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곽승희 Jan 11. 2019

"유치원은 시작, '당사자 운동'이 미래 바꿀 것"

(15) 서울시NPO지원센터 입주 단체 인터뷰①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대표

* 서울시NPO지원센터 2층에는 NPO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울 수 있는 기관들이 모인 협업공간 '엮다'가 있습니다. 2018년 '엮다'에 입주해 NPO 생태계의 활력을 불어넣는 개인/단체들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는 <정치하는 엄마들>입니다.

 <정치하는 엄마들>의 장하나 공동대표는 '당사자 운동이 향후 시민운동의 새로운 동인으로, 당사자 운동 단체가 정당의 역할까지 대체'하리라 기대했다. 지난 10월부터 시작된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 사건의 주역, 당사자 운동에 나선 '정치하는 엄마들'의 파괴력에 비추면 근거 없는 기대는 아니다.


이들은 '엄마 당사자'로서 절실한 문제를 선택해 공론화했고, 이제 대안을 만드는 과정까지 적극 참여 중이다. 작년(2017) 6월부터 비리 유치원 명단 정보공개청구와 행정소송을 진행하며 정부와 줄다리기에 나섰고, 1년 만에 명단 일부를 입수해 국회의원, 언론과 협업 과정을 통해 공개했다. 11월 현재 거대 이익집단 한유총(한국유치원총연합) 비호 의원 명단을 공개하며 '유치원 마피아 종결 3법'의 빠른 국회 처리를 요구한다.

아이를 기르면서 동시에 정치를 긍정하는 시민들. <정치하는 엄마들> 회원들의 정체성이다. 지난해 4월 첫 모임을 제안한 장하나 당시 환경운동연합 활동가(전 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와 함께 한국 사회의 '엄마 인권'에 할 말 많은, 정치적으로 풀어보려는 엄마들이 모였다. 1년간 꾸준한 활동을 통해 회원은 400여 명으로 늘었다.

▲ 장하나 정치하는 엄마들 공동대표 11월 7일 서울시NPO지원센터 협업 공간에서 인터뷰에 나선 장하나 공동대표. ⓒ 서울시NPO지원센터

이들은 '나도 활동가 워크샵'을 통해 문제 해결의 시작점을 당사자의 경험에서 찾는 일의 중요성을 공유했고, 페미니즘과 장애인권, 민주주의 등 다양한 이슈를 공부했다. 또한, 평등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 누구나 운영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의사결정 과정을 오픈했다. 


운영위는 대표 대신 일반 회원의 기자회견 발언을 권유하고, 대외 활동에 적극적인 회원에게는 명함을 만들어준다. 활동가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나이와 직업 등 위계구조에서 자유롭게 말하는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 호칭도 '언니'로 통일했다. 장하나 공동대표는 '변화를 만드는 감동은 전문성 대신 자발성과 당사자성에 있다'며, '겪어 본 이가 세상을 바꾼다'라고 말했다.

지난 한 달 사이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 활동'에 감동한 신입 회원이 천 명이나 급증한 '정치하는 엄마들'. 새로운 회원 덕에 웃음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고민이 많다는 장하나 대표를 11월 7일 서울시NPO지원센터 협업 공간에서 만났다. '터가 좋다'는 사무실에는 유급 상근 활동가 두 명의 짐이 놓여 있었다. 테이블 모두 늘어난 당사자 회원의 회비 덕분이다. 

▲ 정치하는 엄마들의 상근 활동 공간 11월 7일 "엮다" 정치하는 엄마들 책상 앞에선 유급 상근 활동가 강미정(좌), 장하나. ⓒ 서울시NPO지원센터

- 정치하는 엄마들은 최근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 사건의 주역으로 많은 주목을 받으셨습니다. 어떤 분들이 당사자로서 직접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궁금해요.



"다양한 엄마들이 모였어요. 당사자 운동을 하려는 분과 단순 응원하시는 분,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도 정당원도 있어요. 시민운동 경험이 있는 사람도 아닌 사람도, 학생운동 경험이 있는 분도 없는 분도 많아요. 공통점은 정치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을 가졌다는 거예요.  

