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브루타와 학습 피라미드 이론을 학교교육에 적용하기 곤란한 이유 검토
인간은 부모로부터 가정교육을 받기 시작하여 초·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선생님으로부터 교육과정에 따라 기본지식부터 상당한 수준의 전문지식까지 체계적인 수업을 받는다. 가정과 초·중·고에서 인성교육은 지식교육만큼이나 중요시된다. 대학에서는 초·중·고의 기본교육을 기반으로 전공영역을 깊이 있게 공부하며, 학습의 자기주도성과 창의성이 강조된다. 지식기반 사회와 함께 찾아온 학습의 시대에 성인들도 평생 동안 스스로 찾아 배워야 하는 사회교육의 대상이 된다.
이렇듯 ‘교육’이라는 용어는 적용 범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교육이라고 할 때 일반적으로 학교를 떠올리지만 학교교육은 시기적으로 가정교육과 사회교육의 중간에 위치하며, 그것들과 큰 차이가 있다. 학교교육 자체도 유아교육, 초등교육, 중등교육, 고등교육으로 구분되며, 보다 구체적으로 중등교육은 중학교 교육과 고등학교 교육으로, 고등교육은 대학 교육과 대학원 교육으로 또 구분된다. 영어 표현에서도 학교교육(schooling)은 K-12라 표시하여 유치원(kindergarten)에서부터 고3에 해당하는 12학년까지를 일컬으며, 고등교육에 해당하는 대학(university)이나 대학원(graduate school)과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다.
교육은 전문적인 활동으로서 교육받는 대상에 따라 교육목표, 학습내용, 그리고 교육방법이 달라져야 한다. 만약 가정에서 적용하기에 적당한 독서교육 이론이 아무리 유명하더라도 그 내용과 방법을 초·중등학교에서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대학원에서 적용하는 창의교육 방법이 아무리 유명한 학자가 주창한다 할지라도 기초·기본학력이 확보되지 않아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할 능력이 부족한 초·중등학생들에게 그대로 적용되어서도 안 된다.
그런데, 우리의 학교교육에 적용되고 있는 교육 관점이나 교육정책들 중에는 일반적인 교육과 학교교육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석학의 교육에 대한 발언이나 일부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낸 외국의 교육사례는 우리 교육현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 심지어 교육과 학교교육을 구분하지 않는 일반 사람들은 유명한 학자나 외국 사례에 비추어 우리의 학교교육이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학교교육 담당자들을 비판하는 경우도 많다. 그럴듯한 제목으로 포장된 새로운 교육 관점이나 정책들이 초·중·고 교실수업 현장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상당 기간 동안 혼란과 비효율, 나아가 학력저하 현상까지 초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보자.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학교교육을 비판할 때 떠올리는 사례다. 한 공영 방송, 그것도 교육 전문 채널에서 ‘학습하는 인간’이라는 특집을 통해 이스라엘 학생들이 토론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짝을 지어 열띤 질문과 토론을 하는 ‘하브루타’ 교육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이 토론교육이 전 세계에서 노벨상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게 만든 이스라엘의 학교교육 모습으로 받아들였다. 이를 보고 들었던 사람들이 질문과 토론이 없는 암기위주의 지식교육으로 대표되는 우리의 교육현장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방영된 화면은 이스라엘의 정규 초·중·고교의 모습이 아니었다. 수학이나 과학 등 일반과목은 배우지 않고 오직 토라(모세오경)와 탈무드만을 학습하는 유대교 종교학교인 예쉬바였다. 하브루타 장면이 나오는 장소는 도서관이 아닌 유대교 사원이나 예쉬바에 구비된 전용 토론실이었다. 하브루타로 대표되는 이러한 종교교육은 이스라엘의 노벨상 수상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 또한 이스라엘 교육에서 암기는 매우 중요한 학습방법이며, 하브루타 교육법은 토론에 앞서 꼼꼼하게 어휘를 확인하는 등 독해 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이스라엘 학교에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암기해야 할 내용은 암기하고, 선생님과 교과서 내용을 꼼꼼하게 분석하여 이해하는 과정을 중요시한다.
아울러, 하브루타 교육이 한국에 소개되면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학습 피라미드 이론은 혁신학교 교수-학습의 근거로 활용되기도 하고, 하브루타 토론 수업, 거꾸로 수업 등의 이론적 근거로 이용되기도 한다. 강의를 들으면 5%를 기억할 수 있고, 읽으면 10%만 기억할 수 있는 반면, 질문하면서 가르치면 90%를 기억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이것은 에드가 데일의 ‘경험의 원추’를 오용한 것으로 퍼센트의 근거가 없고, NTL 조차도 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학문적 권위를 의미하는 미국행동과학연구소로 번역되고 있는 NTL(National Training Laboratory)은 실제로는 성인들의 의사소통 훈련을 전문으로 하는 사교육 단체이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교육공학 저널인 Educational Technology에서는 2014년 11월-12월호 특집(The Mythical Retention Chart and the Corruption of Dale’s Cone of Experience: Special Issue of Educational Technology)으로 4명의 교수들이 근거 없는 이론인 학습 피라미드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들은 이 사이비 이론이 인터넷을 통해 무비판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21세기 인터넷 세상의 대표적인 문제라고 여기면서 학계나 현장에서 이를 적용할 경우 학생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교육은 가르칠 내용이나 배우는 사람의 특성에 따라 적절한 방법을 활용할 때 효과적이다. 또한 교육정책은 권위 있는 사람이 주장했다거나 특별한 성과를 보인 새로운 사례라고 해서 쉽게 도입해서는 안 된다. 학교현장은 급하게 혁신되기보다는 안정된 가운데 점진적으로 개선되는 편이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더 나을 것이다. 또한 학교교육은 가정교육이나 대학교육과는 달리 가르치는 주체인 교사와 배우는 입장인 학생 그리고 이들을 연결하는 주된 교재인 교과서를 3요소로 하여 기초·기본교육 확립에 제일의 목표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