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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호 Nov 20. 2017

4차 산업혁명의 위협 앞에서
흔들리는 학교교육

  10여 년 전에 광주 인근 고등학교에서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들 몇 분과 회식을 하면서 학생지도의 어려움에 대하여 토론할 기회를 가졌다. 공부하지 않으려는 학생들의 수가 이전에 비해 점차 많아지고, 학력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점을 걱정했다. 특히, 학부모들 조차 자녀가 공부하지 않는 것에 대해 걱정하거나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을 함께 우려했다.

  학생들은 배우기 위해 학교를 다니고, 선생님들은 가르치기 위해 학생들을 만난다. 선생님들이 가르치려고 해도 학생들이 배우지 않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부를 하려 해도 기초학력이 부족하여 이해할 수 없어서 결국 포기해 버리기 때문이라는 분석, 입학정원에 비해 대입 응시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공부를 못해도 대학에 갈 수 있으니 편하게 학교 다니려 한다는 분석 등을 들 수 있다. 필자는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공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언론의 영향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현재의 학교교육은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도가 신문과 방송에 자주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유발 하라리 같은 유명한 미래학자는 현재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의 90%는 성인이 되었을 때 전혀 쓸모없는 것이 될 확률이 크기 때문에 힘들게 공부하는 것보다 노는 것이 더 유익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 뉴스전문 채널에서 거의 매시간 방영되는 혁신 관련 공익광고는 4차 산업혁명을 잘 대비하자는 의도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이나 학교교육의 무용론을 내포하는 위험한 내용으로 시작한다. “현재 학교에 입학하는 초등학생들의 65%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은 전혀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될 것이다”라고 반복한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성인이 되었을 때 거의 쓸모없는 지식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 주장의 출처로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를 전 세계에 퍼뜨린 2016년 세계경제포럼(WEF: World Economic Forum)을 들고 있다. 보다 정확하게 따지면 그 말은 WEF에서 발간한 ‘미래의 일자리 보고서’(The Future of Jobs) 도입 부분(3쪽)에서 ‘한 유명한 통계치에 의하면(By one popular estimate)’으로 재인용한 것이다. 인용한 통계치 65%는 학문적인 연구 결과가 아니고 ‘Did you know?’라는 통계 영상물로 제시된 것을 재인용하여 근거가 미흡하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공부의 가치를 약화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주장의 근거가 이렇게 허술해도 되는 것일까? 이러한 주장을 확인 없이 재생산하는 언론에 대해 학교교육 담당자로서 매우 당황스럽고 아쉬움을 크게 느낀다.

  최근에 발견한 것인데 외국에서도 앞의 통계치 65%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 사례가 있었다. 영국의 BBC 라디오 방송은 65%의 근거를 여러 국가의 관련 학자들을 추적하여 찾고자 했으나 확인하지 못했고, 근거가 없는 통계치라는 결론을 내렸다. 올해 5월 28일 BBC 라디오

http://www.bbc.co.uk/programmes/p053ln9f

에서는 65%라는 통계치가 미국 듀크대 교수인 캐시 데이비슨(Cathy Davidson)의 2011년 저서 "Now You See It"에서 ‘한 통계치에 의하면(By one popular  estimate)’(18쪽)으로 최초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책의 출판과 동시에 뉴욕 타임스의 칼럼

https://opinionator.blogs.nytimes.com/2011/08/07/education-needs-a-digital-age-upgrade/


에 인용된 후 다른 여러 저서나 신문에서 계속 사용되고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그래서 BBC 진행자는 직접 데이비슨 교수와 통화를 하여 그 통계치의 근거에 대해 확인했다. 그런데, 그녀는 통계치를 직접 연구한 것이 아니고 미래학자 짐 캐롤(Jim Carole)의 2007년 저서(Ready, Set, Done)에서 호주 정부의 혁신위원회 관련 웹사이트 통계를 재인용한 것을 사용했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짐 캐롤에게 확인하고자 연락을 취했으나 실패했고, 호주의 관련 웹사이트 조차 폐쇄되어 확인할 수 없게 되자 2012년부터 통계치 65%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BBC 진행자는 호주 정부에 관련 웹사이트와 통계자료의 존재 여부를 확인했으나 역시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세계적으로 인용되는 65%는 근거가 없는 통계치이다. 한국에서 널리 인용되고 있는 세계경제포럼 보고서의 65%도 캐시 데이비슨 교수의 2011년 저서를 재인용한 것으로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BBC 진행자와 인터뷰한 학자들은 65%의 사례와 같이 불확실한 통계치를 근거로 하여 학교교육이 쓸모없다는 말을 자주 언급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즉,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이 미래의 직업생활과 전혀 관련이 없다는 말을 듣는다면 학생들은 학습의욕을 상실하고 무슨 공부를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할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한 평가전문가 데이지 크리스토돌루(Daisy Christodoulou) 박사의 말을 우리도 한번 새겨봐야 할 것 같다. “아이들이 미래에 담당할 직업의 종류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미래의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의 종류를 예측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 체계화된 지식이나 사실들을 가르치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된다. 비록 그들이 직업생활을 할 때 그 지식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될지라도 현재는 그것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4차 산업혁명은 사회 모든 분야에 광풍을 일으키고 있다. 너도 나도 그것에 관한 전문가이고, 그것에 따른 변화와 혁신을 주장한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은 그 많은 논의에도 불구하고 아직 명확한 개념 정의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 변화의 폭과 규모를 가늠조차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나 대응이 비판적 성찰 없이 이루어질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된다. 특히, 모든 학생들에게 불확실한 미래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기본 지식을 확보해 주어야 하고, 동시에 인성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해야 할 학교교육이 중심을 잡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전가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데이지 크리스토돌루 박사의 주장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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