정치를 혐오하는 사람이 대다수인 한국 사회에서 정치를 무시하지 않는, 그중 아이 엄마들은 정말 소수죠. 서로 연결되는 것 자체로 힐링이었어요. '나는 혼자가 아니었어!' 이런 마음(웃음). 
                       

▲ "혼자가 아니었어!" "정치"를 긍정하는 "엄마"들이 만난 모임의 창립총회(2017.6) ⓒ 정치하는 엄마들

세월호도 우리의 공통분모 같아요. 네이버 카페에 회원들이 남긴 가입 이유를 보면 세월호 얘기가 중복되어 나와요. 세월호 참사 전후로 임신하고 출산하고 아이를 기르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트라우마와 책임감이 생긴 것 같아요. 지금까진 혼자 고군분투하며 살아왔고 참여 방법도 몰랐지만, 이제 가만있으면 안 된다는 엄마들이 생겨난 거죠. 일부 회원 중엔 '엄마'의 친정 엄마, 아빠도 계셔요. 딸의 독박 육아와 경력 단절 그리고 당신의 황혼육아에 분노하신 분들이죠.


한 달 전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 이후 회원이 천 명 가까이 늘었어요 회원 400명 시대에서 1200여 명 시대는 매우 다를 텐데, 머리가 아파요(웃음)."


- 센터 내 협업 공간 입주는 '정치하는 엄마들'에게 어떤 도움이 됐나요? 


"터가 좋습니다(웃음), 입주 후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가 이슈화되면서 저희가 엄청난 관심을 받았잖아요(웃음). 입주 전까지 커피숍이나 마이크임팩트 같은 공간을 대여해서 회의를 진행했어요. 행사를 열 때는 저렴하면서 전철이 가까운 공간을 찾았죠. 그래야 유모차에 아이 태우고 다니기 수월하거든요. 이제 집처럼 편한 곳이 생겨서 절대적인 안정감이 있어요. 커피숍을 전전하지 않아서 너무 좋아요. 게다가 기자회견이 많이 열리는 광화문 옆이고, 전철 바로 앞이니 유모차 밀고 다니기도 편하죠. 상근 활동가들이 나와서 일할 공간이 생겨서도 좋고요.

회원들도 맘에 들어 해요. 회의실(2층 협업공간 내, 1층 개방공간)을 사용하는 것도 저희에겐 엄청난 일이에요. 4-5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면서 상업 공간을 이용하는 마음과 우리 활동의 공공성을 인정받아 지원 공간을 쓰는 마음은 완전히 다르죠. '정치하는 엄마들'은 후자의 일이 낯선, 처음인 사람들이 많은 단체예요."
                     

▲ "나도 활동가 워크숍 모임 서울시NPO지원센터 2층 회의실에서 진행 중인 "나도 활동가 워크샵" 현장ⓒ 정치하는 엄마들

 - 센터 내 다른 입주 단체와 '정치하는 엄마들'의 성격은 큰 틀에서 다른 것 같습니다. 전자의 경우, 기존 비영리 생태계에 적용 가능한 새로운 조직 운영 방법이나 소통 방식, 혁신적인 활동 방법을 연구합니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비영리 생태계와의 만남이 처음이거나 낯선 '엄마' 한 사람, 한 사람에 더 주목하는 것 같아요.



"정치하는 엄마들이 짧은 시간동안 건강한 단체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공익활동과 사회운동이 낯선 30~40대에 맞는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하고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에요. 우리야말로 정말 새로운 조직이죠. 

'엄마'라는 존재가 관심가져야 한다고 요구받는 사안은 사회 여러 분야에 걸쳐있어요. 하지만 '엄마'의 사회적 영향력은 미미하고, 사회적 존재감은 작아요. 한국사회에서 '엄마'는 사회적 소수자예요. '엄마'를 '남성', '여성', '청년'과 비교하면, 어때요? 레깅스를 신고, 벙벙한 티를 입은 채 유모차를 미는 사람을 보고 '오, 너무 값진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 이렇게 느끼나요? 돌봄 노동 때문에 행색을 꾸밀 수 없는 엄마는 늘 혐오스럽다는 시선을 받고 살아요.

