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승스의 날?

종이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by 강석효

하루 종일 날씨가 찌푸려 있고, 저 멀리 산에는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를 희뿌연 안개가 가득 덮인 목요일 오후였다. 비가 올 듯 말 듯, 대지는 촉촉이 젖어 있었고 나뭇잎들은 흙냄새를 품으며 바람에 살랑거렸다. 이런 날이면 아동센터로 오는 아이들의 발걸음도 조금은 묵직해진다. 흙길을 밟으며 뛰어오면 신발 바닥에 흙탕물이 묻어나곤 하니까.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학교를 마치고 달려온 아이들의 손에는 색색의 종이로 만든 카네이션이 가득했다. 빨강, 노랑, 주황, 그리고 희미한 보라색까지… 아이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종이꽃들은 참으로 앙증맞고 예뻤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신이 난 얼굴로 종이꽃을 흔들던 아이는 2학년 지윤이었다. 지윤이는 한 손엔 빨간 카네이션 한 송이를, 다른 손엔 커다란 종이화분을 들고 있었다.


“목사님! 이거 봐요! 가빈이랑 같이 만들었어요!”

지윤이가 두 눈을 반짝이며 다가왔다. 그 옆에는 가빈이가 어색한 듯 살짝 미소를 지으며 함께 서 있었다. 지윤이가 들고 있는 종이화분엔 큰 글씨로 '승스의 날'이라고 적혀 있었다. 처음엔 잘못 본 줄 알았다. '스승의 날'이 아니라 '승스의 날'이라니.


“지윤아, 이게 뭐라고 쓴 거야?”

“승스의 날이요! 오늘이 승스의 날이잖아요!”


아이들의 눈은 해맑기만 했다. 저희들끼리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한참을 깔깔거리며 웃더니, 가빈이가 손가락으로 화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맞아요! 승스의 날! 선생님들 기쁜 날이잖아요.”

그제야 지윤이가 얼굴을 환히 밝히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학교 선생님들은 스승님이니까 그냥 스승의 날이고, 센터 선생님들은 저희랑 더 많이 놀아주고, 맛있는 것도 주고, 엄청 착하시니까 우리끼리 '승스'라고 불러요! 그래서 오늘은 승스의 날이에요!”

가빈이도 덧붙였다.


“맞아요! 승스 선생님들!”


아이들의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발상이 그날 센터를 환히 밝혔다. 그저 단어 하나 바꿨을 뿐인데,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센터 선생님들은 특별한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날 오후, 아동센터의 책상 위에는 아이들이 정성껏 만든 종이 카네이션이 가득 놓였다. 붉은 색깔이 유난히도 눈에 들어오는 꽃잎들. 종이로 만들어진 꽃이건만, 그 안에는 아이들의 작은 손끝에서 묻어난 정성과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다. 단순히 색종이를 오리고 접고 붙인 것이 아니라, 그 조그마한 손끝에서 정성스레 피어난 감사의 마음이었다.


아이들은 돌아가며 하나씩 자신이 만든 카네이션을 선생님들에게 건넸다. '승스의 날'을 맞이하여, 저희만의 방식으로 감사와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선생님, 고마워요!”, “선생님, 항상 행복하세요!” 익숙지 않은 말투였지만 그 안에는 진심이 묻어났다.


그날 오후, 센터의 공기는 평소보다 따뜻했다. 종이꽃에서 향기가 날 리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그날만큼은 꽃향기가 센터 안 가득 번지는 듯했다. 아이들의 정성, 순수한 마음이 곱게 접힌 꽃잎 하나하나에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른들이 만든 화려한 꽃다발보다도, 아이들의 조그만 손끝에서 피어난 종이 카네이션이 훨씬 더 빛나 보였던 그날, 우리는 알 수 있었다. 감사의 마음은 크기나 값어치가 아니라, 그 마음을 담은 정성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저녁이 되어 아이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고 난 뒤,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종이꽃들을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스승의 날'이라는 이름이 아닌, '승스의 날'이라는 그 아이들만의 특별한 표현이 어쩌면 더 진실되고 아름답다는 것을.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그렇게 작은 손끝에서 피어난 마음들로 채워진다면, 세상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화려하지 않아도, 값비싸지 않아도, 진심을 담은 마음 하나가 누군가를 웃게 하고, 그 하루를 밝게 만들어준다.


사실, 작은 것 하나에도 아름다운 의미를 더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더 기쁨으로 가득 찰까. 평범해 보이는 흙길 위에 피어난 작은 들꽃을 보며 미소 지을 수 있다면, 누군가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에 하루가 환해질 수 있다면, 삶은 그 자체로 한 송이 커다란 꽃다발이 될 것이다. 아이들이 정성껏 접어낸 종이꽃처럼, 우리의 하루도 작은 정성과 진심으로 채워나간다면, 세상은 어느새 향기로 가득할 것이다. 승스의 날처럼, 그렇게 사람의 마음이 서로를 환히 밝혀주는 날들이 쌓여간다면, 우리의 삶 또한 더 아름답게 피어날 것이다.

keyword
이전 03화봄소식을 전하는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