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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승희 May 21. 2017

성형, 수술, 성공, 후회

부제: 성형 수술이 내 삶에 미친 영향 (1)

성형에 ‘성공’한 사람은 ‘행복’할까? 

나는 아니었다.


과거 내 쌍꺼풀 수술(절개, 안검하수, 앞&뒤트임 수술을 받았는데, 이 글에선 쌍꺼풀 수술로 통칭한다) 담당 의사는 흡족해했다. 수술 결과를 설명하던 자리에서 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매우 성공적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물론 잘려나간 양 쪽 눈두덩이 살의 의견은 다를 것이다. "안녕, 그리운 친구들. 너희의 나머지 친구들은 재수술이나 부작용 없이 잘 살아 있단다." 압구정 어느 성형외과 쓰레기통에 버려진 그들의 명복을 빈다.


당시 내가 쌍꺼풀 수술을 받겠다고 선택한 이유는 너무나 일차원적이었다. 물론 취업의 압박과 직업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기도 했다. 덕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과거 왜 이 수술을 거부했는지를 떠올리지 않았다. 20대의 나는 19살의 나보다 개념이 없었다.


쌍꺼풀이 생긴 눈은 사진이나 영상을 찍을 때 좋았다. 그 외에는? 모르겠다. 나쁜 일은? 많았다. 성형은 내 ‘원래 모습’이 열등하다는 걸, 남도 아닌 나 자신이 인정하는 일이었다.  열등, 보통의 수준이나 등급보다 낮음이란 뜻이다. '열등'이란 단어를 인간에게 쓰니 비윤리적이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외모, 특히 여성의 외모를 평가해서 월등히 아름다운지, 보통보다 못생겼는지 판정을 내리는 게 우리 사회의 일상이다. 


수술 전까지의 나는 외모의 수준이나 등급을 따지는 세상에 비판적인 사람이었다. 외향보다 본질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이미 의료용 쓰레기봉투에 담긴 내 살을 찾을 수도, 다시 붙일 수도 없다. 거기에 들인 돈도... 그리고 가끔은 내 얼굴이 예뻐 보였다. 만족스러웠다. 다음 날에는 어제의 자아도취가 부끄러웠다.  


쌍꺼풀이 생긴 지 8, 9년이 흘렀다(정확한 연도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를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내 뇌가 자동 처리했나 보다). 그동안 이뤄진 과거 부정과 자아 분열, 바뀐 외모에 맞는 역할 놀이의 과정 그리고 그 시기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 객관적으로 나를 관찰하며 얻은 여러 생각을 정리할 때가 됐다.


생각 정리에 도움을 받고 싶어서 ‘성형 수술’이란 키워드로 책을 찾았다. 건질 만한 건 적었다. 지금 붙잡고 있는 책은 <비너스의 유혹-성형수술의 역사 Venus Envy: A History of Cosmetic Surgery(엘리자베스 하이켄 저, 권복규 정진영 옮)>이다. 미국 상황인 데다 다소 딱딱한 편이라 진도 나가기가 쉽지 않다.


‘성형 수술 성공 후회’라는 키워드로 구글링 했지만 내가 원하는 글은 없었다. 성형 부작용이나 재수술로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성형에 성공했지만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행복과 안정을 되찾았는지 과정을 듣고 싶었다.


일단 내가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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