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프_금천] 승희의 고민(1)
조기 축구회에 내가 낄 자리가 있을까? 조기 축구회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딸려오는 이미지가 있는데 거기에 나는 어울리지 않았다. 동네 아저씨들이 초등학교 운동장을 점령하여 신나게 뛰어노는 그림. 여자에다 청년인 내가 그 문화에 적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전혀.
20대 후반 공 차며 운동하고 싶은 맘은 컸지만 동네 조기 축구회는 언감생심, 먼 곳에서 열리는 여자 축구 동호회나 풋살 클럽을 찾아가기란 일요일 아침이 너무 무거웠다. 오랜만에 조기 축구회를 떠올린 이유는 구의원 출마와 당선에 생활체육회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무소속으로 구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5일 안(5월 19일~23일)에 최소 50명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지난 1월 6일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이하 ‘구출마’) 일요 2차 회의, 정치 소셜 벤처 폴리시브릿지 이현승 대표가 나눠준 자료의 일부 내용이다. 이밖에 다른 내용도 많았는데 무엇보다 5일이라는 글자에 시선이 꽂혔다.
5일, 가능할까?
가진 것이라곤 구의원 피선거권을 사용할 수 있는 자격(대한민국 국민, 만 25세 이상, 관할구 안 주민등록자, 각종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등)과 열심히 살아온 인생 그리고 내 삶과 동네를 바꾸려는 도전 정신뿐인, 사회적 자본은 거의 없다시피 한 사람이 5일 만에 자신의 신념과 정치 계획으로 최소 50명을 설득하여 개인 정보를 받아내는 것. 5일 안에 가능할까?
"무소속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관할선거구선거관리위원회가 후보자 등록신청 개시일 전 5일부터 검인하여 교부하는 추천장을 사용하여 선거권자의 추천을 받아야 함.
자치구 의원 후보자는 관할 선거구 내의 선거권자 50인 이상 100인 이하의 추천을 받아서 제출해야 함"
(폴리시브릿지의 전제 자료는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아니, 무엇보다 ‘왜’ 5일밖에 시간을 주지 않는 걸까? 추천 서명을 받기 위한 무소속 구의원 예비후보자에게 5일의 기한을 주자고 결정한 근거는 무엇일까? 금천구 선관위에 전화해서 물어보니 모른다고 한다. 국회의원들이 그렇게 법을 만들었다는 대답뿐.
근거의 합리성을 찾을 수 없다면 의심*하게 된다. 법 제정 당시 국회의 기득권 정치인 그룹은 자신들의 가두리 양식장 밖에서 자생하는 신인 정치인 or내부 불합리함에 양식장을 뛰쳐나간 개혁 정치인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
(*의심의 씨앗은 <한국 지방자치의 현실과 개혁과제: 지방 없는 지방자치를 넘어서(2014, 강원택 등)> 덕분에 자리 잡았다. 기초의회가 왜 권한과 존재감 없이 아무것도 못하는지를 역사적, 제도적으로 설명한 책이다.)
미션 임파서블을 클리어하는 탐 크루주급의 액션이 필요하다. Sns 광고, 동네 가게 찜해놓기, 구청 주관 동네 행사 참여, 뮤직비디오 제작 등등 5일 안에 동네 사람들의 서명을 받기 위한 ‘구출마’ 팀원들의 아이디어가 흘러나왔다. 생활 체육 참여도 한 방법이다.
그래, 그러고 보니 구의원이나 국회의원 홈페이지에는 그 동네 체육 모임에 가서 찍은 사진이 꼭 있더라. 선거철 기사에선 그런 모임에 일일이 가는 정치인의 모습이 나온다. 그중 특히 배드민턴은 세계 대회도 있고, 네트워크가 존재하기 때문에 매우 특별한 곳이라고 한다. 오, 배드민턴, 나도 매우 좋아하는 종목!
상상해봤다. 기존 정치인처럼 조기 배드민턴회에 나가서 명함 건네며 추천인 서명을, 나중에는 한 표를 부탁하는 내 모습... 아, 너무 어색하다. (... ㅇㅈ?ㅇ ㅇㅈ) 하지만 당장 서명과 표가 급한 사람에게 이런 금광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 같은 동네 주민도 그 자리에는 없을 것이다.
동네 모임 및 체육회 참여하지 못하는,
맘에 드는 조직을 찾지 못한,
아직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러 곳에 흩어져있을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럼 그들의 목소리는 어디서 들을까?... 조기 배드민턴회는 매우 조그마한 금광이 아니었을까? 지금까지 동네정치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국회의원의 찾아가는 주민 간담회나 의정 보고서 발표회 등 행사는 몇 번 들어봤지만, 구의원은...
형식을 고민하다 보니 내용까지 자연스레 그려진다. 조직화되지 않은 동네 주민들의 목소리를 ‘찾아’ 듣는 구의원 일도 하고 싶다. 조기 체육회가 먼 나라 얘기인 회사원들에겐 직장 근처 밥집에서 식사하며 얘기 듣는 자리, 도서관 근처에 천막 세워놓고 취준생들에게 차 대접하며 얘기 듣는 자리, 브런치 카페(엄마와 아기도 환영받는 바오스앤밥스 같은 가게?)나 공원에서 육아 가사노동자들의 이야기 듣는 자리 등... 일 벌이기 좋아하는 내 성향을 십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ㅎㅎ
내용을 실현하려면 일단 출마부터 해야 한다. 그러려면 일단 후보자 등록 신청 개시일(5월 24일) 전부터 5일 간(5월 19일~23일) 추천인 서명을 최소 50명에게 받아야 한다. 막막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봐야지. 어색하지만... 배드민턴도 고려해봐야겠다. 조직화되지 않은 목소리를 듣기 전에 조직화된 목소리부터 공략하는 게 우선일지도 모른다. 동시에 내가 만난 사람이 전부가 아님을 잊지 않고 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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