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대 공리, 또는 억울함이 해결되지 않는 진짜 이유
[유희적 투쟁] 3화
세계는 이렇게 짜여 있다
--- 3대 공리, 또는 억울함이 해결되지 않는 진짜 이유
2화 말미에 나는 독자에게 물었다.
그 갈등의 타임라인 어딘가에서, 당신이 취한 행동이 완벽하게 결백했는가?
"잘 모르겠다"고 답한 독자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아닐 수도 있다고 솔직하게 인정한 독자가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지금 이상한 자리에 서 있다. 피해자이기도 하고 가해자이기도 한 자리. 억울함도 사실이고 미안함도 사실인 자리. 어느 쪽으로도 완전히 쏠리지 못하는, 불편하게 균형 잡힌 자리.
나는 그 자리가 정답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그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먼저 한 가지를 알아야 한다.
세계가 원래 어떻게 짜여 있는가.
✦ ✦ ✦
왜 억울함은 해결되지 않는가
갈등이 끝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한다.
상대방이 나쁜 사람이라서. 또는 내가 실수를 했기 때문에. 또는 시스템이 잘못됐기 때문에.
이 세 가지 설명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갈등의 원인을 특정 인물이나 사건에 돌린다는 것. 그러면 해결책도 단순해진다. 나쁜 사람을 처벌하거나, 실수를 사과하거나, 시스템을 고치면 된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래도 갈등은 끝나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 갈등이 끝나지 않는 것은 세계가 원래 갈등을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다. 세계의 구조다.
이 구조를 나는 3대 공리라고 부른다.
✦ ✦ ✦
공리 1 : 당신이 자리에 앉으면, 누군가는 서야 한다
지하철 9호선 급행을 탄다고 생각해보자. 빈자리 하나가 보인다. 당신이 앉는다. 그 순간, 뒤에서 막 들어온 사람은 서야 한다.
당신이 나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자리가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공리 1이다. 치환과 배제의 공리.
모든 존재는 공간을 차지한다. 물리적 공간만이 아니다. 관계의 공간, 관심의 공간, 의미의 공간. 당신이 누군가의 삶에 들어오는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무언가는 밀려난다. 이것은 당신의 의도와 무관하다. 당신이 사랑하는 방식이 상대방의 어떤 자유를 자동으로 재배치한다.
직장에서 승진하면 누군가는 밀린다. 연인이 생기면 혼자만의 시간이 재편된다. 새 친구가 들어오면 오래된 관계의 밀도가 희석된다.
우리는 이것을 대부분 모른다. 내가 자리를 차지했다는 사실에 집중하고, 그로 인해 밀려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시야 밖으로 떨어진다.
그래서 당신은 가해자인가? 그것은 아직 이른 질문이다. 먼저 이것만 이해하면 된다.
존재한다는 것은 원래 다른 존재를 재편한다는 것.
✦ ✦ ✦
공리 2 : 나의 억울함과 당신의 억울함은 같은 단위로 측정되지 않는다
두 사람이 싸운다. 한 사람은 "나는 10만큼 상처받았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은 "나는 8만큼 상처줬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머지 2는 어디 갔는가?
어디도 가지 않았다. 처음부터 같은 단위가 아니었다.
이것이 공리 2다. 의미론적 통약 불가능성의 공리.
같은 사건을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언어로 경험한다. 내가 농담으로 던진 말이 상대에게는 가슴에 박히는 말이 된다. 내가 "배려"라고 생각한 행동이 상대에게는 "침범"으로 번역된다. 상대가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이 나에게는 "통제"로 읽힌다.
이것은 어느 쪽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다. 두 사람의 세계가 애초에 다른 문법으로 쓰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더 억울하다" 싸움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시작부터 불가능한 비교이기 때문이다. 10킬로미터와 10킬로그램을 비교하는 것처럼. 단위가 다른 수는 크고 작음을 따질 수 없다.
