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곽승희 Jan 01. 2018

민감인 선언

2018년 맞이 1일 1복기 (1)

민감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무던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취향대로 삶을 꾸린다면 세상에 어울리지 못할 것 같았다. 생각하고 공상하며 판타지와 sf를 보며 타인은 지옥이라는 사르트르에게 끌린 예민한 십 대에게 미래는 부적절해 보였다. 무소의 뿔처럼 거침없이 나아가는, 당당하고 멋있는, 똑 부러지는 커리어우먼이 이상형이었다.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기에.


20대 중반에는 영화 속 멋진 ‘남자 기자’처럼 되고 싶었다. 술 잘 마시고, 취재원들에게 능수능란한, 조직에 필수적인, 신념과 직업정신으로 투철한. 정론직필 언론인의 역할이란 얼마나 빛이 나던지. 그런데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다. 치명적이기까지 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부터 최순실 보도가 나기 몇 개월 전까지 이어진 참사와 잔인함과 현실을 지켜보고 기록하며, 혼자 우는 일이 잦았다. 


괴로운 옷을 벗었다. 어울릴 것 같은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착각이었다. 영리 기업 구성원이란 얼마나 낯선 옷이던지. 버틸 자신도, 버티고 싶은 마음도 없기에 좋은 자극만 가슴에 품고 옷을 벗었다. 벌거숭이가 됐다. 당장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일을 벌였다. 그사이 촛불집회는 촛불혁명으로 치달았다. 늦게 온 봄이었다. 인생에도, 사회에도. 


천둥벌거숭이처럼 하고 싶은 일만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며, 불편하고 불쾌한 건 잊지 않고 발화하며 기억하며 8개월을 지냈다. 나는 어릴 때처럼 민감해졌다. 까탈스러워졌다. 자기다움과 미니멀리즘, 명상, 비인간동물권, 복기 등의 말에 물들어갔다. 더 자주 의심하고 성찰했다. 민감이 생활이 됐다.


혼자 성취한 일은 아니다. 내 말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소중한 사람, 무조건 믿어주는 사람, 응원해주는 사람들 덕분이다. 이들 덕에 점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알게 된다. 이 사람들이 좋다. 이런 내가 좋다. 


2018년, 더욱더 민감한 사람이 될 것이다. 더더욱 까다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좀 더 용기를 내려한다.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사람들의 충고를 지지대 삼아, 자기성찰의 시간을 무기 삼아. 세상에 무슨 일이든 다 벌어질 수 있음을 기억하되, 더 민감해지고 더 떠들어야지. 더 시끄러워져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양복 벗고 헤엄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