사회적 소수자 '엄마'
평가절하된 '엄마 노동'
바닥에 떨어진 '엄마 인권'
...
'엄마 당사자'가 해야할 일이
 정말 많아요


제가 엄마가 돼보니까 '엄마 노동'은 엄청나게 가치 있는 일이었어요. 매일 반복되는 생활처럼 보였던 일로 모든 가족 구성원의 삶이 지속되죠. 제일 가까이에 있는 엄마의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거예요.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려면 '엄마임'을 부정하고, 숨겨야 해요. 정치는 더 그렇죠. 애를 낳고 키우지만, 일하는데 영향받지 않는 모습을 보여야 칭찬받아요. 엄마 정체성을 가진 정치인도 없죠. 엄마의 인권은 바닥에 떨어져 있고, 엄마 당사자로서 할 수 있는 정치 영역이 너무나 넓어요.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 정보공개 요구, 행정 소송도 그중 하나였죠."


- 정치하는 엄마들의 올 하반기 사업 중 하나는 <나도 활동가 워크샵>인데요, 어떤 내용으로 이뤄졌나요? 워크샵을 통해 '정치와 운동의 주체를 엘리트에서 당사자로 이행하는데 기여(입주 신청서 내용 중)'할 것이란 기대는 충족됐나요?


"입주 직후인 9월에 '나도 활동가' 워크숍 1차(총 8회)가 마무리됐고, 그동안 울산과 부천, 부산 등에서 지역 모임을 열었어요. 워크샵을 통해 시민운동이 낯선 엄마들에게, 정치는 뉴스에서 다루는 게 전부라고 여겼던 엄마들에게 당사자 운동을 소개해요. 기자회견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등 실무 방법도 구글 공동문서로 서로 공유하죠.

여기서 중요한 점은 외부강사 초대를 최소화한다는 거예요. '서로 배움'이란 키워드로 서로 말하고, 듣고, 그 과정에서 배우는 워크샵을 디자인했어요. 토요일에 모여서 한 주제로 두, 세 시간씩 얘기했죠. 내가 생각하는 장애인 인권, 페미니즘, 헌법, 민주주의 등이란 무엇인지 일단 털어놓는 거예요. 
 

누구나 말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서로 배움'의 시간


<나도 활동가 워크샵>  활동가란, 누구나 하고 싶으면 할 수 있어야 해요. 어느 누가 '당신은 활동가야'라고 인정해야만, 어느 단체의 상근 활동가로 채용돼야만 활동가가 아니에요. 즉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회원 모두가 활동가이고, 그 중에 대외 활동을 많이 하는 활동가에게 운영위원회는 흔쾌히 명함도 만들어 드립니다.  명함이 주는 정체성이 활동에 도움이 되니까요. 2차 워크숍은 12월부터 시작합니다."  


- 당사자 운동의 시작이 '엄마'라는 특성을 가진 시민들에게부터 시작됐다는 점은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보시나요? 정치하는 엄마들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나요? 

"한국 사회의 정치와 정책, 법이 개판인 건 당사자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거기에 시민단체도 일조했다고 생각해요. 엘리트 정치의 한계와 문제점은 엘리트 운동에도 적용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제 당사자의 소리를 들려줘야죠. 세상은 엄마, 아줌마의 목소리를 우습게 여기지만 틀렸어요. 엄마들의 경험이 문제를 푸는 시작이에요. 

저희는 '수평적 조직 문화', '평등한 관계'를 강조해요. 초기 모임 제안자인 제가 이런 부분에 문제의식이 컸어요.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정당 조직 운영 방식의 비민주성을 많이 느꼈거든요. 이런 부분은 시민단체, 특히 크고 오래된 단체일수록 자주 관찰하는 바예요. 
                     

"정당, 비영리 시민 단체의 비민주적인, 권위적인 조직 운영에 실망한 경험이 많아요. 정치하는 엄마들은 "평등함"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요." ⓒ 서울시NPO지원센터

저희는 서로를 언니라고 불러요. 모두에 대한 모두의 언니죠. 나이가 같아도 언니, 동료 회원의 남편에게도 언니, 회원의 엄마 아빠 회원에게도, 직업이 뭐든 상관없이 그냥 '언니'라고 불러요. 성별, 나이, 직업, 취업 유무에 따른 사회적 위계를 깨야 해요. 그래야 스스로의 목소리에 자신감을 갖고 말할 수 있어요. 그것이 당사자 운동이고 당사자 정치의 시작이죠.


