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학사 장교 임관식장에서
오월의 하늘은 참으로 맑고 고왔다.
햇살은 군복 위로 따스하게 내려앉았고, 바람은 푸르른 잔디를 쓸며 지나갔다.
공군 학사 장교 임관식이 열린 그날,
세상에서 가장 단정한 젊은이들이
당당한 걸음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날, 조카 민이도
우렁찬 구령에 맞춰 고개를 들고 섰다.
양 어깨에는 이제 막 주어진 은빛 계급장 한 쌍,
말없이 반짝이는 그 표식이 참 든든하고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문득, 시선이 멈춘 자리.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후보생 하나가 조용히 서 있었다.
멀찍이서 바라본 그의 모습은 유독 또렷했다.
모두가 부모의 품에 안기고, 친구와 웃으며 사진을 찍는 가운데
그 후보생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작은 그림자 하나처럼 제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한 번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익숙한 얼굴이 없다는 것을 금세 받아들였는지
그는 곧 다시 앞을 바라보며
한 발자국도 흔들림 없이 서 있었다.
그 얼굴에는 억울함도, 원망도 없었다.
다만, 오래전부터 혼자였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침묵이 고요히 깃들어 있었다.
옆에선 누군가 “어머, 부모님 안 오셨나 봐…” 하고 지나치듯 말했지만
그 후보생은 그런 말마저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그저 바람의 흐름 속에 자신을 맡긴 채
눈앞에 펼쳐진 하늘을, 그리고 이 순간을
오롯이 자기 것으로 삼고 있었다.
그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화려한 축하 속에서 외로움 하나가
얼마나 또렷하게 드러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자리였다.
그러나 그 고요한 외로움이 오히려
그 어떤 환호보다 더 깊고, 더 눈부시게 느껴졌다.
홀로였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조용했지만, 당당했다.
그리고 그 후보생의 양 어깨에도
민이와 같은 은빛 계급장이 붙어 있었다.
그 작은 계급장은,
그동안 견뎌낸 수많은 시간의 무게였고,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나는 여기 있다’는 신호였으며,
비록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를 일으켜 세운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조용한 찬사였다.
그 모습을 보며,
마음 한쪽이 오래도록 먹먹했다.
세상에는 박수 소리 없이도 자기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환호 대신 침묵을 견뎌야 하고,
꽃다발 대신 책임을 껴안아야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삶은 어쩌면 그런 이들의 어깨 위에서
조용히 유지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민이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은빛 계급장은
군복 위에만 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하루를 살아내는 모든 사람에게
보이지 않게 붙어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언젠가
그 조용한 후보생도,
그날의 외로움을 품은 채,
더 단단한 사람으로 자라
누군가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장교가 되어 있을 거라고 믿었다.
삶의 의미는,
눈부신 순간보다
묵묵히 견딘 시간 속에서 피어난다.
그 빛은
크게 빛나지 않아도,
은빛처럼 조용히, 그러나 깊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그날 민이의 계급장도,
그 조용한 후보생의 계급장도,
그리고 우리 모두가 짊어진 삶의 표식도—
결국 그런 빛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리라 믿는다.