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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승희 Jan 25. 2019

부끄러운 구의원 후보는 그만해야겠다

월간퇴사 후 2년, 아직 잘 살고 있습니다 (9) 선거 최종 정리

Photo by rawpixel.com from Pexels


선거 종료 후 반년, 이제 보다 객관적으로 출마를 평가할 수 있다. 분명 처음엔 좋아서 한 일인데, 나중엔 왜 이리 힘들었을까. 그 후유증은 왜 이리 길었을까. 분명 선거 출마는 퇴사 후 원칙 '내가 하고 싶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에 적합한 일이다.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은 가치 있는 생각을 표현하는 일. 추상적인 말이지만, 퇴사 후 벌인 일과 출마 모두 이런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표현에 지지받는 양상이 매우 다르다. 


관심받기 vs 권리 대리받기 


시민으로서 다른 시민의 공적 활동에 관심 갖는 것과 자신의 법적 권리를 맡기는 일은 차원이 다르다. 그 무게가 얼마나 차이 나는지 당시 세세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출마를 확정한 후부터 내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처럼 겁먹지 않고 도전할 수 있었다. 월간퇴사를 만들고 겨털살롱을 준비할 때 받은 관심처럼, 출마 후 사람들이 보내준 지지 반응 역시 같은 무게감으로 인식했다. 그렇기에 '어떻게 선거에 출마하느냐, 대단하다'는 사람들의 반응이 낯설었다. 당시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므로. 


선거가 진행되면서 무게감의 차이를 느꼈다. 왜 차이가 나는지 논리적으로 정리하진 못했지만 직관적으로 알았다. 시간이 갈수록 이 마음은 무거운 과제로 이어졌다. 이 지지를 어떻게 보답해야 하는가. 선거 당시에는 선거뽕으로 어떻게든 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선거뽕도 빠지고 한 바탕 막장까지 내려가다 멈춘 지금은 다른 단어를 찾았다.

 원칙


권리를 대리받으려는 자는 원칙을 기준으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원칙과 대안으로 당신의 권리를 나에게 위임해달라고 설득해야 한다. 다른 대안을 가진 자와 협상해야 한다. 나에게 원칙이 있었나? 그동안 구의원 선거에서 정당과 지역 토호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기에 그대로 따라 해서는 안 된다, 내가 속한 요즘 젊은것들에게 더 많은 자율성과 공간, 권한이 필요하다는 원칙은 존재했다. 그 외에는 좋은 말로 '유연'하게 만들었을 뿐, 텅 비어있었다. 차라리 청년을 대변하려는 비례 의원 후보로서의 원칙이 아주 조금 있었다는 게 맞는 평가 같다. 준비된 무소속 구의원 후보로서의 원칙은 없었다.


원칙이 없다 보니 깊이감도 없었다. 세부 공약을 정하는 과정에선 그전에 내가 관심 있는 부분을 공약으로 발전시켰다. 깊이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선거 기간 중 세부 공약을 다듬어서 sns에 올렸던 기억이 난다. 그 공약에 동의했으나, 그 공약의 본질을 내 원칙으로 정하기 위해 토론할 시간은 없었다. 이래선 안 된다. 


세부사항을 떠나, 나의 출마 자체만 보자면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다른 선거, 다른 후보를 원하던 금천구 시흥 1, 4동 유권자들에게 나는 대안이었다. 진보 정당 구의원 후보도 없고, 청년 구의원 후보도 없고(40대 후반이 한 명이지, 나머지는 다 50, 60, 70...), 여성 구의원 후보도 없고, 있는 거라고 선거 공해-문자 대량 발송&스피커 녹음 방송 틀기 등등- 뿐이던 선거구. 나는 기존과 다른 후보였다. 동시에 다름 이상의 대안을 보여줄 원칙은 아직 여물지 못한 후보였다. 


선거 종료 후 자책감, 부끄러움이 한동안 나를 좀먹었다. 왜 그렇게 부끄러웠을까. 이 글에 적힌 내용을 풀어내면서 답을 찾았다. 원칙 몇 개만 들고 선거에 나가,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굴었기 때문이다. 부끄럽다. 지금 역시. 그러나 시간을 돌릴 순 없다.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원칙을 세울 시간은 없고, 내 통장은 원체부터 얇았다. 출마는 나에게 사건이었기에.


이제 선거 출마가 나에게 미친 영향을 이 글을 마지막으로 정리하려고 한다. 권리, 위임, 출마, 원칙 - 사건으로 발생한 그 일, 삶으로 받아들이자. 시간을 돌릴 순 없고, 없었던 일로 칠 수도 없다. 앞으로 내 삶에서 계속 이어갈 뿐이다. 직업 정치인이나 정당 활동가가 되기 위해, 하지 않던 일을 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당장 내 삶에 깃들원칙- 스스로를 포함한 요즘 젊은것들을 위한 이상향에 불과하지만-을 잘 세우고, 더 넓게 세우고, 원칙을 현실화시킬 대안을 찾고, 그 대안을 내 삶에 받아들인다면 그게 바로 정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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