젠더 갈등이 그렇다. 세대 갈등이 그렇다. 연인 사이의 갈등이 그렇다. 각자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고통을 말하는데, 그 언어들 사이에는 완전한 번역이 불가능하다.
해결책은 상대를 내 언어로 번역하려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것이 억울함의 싸움에서 벗어나는 첫 걸음이다.
✦ ✦ ✦
공리 3 : 피해자인 당신이 동시에 가해자인 이유
공리 1과 2를 받아들이면, 공리 3은 사실 이미 결론이 나 있다.
모든 존재는 다른 존재를 재편한다 (공리 1). 그 재편은 각자의 언어로 다르게 경험된다 (공리 2). 따라서 내가 경험하는 나의 피해와, 상대가 경험하는 나로 인한 피해는 동시에 실재한다.
이것이 공리 3이다. 이중 구속의 공리.
모든 인간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다. 예외 없이.
이것을 처음 들으면 반발이 온다. "나는 일방적으로 당한 것인데, 내가 가해자라는 것은 가해자를 편드는 말이 아닌가." 아니다. 정반대다.
공리 3은 가해자를 면죄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순수한 피해자의 자리는 강력하다. 도덕적 면허증을 제공하고, 반격의 정당성을 준다. 그러나 그 자리는 동시에 감옥이다. 영원히 누군가의 행동에 의해 정의되는 자리. 상대가 인정해줘야만 억울함이 풀리는 자리. 상대가 사라져야만 내 세계가 복구되는 자리.
자신의 가해성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은 그 감옥 밖으로 나온 사람이다. 그 사람은 더 이상 상대의 인정을 기다리지 않는다.
1화에서의 선장이 그랬다. 그는 자신이 구해준 여인이 도망갔을 때 그녀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의 서사 안에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하나다. 그는 자신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가해자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 ✦ ✦
그렇다면 무엇이 바뀌는가
3대 공리를 받아들이면 두 가지를 잃는다.
완벽한 피해자라는 자리. 그리고 완벽한 가해자를 향한 분노의 궁극적 정당성.
하나를 얻는다.
피해자 서사 없이 자기 자신으로 설 수 있는 힘.
이것은 위로가 아니다. 억울함을 지우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억울함을 연료로 만드는 작업이다. 영원히 해소되지 않는 억울함을 붙잡고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손에 쥐고 앞으로 걷는 것.
선장은 칼을 맞았다. 그 상처는 실재했다. 그러나 그는 그 상처를 세어가며 멈추지 않았다. 가슴의 피를 발자국으로 남기며 배에 올랐다.
✦ ✦ ✦
다음 화를 읽기 전에
오늘의 3대 공리를 자신의 어떤 갈등에 대입해보라.
공리 1: 내가 이 관계에서 차지한 자리는 무엇인가. 내가 들어오면서 재편된 것은 무엇인가.
공리 2: 나의 언어와 상대의 언어 중 내가 번역하기를 포기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공리 3: 이 갈등에서 내가 가해자이기도 한 부분은 어디인가.
세 번째 질문이 가장 불편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 ✦ ✦
다음 화 예고
4화 --- 구원자는 오지 않는다
세계가 이렇게 짜여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제 질문이 하나 남는다.
그렇다면 누가 나를 구해주는가.
종교의 제단을 두드렸다. 철학의 서재를 뒤졌다. 상담사의 방을 찾았다. 그럼에도 진흙탕은 사라지지 않았다.
가장 서늘하고도 해방적인 진실. 구원자는 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왜 오히려 자유의 출발점인가.
� 이 연재의 내용을 더 깊이 탐구하고 싶다면 → 에세이집 《유희적 투쟁: 이중성의 존재론》 (출간 예정)
#유희적투쟁 #이중성의존재론 #3대공리 #이중성불감증 #철학에세이 #피해자서사 #브런치연재 #김경하
김경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