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저녁, 통영을 오가며 만난 신앙의 본
5월의 끝자락.
장미꽃이 담장을 넘고, 저녁 볕이 살결에 닿을 만큼 부드러웠다.
그런 나흘 동안, 매일 저녁 6시가 되면 우리 교회 마당엔 변함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어르신들이 먼저 와서 말없이 담임목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릎이 성치 않으신 분도 계시고,
하루 농사일을 마친 지 얼마 안 되었을 분도 계셨지만,
그 자리는 늘 조용했고, 단정했고, 평안했다.
마치 하루의 마지막 기도를 드리는 것처럼.
통영의 새생명교회에서 열리는
감리회 한려지방의 ‘웨슬리 회심 287주년 기념 성회’.
그곳으로 가는 길이 시작되는 마당이었다.
차에 올라 통영대교를 건넜다.
산양과 통영 사이 바다는 붉게 물들고,
배들은 저마다의 방향으로 조용히 흘렀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마치 찬송의 후렴처럼 익숙하고도 아름다웠다.
차 안에서는 권사님들의 찬양이 조용히 흘렀다.
오래된 찬송가,
젊은 날 눈물로 부르던 노래들.
누구는 따라 부르고, 누구는 눈을 감았다.
차 안은 어느덧 작은 예배당이 되었고,
그 길은 순례의 길이 되었다.
성회의 마지막 날,
예배당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굽은 허리, 느린 걸음.
서로를 부축하며 조용히 문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
그 굽은 등어리가 나직이 말을 건넸다.
“목사님, 우리라도 날마다 모이기에 힘쓰는 본을 보여야 되지 않겠습니까?”
목소리는 없었지만,
그보다 더 깊은 설교가 거기 있었다.
살아온 대로, 믿어온 대로,
말씀보다 앞선 삶의 고백이 담겨 있었다.
평소 설교는 내가 하고 있지만,
삶으로 설교하고 있던 이는
그 굽은 등을 가진 분들이었다.
신앙은 화려한 기획으로 자라지 않는다.
똑똑한 설명보다, 감동적인 영상보다
가장 깊은 믿음의 유산은
그저 '먼저 와 있는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날마다 예배를 사모하며,
자리를 지키는 조용한 이들의 뒷모습.
그 뒷모습이 이끄는 교회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 발걸음 뒤를 걷는 젊은이들이,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같은 길을 걷게 된다.
굽은 등이 전한 설교는
단지 한 사람의 고백이 아니라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믿음의 유산이었다.
삶은 결국,
굽은 등이 전하는 설교 한 편을 닮아가야 한다.
말로 다할 수 없는 믿음을
걸음으로 전하고,
예배당 문턱을 넘는 한 걸음에 담아내는 사람들.
그 뒷모습은
설교문보다 길고,
기도보다 깊다.
한 사람의 등이 전한 말이
오늘도 목회를 이끈다.
예배를 세운다.
그리고 교회를,
지금 이 자리까지 끌어온다.
이 나흘의 여정은 단지 성회 참석이 아니라
신앙의 본을 따라 걷는 순례였다.
굽은 등에서 들려온 설교를 마음에 새기며,
그 발자취를 따라 오늘도 예배의 길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