조직 구성 면에선 '운영위원회'에 어떤 회원도 참여하고, 발언할 수 있도록 진행해요. 열린 운영위인 거죠. 적어도 참여 채널을 찾지 못해서 말하지 못하는 일은 없도록 하려고요."


- '정치하는엄마들'을 통한 '당사자 운동'은 센터와 NPO 생태계, 사회와 어떤 영향을 주고 받으리라 기대하시나요?   


"운동도 정치도 핵심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죠. 변화는 감동에서, 감동은 전문성이 아니라 당사자성에서 우선된다고 생각해요. 이제 1년 차인 '정치하는 엄마들'을 통해 엄마들 스스로가 자신이 변한 걸 깨닫고 여기서 헤어나오질 못해요. 

'난 후추 알보다 작은 존재 같았는데, 내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소리가 되네!' 이런 경험을 하는 거죠. 회원 중 한 분은 처음으로 기자회견에 가서, 처음으로 마이크를 들고 발언을 하며 자유를 느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분이 결국 유급 상근 활동가가 되셨습니다(웃음). 
 

운동의 핵심은 감동,
감동은 당사자성에서
 더 크게 와요. 

정치하는 엄마들은 회원들의 자발성에 붙을 붙이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해요. 그러다 보니 저희의 노동은 조각보와 닮았어요. 아이를 돌보는 엄마들이 시간 될 때마다 이어서 하다 보니 조각조각 이어져 있어요. 쓸모없는 천 조각들을 이어 붙여 소박하고, 아름답고, 쓸모있는 조각보가 나오듯이, 서로 이어 붙이는 과정을 통해 자투리 천에 불과했던 사람들이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게 되는 거죠. 내가 조각보의 일부가 되는 겁니다. 단체의 활동이 나의 가치를 변화시키죠. 그래서 단순한 후원으로 끝나지 않고, 주변의 다른 엄마들, 가족, 아이에게도 서서히 영향을 미치게 될 거예요. 

저희는 지금 정치 활동을 한다고 생각해요. 기존 정치인들은 선거 시즌에 여러 준비를 하면서 정치인이 되죠. 하지만 저희는 '평소에 이런 활동들을 하고, 이런 우리가 당선되면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고 알리고 있어요. 일단 우리부터 당사자 운동을 시작했지만, 영페미니스트 그룹 등 다른 당사자들과도 연대하고 싶어요. 당사자 운동 단체가 정당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정치하는 엄마들은
일사분란하지 않지만 
자발성과 당사자성으로
단단히 엮여있죠


미래의 운동은 당사자 운동이 되면 좋겠어요. 20대 국회의원의 평균연령은 55.5세, 남성 비율은 83%, 평균 재산은 41억 원대예요. 유모차를 끌며 전철을 오르내리고, 몰카 구멍 뚫린 공중 화장실을 가야 하는 문제에 대해서, 이들이 얼마나 알까요. 겪어 본 사람이 세상을 바꿔요. 문제를 아는 사람만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2. "당신 조직에는 퇴사 고민을 나누는 시스템이 있나요?" - 이은주 와이즈 서클 대표

3. "'공무원 마인드'에서 벗어나는 역할, 공간이 하더라고요" - 박지환 오픈거브랩 대표

4. 회사 밖에서 보면 반가운데, 왜 회사에서는... - 정원희 현장in연구소 대표/지식노동자

5."대화 늘리는데 직원들은 줄퇴사, 왜 이럴까요?" - 김홍석 조율컬렉티브


6. 혁신교육의 핵심 주체로 성장한 중랑의 학부모들 - 중랑행복교육 (지원 사업 이후 근황 공유)

7.한 달 주기 '회고', 인생의 성장을 돕습니다 - 발코니 (2017활력신공 참여자 후속 모임)


* 서울시NPO지원센터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당신 조직에는 퇴사 고민을 나누는 시스템이 있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