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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승희 May 23. 2017

달콤한 수치심

부제: 성형 수술이 내 삶에 미친 영향 (2)

1편 보기: 성형, 수술, 성공, 후회




19살, 입학할 대학이 결정된 고3 곽승희는 엄마의 쌍꺼풀 수술 권유를 거부한다. 엄마는 아기 때 있던 쌍꺼풀이 크면서 사라졌다며, 수술만 하면 훨씬 이쁠 거라고 나를 꼬드겼다.     


나는 상처받는다. 자식을 존재 자체로 존중해야 하는 엄마가, 자식을 못생긴, 열등한 존재로 판단했다(지금은 한국 사회에서 딸의 엄마로 살아간다는 어려움을 이해한다). 어떻게 그럴 수가...     


상처와 별개로 나는 거부한다. 그리고 자부심을 느낀다. 남이 말하는 ‘좋은 것, 예쁜 것’에 현혹되지 않았다. 내 필요와 욕망에 의거해 내린 결정이다. 당당히 외쳤다.     


“왜 남들이 한다고 저도 해야 하는 거죠? 제 꿈이 연예인이라면 생각해보겠지만, 전 그러고 싶지 않아요!”   

     



시간이 조금 흘러 20대 초반, 대학생 곽승희는 고민 중이다. 대학교 친구들에게 내가 쌍꺼풀이 생긴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할지... 모르겠다.      


쌍꺼풀 수술을 받은 지 1달 반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그 사이 학원에 다니느라 바깥출입도 했고, 중고등학교 절친들에겐 사실도 알렸다. 부기는 빠르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아직 눈두덩이 살이 자신을 강제로 접은데 유감을 표하며 빨갛게 화내고 있다. 덕분에 화장으로 입을 막지 않으면 외출이 불가능했다.    

  

화장 말고도 할 일이 쌓였다. 학생증, 주민등록증 사진도 다시 찍어야 한다. 신분증 위조로 오해받을까 걱정이 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고3 때 수술받는 건데...’     




어리고, 어렸던 과거의 나를 기억한다. 쌍꺼풀 있는 곽승희로 대학에 등교한 첫 날도 기억한다. 3학년 2학기인가 싶다.


집을 나서기 전 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눈 화장을 했다. 어두운 황토색 아이 쉐도우를 좁아진 눈두덩이 위에 발랐다. 볼 때마다 신기한 쌍꺼풀 살 위, 눈 앞 쪽부터 눈꼬리까지 검은색 붓으로 얇게 줄을 그었다. 역시 볼 때마다 신기한 긴 속눈썹(아마 눈두덩이 살 안쪽 속눈썹이 밖으로 드러나 길어진 것처럼 보였던 것 같다)을 뷰러로 집어 올리고 마스카라를 칠했다.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너무 예뻐...      


화장 덕에 자연스러워 보였다. 만족스러웠다. 눈두덩이 살을 잘랐을 뿐인데 이렇게 예쁘다니. 하지만 환상은 오래 가지 않았다.


첫 수업에서 입학 후 꽤 친하게 지낸 동기를 만났다. 내가 먼저 아는 척 할 수 없었다. 갑자기 식은 땀이 났다. 화장이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을 까봐 겁이 덜컥 났다. 


“안녕!”

“누구...?”     


나 승희인데... 아, 이거? 여름 방학 때 쌍꺼풀 수술을 받아서 아직 부기가 다 안 빠졌네? 이런 대화를 나눠야 할까봐 무서웠다. 하지만 결국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다(교수의 출석 호명 때문에 인사를 나누게 된 것으로 기억한다).


수업 후 건물을 나와 운동장을 지나쳐 학교 밖으로 향했다. 운동장 바닥의 황토색 흙이 매우 반짝반짝, 눈부셨다. 그 날의 운동장과 친구의 어색한 표정 그리고 내가 느낀 수치심과 부끄러움이 기억난다.     


*수치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 또는 그런 일.     


*부끄럽다

1. 일을 잘 못하거나 양심에 거리끼어 볼 낯이 없거나 매우 떳떳하지 못하다.

2. 스스러움을 느끼어 매우 수줍다.     


그는 부은 눈을 지적하거나, 놀리거나, 놀라지 않았다. 그저 오묘한 표정을 지었을 뿐이다(당시 어떤 생각이었는지 묻지 않았다. 그 후에도. 다른 글에서 자세히 나오겠지만 나는 수술 후 대학교 친구들 대부분과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다). 그 얼굴은 내가 자각하지 못하던 사실을 일깨웠다. 


1. 진짜 쌍꺼풀 수술을 했다.

2. 내 이중성을 깨달았다.


나는 세상의 잘못된 기준을 거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여자라면 –해야지, 이런 유형의 말을 혐오했다. 여자는 집안일을 해야 하고, 예뻐야 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여자는 미녀 아니면 추녀라고? 엿 먹으라 그래. 관습을 따르는 대신 개성과 주체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예뻐지고 싶다는 이유로 수술을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세상의 기준에 너를 맞추려 하니? 너는 그대로도 예쁜데.’ 이런 마음이었다.


나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20대의 내가 수술을 받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방송에서 말을 하는 직업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예뻐지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쌍꺼풀 수술은 직업을 위해 개인이 준비해야 하는, 토익 점수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뻐지고 싶어서 수술받는 사람과 취직하고 싶어서 수술받는 사람이 그렇게 다른가? 쌍꺼풀 있는 눈을 가지면 예뻐질 거란 믿음 때문에 수술을 받는 것과, 쌍꺼풀 있는 눈이 있어야 내가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이 정말 다른가? 다르지 않다. 전자든 후자든 세상이 원하는 외모 기준에 맞춰 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이중적이었다. 세상의 기준에 맞춰 몸을 바꿨다. 하지만 수술 후에도 중얼거린다. 난 이런 얼굴이 예쁘다고 생각 안 해. 물론 거울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아 예쁘다... 생각해보니 수술 이전에 스스로에게 예쁘다고 칭찬한 적 있었나? 없었던 것 같다. 왜 내 눈동자는 또렷하게 보이지 않을까, 검은색 동공은 왜 일부만 보일까 궁금한 적은 있었다. 지금은 너무 예뻐!


수술 부기가 완전히 사라지자 예쁘다는 말은 더 많이 들렸다. 예쁘다는 말은 초콜릿 같았다. 달고 맛있어서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기분이 좋다가도 이상했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닌데. 부당한 칭찬을 듣거나 도둑질을 한 것만 같았다. 나를 보고 예쁘다고 말한 사람이 내 성형 수술 사실을 알면 날 도둑 취급할 것 같았다.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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