토를 옷으로 닦아 내 입에 넣어주었다. 여태껏 많은 토마토를 먹었지만 그것만큼 단 토마토는 없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토마토는 맛있었다. 우리는 그 집에 사는 내내 토마토와 고추를 재배했고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오면서 엄마는 토마토 대신 꽃을 키웠다.
어릴 때 엄마와 함께 토마토를 심고 수확하면서도 엄마가 이토록 꽃과 식물을 좋아하는지는 몰랐었기에, 한때는 식물을 향한 엄마의 사랑이 유별나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는 식물이 죽었을 때 슬퍼하는 엄마에게 진심이 담긴 위로를 전하지 않았었다. 내게 식물은 그 정도로까지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엄마의 슬픔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엄마는 봄을 맞아 다육식물을 열 개나 사왔고 그에 맞는 화분도 사왔다. 엄마는 내게 놔둘 공간도 없는데 이걸 사왔다며 멋쩍게 웃었지만, 어쩐지 그 모습이 좋아보였다. 우리를 키우고 아빠를 감당하며 자신에게 돈과 시간을 할애하지 않은 엄마였기에, 식물을 보며 행복해하는 엄마를 보는 게 좋았다. 동시에 내가 해주지 못하는 위로를 그 조그만 생명들이 해주는 것만 같아 엄마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엄마는 분갈이를 하는 내내 식물들에게 말을 걸었다. 마치 내가 달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엄마를 이해하면서도 미워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자신이 제일 불쌍하면서도 아빠를 더 가엾게 여기는 엄마를 미워했었다. 왜 이혼하지 않았냐고 물을 때마다 우리를 두고 어떻게 가냐며, 먼 곳을 바라보던 엄마를 미워했었다. 잘못은 아빠가 했는데, 원망의 화살은 언제나 엄마에게 향했다.
엄마는 오늘도 분홍색 수국을 사왔다. 장을 보러 가던 중 들른 꽃집에서 이걸 팔더라며. 엄마는 하늘색 수국 옆에 분홍색 수국을 두며 내일은 화분을 사러 가야겠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